자연스러운 손동작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디자이너 직업상 촬영이 많다 보니
가끔은 직접 손모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촬영 분량이 적어서
별도로 손모델을 구하긴 뭐 하고
예산도 마땅찮아 고민될 때
내가 손모델로 나서는 편이다.
마침 손가락이 곧고 얇은 편이라
어릴 적부터 '손이 참 섬섬옥수 같네요'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178의 흔치 않은 큰 키 덕에
손가락이 유독 길게 뻗어있기도 하다.
매일, 매 순간 사용하는 손이지만
익숙해진 일상을 벗어나 촬영용 손이 되면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생소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다.
가만, 내가 물을 닦을 때 어떻게 닦았더라?
수건을 손에 쥐는 힘은 어느 정도였더라?
손가락의 벌린 정도는?
손목의 각도는?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 않던 종류의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닌다.
이럴 때 나오는 내공 있는 포토 실장님의
아주 적절한 한마디.
"자연스럽게요-."
순간 긴장이 탁 풀리며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된다.
'아, 맞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대로 손에 맡기면 되는 거였지.'
역시. 하던 대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제야 손이 자연스럽다.
일상에서 수십만 번,
아니 수백만 번 쓰는 손인데도
그 무엇보다 자연스러워야 할 것이
새삼 이렇게 어려울 때가 있다.
가만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자각하지 못했을 뿐
이 손은 참 많은 것을 하고 있구나.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있구나.
그럼 그냥 복잡하게 생각 말고
그냥 확 맡겨버리지 뭐.
#디자이너 #내향적 #에세이 #하루의조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