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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Sep 25. 2024

어느 날 갑자기

기쁨과 슬픔의 무한궤도

모든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다.

잔잔하던 바람이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방향을 바꾸듯,

영원할 것 같던 여름이 어느 날 갑자기 가을이 되었듯,

우리의 인생에도 기쁨과 슬픔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듯하다.


외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12년간 병상에 계셨고 가족들이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10년을 넘게 잘 버텨주셨기에,

이렇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엄하셔서 어릴 때는 물론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트라우마가 되어 부모님을 어려워하였다. 심지어 일찍 철이 든 엄마는 어려서부터 과연 나의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서야 주변 친척들, 가족들이 할아버지가 막둥이(엄마)를 아꼈다는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들으며 할아버지의 사랑을 조금씩 인정하고 이해하던 찰나였다.


엄마가 무너졌다. 눈물을 참아버릇하여 우는 법을 모르는 엄마가 대성통곡을 하였다.

영안실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무너져내리는 엄마를 보고, 나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할아버지의 모습을 눈에 담으라고 엄마의 등을 자꾸자꾸 떠밀었다.

엄마가 나중에 후회하는 게 싫었으니까.


입관을 하는 날, 할아버지의 고요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며 부디 우리를 지켜달라고, 사랑을 베풀어달라고 말하였다.

집안 문제로 몇 번 뵙지 못했지만 어릴 적 너른 품으로 꽈악 안아주셨던 그 따뜻함만이 떠올랐다.

차가워진 할아버지를 만지면서 그 따뜻했던 품이 떠올랐고, 냉정하고 한없이 엄격한 분이셨지만 손주들 앞에서는 또 허허하며 웃으셨을 인자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불교를 믿으셨다. 생전 당신의 묫자리까지 정해놓으시고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옆에 자리를 정해놓으셨는데, 이것 또한 집안 문제로 할아버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대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1시간 20분이 지나니 장성하시던 할아버지는 한 줌의 재가 되었다.


그 폭풍 같던 며칠이 지나고,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일부 자식들(엄마와 이모, 외삼촌)은 절에서 49재를 지내기로 하였다.

유골함이 묻힌 납골묘에서 삼우제를 지내고, 할아버지의 사진을 절에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7번의 재를 지내 총 49재를 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계획들을 급하게 세우고 진행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신기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비가 쏟아질 거라 했던 삼우제 날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고, 제를 지내고 여운이 남아 한참을 머무르다 떠나는 길에서는 할아버지 납골묘 주변을 맴도는 작은 새를 보았다.

그리고 49재를 지내기로 한 절은 알고 보니 고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의 49재를 지냈던 절이었다.(아무도 몰랐고, 급하게 절을 수소문하다 7재를 모두 지낼 수 있는 곳이 그 절밖에 없어서 가게 된 것이었다.)

그 절에 할아버지 사진을 모셔다 놓으러 가서 절에 있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서 모두 할아버지가 기뻐서 눈물을 흘리시나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에 돌아갈 때에는 그렇게 구슬피 내리던 비가 절을 지나자 뚝 멈춰버렸다. 자식들 편히 집에 가라고 비를 멈춰 주신 걸까?

그리고 며칠 뒤 일재를 지내고 나오는 길에는 하얀 나비가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벌레, 곤충, 날아다니는 것을 무서워하는 엄마는 화들짝 놀라 꺅 소리를 내며 방방 뛰어다녔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하얀 나비가 할아버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정말 할아버지가 나비가 되어 오신 거였을까. 그렇다면 한번 더 와주시면 좋을 텐데.


아직 할아버지를 마음에서 떠나보내드리지 못하여 이렇게 저렇게 짜맞춘 것일 수도, 믿고자 한다면 믿을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또 아닐 수도 있는 일들이다.

그래도 아직은 할아버지가 우리 곁에 계신 거라고 믿기에,

불어오는 바람에도, 세차게 내리는 비에도, 갑자기 멈추는 비바람에도, 날아오는 하얀 나비와 종달새에도 자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말도 없이 예고도 없이 자식들이 손주들이 마음먹을 겨를도 없이 가버리셨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이 너무나도 크지만,

엄마가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비로소 깨닫고 느끼고 난 뒤에 사랑으로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집안 문제로 왕래가 자주 없었던 친척들, 사촌들이 모여 시끌벅적 함께 하니 슬픔은 잠깐이고 든든함과 더불어 화합된 분위기에 기쁨과 행복, 충만함이 찾아왔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원하시던 것들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계신다면 흐뭇해하실 것 같았다.

그래... 이게 가족이지, 아무리 힘들고 마음 아파도 함께 하며 울다가도 하하 호호 웃는 게 가족이지.


일재, 이재를 지내고 삼재를 앞둔 지금.

나는 재를 지내고 올 때마다 할아버지께 편지를 적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할아버지께 부리지 못했던 어리광도 부리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도 적고, 우리 엄마와 삼촌 사랑으로 보살펴 달라고 정성 들여 편지를 적고 있다.

막재때 할아버지 사진과 옷가지와 함께 내 편지들도 태운다고 한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떠나시면서 나의 진심과 사랑을 안고 마음 편히 떠나시겠지.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드리면서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수많은 폭풍우가 지나갔다.

미움, 원망,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가도 그런 감정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다시 무의 상태로 돌아가고, 슬픔이 눈에 그렁그렁 차오르다가도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슬픔도 사그라들었다.

그저 오로지 49재동안 좋은 마음으로 좋은 생각을 하며 할아버지께 정성을 다 할 것.

편안히 가실 수 있도록 우리가 편안한 마음을 가질 것.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겠다 다짐하였다.


모든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인생길에 걱정과 고민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쌓아두기보다는 좋은 게 좋은거다라는 마음으로 마음의 밸런스를 맞춰나가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슬픔과 기쁨은 운명의 쌍둥이처럼 무한궤도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일희일비할 것 없이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슬플 때에는 슬퍼하고 기쁠 때에는 기뻐하면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슬프지만 매일같이 슬퍼하지 않고

기쁠 때는 웃고 떠들고 행복해하기도 하고

나의 삶을,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문득문득 슬픔이 찾아오겠지만,

슬픔 뒤에는 반드시 기쁨이 찾아올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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