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혜 Apr 24. 2024

12. 리치는 리얼 리치?



지원은 그대로 직진했다. 

두 손으로 안전띠를 꼭 잡은 리치가 탄식을 했다. 

망했다. 

나는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바보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무릎을 꿇어야 하는 비겁자다. 

지원은 이를 악물고 액셀을 밟았다.








오늘은 지원의 첫 운전면허 시험 날이었다. 아침부터 리치는 부산스레 채팅을 보냈다. 

- 팔 달린 사람이면 다 합격해. 완전 쉬우니까, 쫄지 마 안지!


저녁 무렵, 지원이 홀연히 편의점에 나타났다. 리치가 어떻게 됐느냐고 다그치자, 지원은 대답 대신 두 팔을 뒤로 감췄다. 

“쯧쯧… 넌 인마,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똥도 싸지 마.”

지원은 치욕을 참으며 맥주가 든 봉지를 입에 물고 나갔다. 뒤에서 리치가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


2차로 도전하던 날에도 리치는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 한 번은 실수야, 두 번부터 바보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떨어지거든 내 눈앞에 나타나지도 마라.

설마 했으나 지원은 끝끝내 편의점에 오지 않았다. 죽었나 살았나 몇 번을 찾은 뒤에야 대답이 돌아왔다.

- 누구세요? 저는 안지가 아니라 바보입니다만.  

- 하, 이 빠가사리 새끼…. 


*


세 번째 시험 날, 지원은 리치가 보낸 채팅을 보며 이를 갈았다. 

- 또 떨어지거든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라, 멍충아.


삼수 끝에 합격한 지원은 당당히 리치를 찾아갔다. 

“야, 붙었으니까 네가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빨리!”

다리를 척 벌리고 선 지원에게, 리치가 싹싹 비는 시늉을 했다. 

“미안미안. 겨∼우 세 번 만에 붙을 줄 모르고 실언했지 뭐야. 적어도 열 번은 떨어질 줄 알았는데. 대신 내가 운전 연수 시켜줄게.”


*  


내가 운전하다니. 이렇게 커다란 쇳덩이를 내 힘으로 움직이다니. 연수 중에 지원은 반쯤 넋이 나간 채였다. 버스나 트럭이 덩치로 밀어붙일 때마다 숨이 멎을 듯했다. 

흰 장갑을 낀 채 핸들에 몸을 바싹 붙이고 벌벌 기는 지원을, 리치는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긴장 풀어, 지금 이 도로 위에 미친 칼날은 다름 아닌 바로 너니까. 솔직히 저 십 톤 트럭 운전사가 너를 더 무서워할걸.”


리치가 뭐라 하든 지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리자니 목이 뻣뻣했다. 운전은 힘들었지만, 쾌감이 있었다. 직진으로 밟을 때는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지원은 액셀을 밟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래, 달려 보자!”


*


학원에서 아동학대범으로 몰린 뒤로, 지원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학부모는 경찰에 신고하게 CCTV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쳤다. 지원 또한 바라는 일이었다. 아이가 장난 삼아 의자를 흔들고, 자신은 말렸으며, 넘어지는 것을 보호했다고 변명할 기회조차 없다면, 눈으로 확인시킬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마저 부서져 버렸다. 


“CCTV는 안 돼요.”

대책 회의 시간, 부원장이 선을 그었다. 

“여러 가지 보안상 문제나, 학생들의 개인정보 보호도 있고… 함부로 공개할 수 없어요.”

학생의 개인정보가 지원의 신변 보호보다 중요하다는 것에, 지원은 할 말을 잃었다.


학부모가 카메라를 때려 부술 듯 악다구니를 쓰자, 부원장은 말을 바꿨다. 정규 수업이 아닌 강의실이라 처음부터 녹화가 안 되었다고 했다. 논술 교실에는 아예 CCTV를 꺼두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때부터 지원은 싸우기를 포기했다. 태풍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눈과 귀를 막았다.

분위기는 지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아동학대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힐끔거리고, 뒤에서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학부모의 테러는 계속되었다. ‘강사가 아동을 학대하는 학원이 있다’라는 내용으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맘카페마다 도배를 하고,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뿐만 아니었다. 지원의 휴대폰으로 온갖 협박 문자와 채팅을 보냈다. 지원은 개인 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으니, 학원에서 흘러 나갔을 것이다. 악에 받친 저주의 말들을 고스란히 받아내느라, 지원은 나날이 시들어 갔다.        


“안 선생, 한 달만 집에서 쉬었다 와요. 그동안 어떻게든 수습해 볼 테니까.”       


부원장은 대단한 특혜라도 베푸는 듯했지만, 사실상 강제 무급 휴가였다. 지칠 대로 지친 지원은 두말없이 학원을 나섰다.

집에 틀어박혀 자고, 자고, 또 잤다. 웅크린 지원을 밖으로 끌어낸 건 리치였다. 허송세월하지 말고 이 기회에 운전면허라도 따라고 다그쳤다. 학원에서 잘리면 기술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에 억지로 시작한 운전이었지만, 점점 재미가 붙었다. 면허를 땄을 때는 기뻐서 오랜만에 웃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연수를 나서기 전, 부원장에게 연락받았다.        

“안지원 선생님, 서운해 말고 들어. 어쨌거나 강사로서 책임이 있잖아. 사실 학원도 피해가 커. 수강생 수도 줄고….”


부원장이 내놓은 합의안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아이와 학부모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것. 

둘째, 병원에서 별다른 진단은 없었으나 막대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므로 금전적 보상이 필요함. 액수는 개인 간에 차후 논의.

셋째, 학원 홈페이지와 맘카페에 자필 사과문 게시.


그 와중에도 지원은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합의금이 얼마일까 헤아렸다. 처음 겪는 일이라 두렵고 무서웠다. 모자라면 어쩌지. 가진 걸 다 팔고, 집 보증금을 빼도 부족하면…? 더 이상 학원에도 나가지 못할 텐데, 어떡하면 좋을까. 

집에는 알릴 수 없다. 모든 걸 털어놓는 리치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 생겼다. 블로그에도 쓸 수 없으니, 스페이드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원은 완벽히 혼자였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가장 외로운 순간이었다. 버티는 일에는 힘이 많이 필요했다. 가득 찬 항아리처럼 찰랑거리는 감정을 억눌렀다. 아슬아슬 하루를 버텨냈지만, 쥐어짤 기운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지원은 세상에서 훅 사라질 방법을 고민했다. 조용히 없어져 버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어이, 정신 차려! 절대 저 다리를 건너선 안 돼. 서울을 벗어난다고! 이대로 부산까지 갈 셈이야? 지구는 둥그니까 직진으로 밟으면 온 세상 초보를 다 만날 것 같아? 안지, 제발!” 

리치의 비명에 지원은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눈앞에 길이 두 갈래였다. 지원은 불안하게 깜빡이는 신호등을 노려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돌려!”

“난 못 해.”

“할 수 있어. 하셔야 합니다. 살려주세요, 선생님. 집에 가고 싶어요. 저에게는 몸이 아픈 홀어머니가 계세요. 이 못난 아들만 기다리는….” 

“미안해, 날 용서하지 마!”


지원은 그대로 직진했다. 두 손으로 안전띠를 꼭 잡은 리치가 탄식을 했다. 

망했다. 나는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바보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무릎을 꿇어야 하는 비겁자다. 지원은 이를 악물고 액셀을 밟았다.


*


다행히 부산까지 가지는 않았다. 김포를 지나 강화도 서쪽 바닷가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리치가 비틀거리며 차 문을 열었다. 그 사이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와 십 년은 늙어 보였다.

지원이 다시 한번 사과하자, 오히려 리치는 코가 땅에 닿게 굽신거렸다. 

“아닙니다.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은 것만도 감사합네다. 내래 동무를 잘못 만나 월북해서 총 맞아 죽을 뻔했디 안칸!”

지원이 ‘쳇’ 혀를 찼다. 리치가 또 얼마나 두고두고 우려먹으며 놀려댈지 앞날이 훤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해가 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회색 바다에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갔다. 멍하니 선 지원을, 리치가 툭 건드렸다. 

“왜?”

“안지, 저리로 가.”

리치가 가리킨 곳은 인적이 드문 절벽 아래였다. 어둑한 바위섬에 파도만 느리게 오갔다. 지원이 영문을 몰라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리치가 휴대폰을 열어 알람을 맞췄다. 

“딱 삼십 분 준다. 삼십 분 동안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욕해. 나는 차 안에 있을게. 너 혼자 바다를 보러 왔다고 생각해. 혹시 사람들이 다가가면 다 쫓아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서 미친년처럼 다 털어버리고 와.”

리치가 지원의 등을 떠밀었다.

지원은 머뭇머뭇 걸음을 옮겼다. 절벽 밑 바위틈은 놀랍게도 아늑했다. 등을 기대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스르르 주저앉았다.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휘날렸다. 찬바람이 철썩, 뺨을 때렸다. 


아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지원은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가슴을 텅텅 내리치며 몸부림쳤다. 리치는 욕을 하라고 했지만, 누구도 탓할 마음이 없었다. 징그럽게 끔찍한 건 자신 뿐이었다. 그저 서러움을 토해내듯 통곡했다. 묵직한 파도 소리가 눈물을 지워주었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서서히 울음이 잦아들었다. 어디에서도 이렇게 시원하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지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비상등을 켠 리치의 차가 서 있었다. 


“…배고파.”

“바지락 칼국수 먹고 가자.”


돌아갈 때 운전은 리치가 했다. 도로에서 얼마나 더 헤매면 리치처럼 부드럽게 운전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지원이 불쑥 물었다.

“도대체 너는 정체가 뭐야?”

리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썹을 찡긋했다. 

“편의점 알바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비싸고 큰 차를 끌어. 월급도 얼마 안 된다면서…. 사회 경험하러 온 재벌 2세는 아닐 거고. 설마 그 편의점이 네 거라도 돼?”


리치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지원은 툴툴거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유산을 받았어. 지금 사는 집, 그리고 이 차도 아버지 거야.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그동안 나는 무임승차만 했잖아. 기획사도, 데뷔도… 내 인생은 다 기생해서 얻은 것뿐이라, 아버지가 빠지니까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엄마만 아니었으면 나도 따라갔을지 모르지. 

늦었지만 이제부터 하나씩 해보는 중이야. 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은 차마 쓸 수가 없어서 그냥 뒀어. 그건 엄마 것이기도 하니까 병원비로만 쓰고, 내가 먹고 입고 쓰는 건 내가 벌려고 해. 

안지, 너는 대단해. 뭐든 네 힘으로 하잖아. 혼자 서울까지 올라와서 대학 나오고 직장까지 다니고…. 네가 대단하다는 걸 너도 좀 알았으면 좋겠어.”

리치가 심각한 목소리를 거두고, 지원을 힐끔거렸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지원은 대꾸가 없었다.              


“야, 너, 자냐? 또 자? 너는 내가 진지한 말만 하면 잔다? 아오, 이 의리 없는 새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리치는 라디오 볼륨을 줄여주었다. 


지원은 가만히 눈을 떴다. 리치의 차가 한강 다리를 건넜다. 야경이 물에 번진 물감처럼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13편으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11. 남의 집 귀한 자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