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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Apr 03. 2024

11. 남의 집 귀한 자식

 


 “오빠, 근데 진상이 뭐야?”

  “누가 그래?”

  “아빠가 그 사람더러 진상이라고 했어.”

  “음…, ‘진’ 심으로 ‘상’ 처를 주는지 모르는 사람일 거야. 그 사람도 설마 알고 그랬겠니. 모르니까 나쁜 짓을 한 거지.”

  역시 오빠는 모르는 게 없었다. 아빠는 ‘진’ 짜 ‘상’ 놈이라고 했지만, 아마 오빠 말이 맞을 것이다. 지원이 아는 한 오빠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니까.






어릴 적 두부전골 집에는 손님이 많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게를 드나들었다. 도와줄 손길도, 돌봐줄 시간도 없었던 부모는 아이들을 가게 한쪽에서 키웠다. 가게가 좁고 아이들은 많아 눈치가 보였다. 부모가 조용히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발꿈치를 들고 걸었다.

언니 오빠는 숙제하고, 막내는 포대기에 싸여 새근새근 잤다. 지원은 구석에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뜨겁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긴장이 풀어졌다. 엄마 아빠의 음식에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면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다정해졌다. 잔심부름하는 오빠를 칭찬하거나, 거스름으로 받은 잔돈을 쥐여주었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린 지원의 마음에 ‘어른들은 다 친절하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 잡을 무렵, 사건이 터졌다.


  “에이, 시팔! 소주 하나 더 달라는데 안 주고 지랄이야. 빨리 안 가져오면 싹 다 죽여버린다!”


두부전골 집에는 규칙이 있었다. 1인 소주 1병, 2인 소주 3병까지만 판매한다. 엄마는 처음부터 식당에서 술을 파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언제나 돈이 승자였고 원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술을 팔면서 매출은 올랐지만, 갈등도 많아졌다. 동네의 안락한 밥집에서 시끌벅적 술꾼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손님, 이미 한 병 드셨잖아요. 대통령이 와도 그 이상은 안 팔아요. 다른 데 가서 드세요.”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가게 안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때마침 아빠도 배달을 가고 없는 터라 아이들은 겁에 질렸다. 주정뱅이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설을 내뱉으며 삿대질했다. 당장이라도 엄마를 때릴 것만 같았다. 당황한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를 감쌌다.


  “너희들은 저기 숨어 있어. 엄마는 내가 지킬게.”


오빠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용감한 척하지만, 오빠도 어린아이였다. 무서워서 덜덜 떨면서도 동생들을 밀어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주정뱅이가 밥상을 퍽 걷어찼다. 와장창! 그릇 깨지는 소리에 막내가 깨서 으아앙 울었다. 언니가 서둘러 막내를 안았다.


  “더러워서 안 먹는다. 거지 같은 애새끼들 끼고서 평생 두부나 팔아 처먹어라, 이 쌍것들아!”

  “우리 애들한테는 욕하지 말아요!”


엄마와 주정뱅이 사이에서 오빠가 쩔쩔매는 걸 보다 못한 지원이 달려들었다. 지원은 주정뱅이의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이건 또 뭐야! 주정뱅이가 발을 흔들어 지원을 털어냈다. 발길질에 차여 지원이 오빠 앞으로 나뒹굴었다. 엄마가 지원을 끌어안았다. 짜증이 날 대로 난 주정뱅이가 빈 소주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지원의 눈앞에 초록색 파편이 튀었다.


  “안돼, 위험해!”


오빠였다. 오빠가 지원을 감싸고 유리를 뒤집어썼다. 질끈 눈을 감은 탓에 지원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오빠의 땀 냄새, 허옇게 뭉개진 두부 사이로 퍼지는 붉은 핏자국, 언니의 날카로운 비명, 막내는 자지러지게 울고, 엄마의 절망스러운 표정, 구급차는 정말로 삐용삐용하면서 온다는 것, 경찰 아저씨가 주정뱅이를 잡아갔고, 오빠는 병원 침대에 누웠다. 모든 게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오빠, 많이 아파?”

  “괜찮아.”

  “아빠가 화내서 속상하지?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해.”

  “지원아, 아빠는 너 대신에 내가 다쳤다고 혼낸 게 아니야. 우리 중 누구도 다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어.”

오빠는 넷 중 하나가 다쳐야 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낫다고 했다. 지원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 병원까지 다녔으나 결국 오빠의 팔뚝에는 흉터가 남았다. 반소매 티셔츠를 입을 때마다 드러나는 자국은 온 가족의 흉터이기도 했다. 그 후로 엄마 아빠는 저녁 술장사를 할 때 아이들을 가게에 들이지 않았다. 주방 이모와 배달 삼촌을 고용했다. 그만큼 벌어야 하는 돈은 더 늘어났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은 늘 빠듯했다.


  “오빠, 근데 진상이 뭐야?”

  “누가 그래?”

  “아빠가 그 사람더러 진상이라고 했어.”

  “음…, ‘진’ 심으로 ‘상’ 처를 주는지 모르는 사람일 거야. 그 사람도 설마 알고 그랬겠니. 모르니까 나쁜 짓을 한 거지.”

역시 오빠는 모르는 게 없었다. 아빠는 ‘진’ 짜 ‘상’ 놈이라고 했지만, 아마 오빠 말이 맞을 것이다. 지원이 아는 한 오빠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니까.


*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지원에게 별다른 목표는 없었다. 대단한 재능이나 눈부신 외모, 매력적인 성격이 아닌 건 일찌감치 알았다. 스스로를 냉정히 분석할 때 크게 훌륭한 인물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텔레비전에 나가거나, 영화의 주인공이 되거나,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할 듯했다. 그렇다면 지원은, ‘진상이나 되지 말자’고 결심했다. 타인에게 진심으로 상처를 주는 것도 모르는 멍청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살면서 진상과 마주치는 것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지원은 유달리 진상을 많이 만나는 편이었다. ‘너는 진상 컬렉터냐’고,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그 집은 엄마도 진상, 아빠도 진상. 진상 심은 데 진상 난다고, 애도 진상이야. 난 원래 성선설 쪽이었는데, 걔 때문에 성악설을 믿게 됐잖아.”

수학이 진저리를 쳤다. 진상이라 불린 아이는 산만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 튀어 오를지 모를 고무공 같았다. 한순간도 집중하지 못하고, 교실 안을 돌아다니고, 말리는 강사에게 침을 뱉었다.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떠들어서 수업에 훼방을 놓았다. 그 아이 때문에 민원이 여럿 들어왔다. 그걸 처리하는 건 지원의 몫이었다.


원장이 직접 학원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해도, 부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억지로 학원에 몇 시간씩 떠맡겼다. 수업이 끝나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것도 못 봐주냐면서 짜증을 부렸다.

아이는 부모와 강사들에게 방치된 채로 복도를 떠돌거나, 탕비실에서 과자를 훔쳐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안쓰러운 마음에 잘해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날카롭게 반응하며 돌발행동을 했다.


  “논술, 얘가 나 발로 찼어. 나 오늘은 얘 못 가르쳐. 논술이 좀 봐줘, 책이라도 읽어주든가.”

수학이 아이를 질질 끌고 왔다. 수학이 입고 온 하얀 원피스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새로 산 옷이라고 기분 좋아했는데. 지원은 수업이 없었지만, 아이를 받았다. 잔뜩 야단을 맞고 온 터라 아이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저녁 먹을 시간인데, 배 안 고파요? 우리 같이 컵라면이라도 먹을까.”

  아이가 짜증스레 고개를 저었다.

  “엄마 곧 오신다고 했으니까 기분 좋게 기다립시다. 엄청 재미있는 책으로 골라서 읽어 줄게요.”

 아이는 지원의 말이 안 들리는 척, 책상에 발을 올린 채 몸을 앞뒤로 까딱거렸다.


  “친구들이 공부하는 책상이에요. 발 내려요.”

  “싫은데.”

  “그렇게 흔들다가 넘어져요. 하지 말아요.”

  “선생… 니가 뭔데요.”


지원은 아이가 일부러 발음을 뭉개서 약을 올린다는 걸 눈치챘다. 지원이 잠자코 있자, 아이가 혀를 내밀고 히죽거렸다. 그리고 보란 듯이 의자를 더 세게 흔들었다. 덜컹― 덜컹― 덜컹. 의자가 돌바닥에 닿아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났다.

지원은 잠자코 동화책을 펼쳤다. 무심하게 첫 장을 읽었을 때였다. 아이가 의자를 아예 뒤로 확 젖혔다. 의자가 버티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앗, 넘어진다! 


지원은 아이를 잡으려 몸을 날렸다. 우당탕, 두 사람은 엉킨 채로 교실 바닥에 넘어졌다. 가까스로 아이의 뒤통수를 감싸, 머리가 부딪치는 건 피했다.


  “큰일 날 뻔했잖아! 머리 깨지고 싶어?”

아이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지원이 버럭 화를 냈다. 불호령에 깜짝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시끄러워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는 프로펠러처럼 바닥을 빙글빙글 돌면서 악을 썼다. 원장과 부원장까지 달려온 뒤에, 아이가 지원을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저 사람이 나 밀었어!”


뭐라고? 지원은 기가 막혔다. 대꾸할 새도 없이, 누군가 지원을 거칠게 밀치며 끼어들었다. 뒤늦게 온 아이의 엄마였다. 여자가 지원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나 이런 거 절대 못 참아. 끝장을 보는 사람이라고. 당신, 잘못 걸렸어. 이런 게 무슨 선생이야? 아동학대로 고소할 거야!”


지원은 멍하니 서서, 여자가 쏟아내는 거친 말을 들었다. 학교 선생도 아닌 게! 보나 마나 좋은 대학도 못 나와서 변두리 학원 강사나 하는 주제에. 저까짓 것도 선생이라고 대접해 줬더니만 우리 애를 졸로 보고! 가르치기 싫으면 식당에서 설거지나 하든가. 왜, 힘들고 더러운 일은 하기 싫은가 보지? 잘난 강사라고 콧대만 높아서. 내가 꼭 너 잘리는 꼴 보고야 만다!


지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이를 감쌌던 손등에 시커먼 멍이 올라왔지만,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멸스럽고, 수치스럽고, 가슴을 후벼 파는 공격이었다. 악다구니를 쓰는 여자의 뒤에서, 수학이 입 모양으로 ‘어휴, 진상…’ 하고 중얼거렸다.


눈을 감은 채 지원은 속으로 오빠를 불렀다. 오빠,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상대방을 파괴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거든. 어쩌면 오빠가 틀렸는지도 모르겠어. 진상은 ‘진’ 짜 ‘상’ 놈이 맞는 것 같아.

그런데 오빠…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다쳐버렸어.

이제 어떻게 하지?

대답해 줘, 제발.   


*


1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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