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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Feb 18. 2024

4. 편의점 리치맨



“제 이름은 리처드예요. 그냥 편하게 리치맨~이라고 부르세요. 제 꿈이 세상 최고 부자거든요.”

지원은 대답 없이 살짝 목례를 했다. 입을 열었다간, 야 이 녀석아, 그만 좀 떠들어. 쉿! 야단을 칠 것만 같다.

“손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심심했는데 진짜 고맙습니다. 내일도 또 오세요. 진짜로 기다릴 거야!”




퇴근은 8시였다. 지원은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거리에는 어둠이 찐득하게 내려있었다. 오늘은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간식으로 나온 햄버거는 차가워서 맛이 없었다.

지원은 힘없이 집 앞 편의점 문을 밀었다.


“어서 오세요, 대환영입니다!”


요란한 인사를 건네는 건, 그만큼 요란한 인상의 남자였다. 순간 지원은 유니콘이 알바를 한다고 생각했다. 길게 기른 머리는 보라색으로 염색했고, 코와 귀에는 주렁주렁 피어싱이 달려 있었다. 주춤한 지원은 뒷걸음질로 나가려 했다.


그때, 알바생이 달려 나와 문을 꽉 잡았다.

“생긴 건 이래도 착한 사람입니다. 안 잡아먹어요. 제발 그냥 가지 마세요. 안 그래도 너 때문에 손님 떨어진다고 사장님이 걱정이 많다고요.”

알바생이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에 지원은 긴장이 풀려 헛웃음이 나왔다. 알바생이 지원을 따라서 히죽 웃었다.


알바생은 지원의 뒤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이 크림빵이 요즘 유행이니까 꼭 드셔보세요."

"아, 그건 2 플러스 1이에요. 두 개 사시면 하나 더 드리도록 제가 힘 좀 써볼게요."

"오늘 신상은 바로 땅콩 맛 우유인데요, 이걸 사시면 땅콩 한 봉지를 서비스로 드려요."


 주절주절 떠드는 알바생에게 지원이 내민 것은, 만 원에 4캔 맥주였다.

“와! 술 좋아하세요?”

“아뇨, 뭐… 그냥 술을 사면, 퇴근한 기분이 드니까요.”


지원에게 맥주는 하루를 버티는 힘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꺼내는 순간, 자신이 진짜 어른같이 느껴졌다. 술을 좋아하거나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분명한 어른의 맛이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생각하며 지원은 카드를 내밀었다.


결제를 마친 알바생이 가슴을 툭툭 쳤다. 옷깃에 달린 명찰이 달랑거렸다.

“제 이름은 리처드예요. 그냥 편하게 리치맨~이라고 부르세요. 제 꿈이 세상 최고 부자거든요.”


지원은 대답 없이 살짝 목례를 했다. 입을 열었다간, 야 이 녀석아, 그만 좀 떠들어. 쉿! 야단을 칠 것만 같다.


“손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심심했는데 진짜 고맙습니다. 내일도 또 오세요. 진짜로 기다릴 거야!”

편의점을 나설 때까지 그의 수다가 길게 이어졌다. 내일부터는 다른 편의점으로 가야겠다고, 지원은 생각했다.



*


 “논술!”

누군가 지원의 어깨를 탁, 쳤다.

“네, 수학샘. 무슨 일이세요?”

“나 문제지 프린트 좀 할게.”

수학이 데스크 안쪽으로 몸을 쑥 들이밀더니 키보드를 두드렸다. 지원은 얼른 자리를 피했다.

위잉 위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앗, 큰일이다! 논술, 나 아무것도 안 건드렸는데. 이게 원체 싸구려라 그래. 이것 좀 해결해 줘.”

수학이 호들갑을 떨며 일어났다. 또 저 인간이 뭘 잘못 건드린 모양이다.

마이너스의 손,

수학이 만지고 가면 뭐든 고장이 났다. 그가 망가뜨린 커피머신과 복사기와 정수기의 AS는 지원이 처리했다.


“대신 이 프린터물은 내가 갖고 갈게. 미안해, 논술!”

수학이 뽀르르 사라진 뒤에야 지원은 마음껏 인상을 썼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짓을 한 건지, 컴퓨터는 먹통이었다. 이래서는 출석 체크도, 점수입력도, 수강료 확인도 할 수가 없다. 종이를 씹어먹은 복사기라면 모를까 컴퓨터는 지원의 능력 밖이었다.


열공학원의 수강생 관리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따라 A/S 기사가 다들 출장을 나갔다고 했다. 사정사정하니 사람을 보내준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A/S 로고가 적힌 조끼를 걸친 남자가 학원으로 들어섰다. 구원자가 나타나자 지원은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남자가 기계를 만지는 사이,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수학과 영어가 탕비실로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과자봉지 뜯는 소리가 났다.


“아, 힘들어. 떠드는 직업이라 그런지 금방 배고파.”

“날이 흐리니까 애들이 말을 더 안 들어.”


지원은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커피를 한잔 뽑았다. 과자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것을 A/S 기사에게 내밀었다. 기사가 지원을 쳐다보고 살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드려요, 바쁘신데 와 주셔서. 만약 안 오셨으면 저희 큰일 나거든요.”


수학이 살갑게 대하는 지원을 흘끔 쳐다봤다. 저 무뚝뚝한 사람이 무슨 일이래. 영어가 눈짓으로 말했다. 우리한테나 저렇게 좀 싹싹하게 굴지.


쉬는 시간이 끝나는 수업 종이 울렸다.

“논술, 이제 수업 들어가. 덕분에 우리도 좀 쉬자.”

수학이 기지개를 켰다. 그 말에 지원은 그림책과 출석부를 챙겨 들었다. 필통 속 깊숙이 넣어 둔 라이터가 잘 있는지도 확인했다.


“이번에도 거절하겠지만 물어나 보자. 논술, 이따 끝나고 같이 한 잔 안 할래? 요 앞에 기가 막힌 전골집이 생겼는데.”

영어가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두부인가요?”

“응?”

“두부전골이냐고요.”

지원의 비장한 물음에 수학과 영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부… 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말에 지원이 몸서리를 쳤다. 두부전골이라니, 절대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다. 지금도 여전히 두부와 씨름할 부모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부드러운 두부라도 지원에게는 돌덩어리 같아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전 두부 안 먹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두부라서요, 거절할 참이었다. 그때 부원장이 교무실에서 나왔다. 수학과 영어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지원도 따라서 인사를 했다. 부원장이 지원에게만 찡긋, 눈짓을 보냈다.


지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갈게요. 그런데, 한 사람 더 가도 되나요?”


지원의 말에 수학과 영어의 눈이 동그래졌다.


“누구? 학원 사람?”

“네, 학원 사람. 일단 저 수업 좀 하고 오겠습니다.”


때마침 아이들이 학원 문을 열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지원은 인터넷 기사에게 인사하고, 아이들을 몰았다. 뒤에서 수학과 영어가 ‘실화야? 논술이 웬일이래? 근데 누구지?’ 하고 수군거렸다. 딩동댕, 수업 종이 울렸다.


*

5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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