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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민 Feb 12. 2024

59. 제주 힐링캠프 초청강사

경찰관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자살비율을 봤을 때 다른 공무원에 비해 2배 정도 높은 편이다. 자살 사고를 많이 접하기도 하고 각종 사건 사고를 많이 접하는 직업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수직적인 직장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심각성을 느낀 경찰청에서는 ‘생명 지킴이’ 강사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 자살 예방 강의를 하고 그들이 또 다른 생명 지킴이가 되어서 동료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다. 나는 ‘생명 지킴이’ 5기로 선발되어 4년째 활동해오고 있다.      


어느 날 경찰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경찰청에서 공상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힐링 캠프’를 진행하는데 강사로 초청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문제는 자살 예방 강의 의뢰가 아니고 분위기를 띄워줄 수 있는 ‘레크레이션’ 의뢰였다. ‘이분이 나에게 왜 전화를 했을까?’, ‘난 레크레이션 강의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하던 찰나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같은 생명 지킴이 강사 중 한 분이 나를 추천해줬다고 말했다. ‘힐링 캠프’는 제주도 4박 5일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내가 강의할 시간은 두 시간이라고 했다. 처음엔 거절할까 생각했지만, 제주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건 무조건 해야 해’라고 생각했다. 추천해주신 분의 마음도 감사하고 선뜻 초청해주신 담당자분도 감사해서 하겠노라고 답했다.   

   

담당자는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수락하긴 했지만, 부담감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아무 대책 없이 수락한 것은 아니었다. 인권 감수성 강의 때 ‘레크레이션’ 기술을 몇 가지 써본 적이 있었고, 아는 형님 중 ‘레크레이션’ 명강사가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면 될 것 같아 그랬다. 제주도 출장의 유혹이 처음 해보는 강의의 부담을 이겨버렸다.      


부담도 있었지만, 솔직히 기대가 더 컸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또, 이 강의를 성공시키면 나는 무기를 하나 더 장착하게 되는 셈이어서 꼭 해내고 싶었다. ‘레크레이션’은 송년회처럼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하는 방식과 조를 짜서 경쟁시키는 방식이 있었다. 전자는 능숙한 강사가 아니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 후자를 활용키로 했다. 경쟁시키는 방식은 선물이 필요하다. 경찰청 담당자에게 혹시 선물을 준비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시작부터 일이 잘 풀려가는 듯했다.      


강의 자료를 준비하는데, 가장 도움이 된 것은 TV 프로그램인 ‘신서유기’였다. ‘신서유기’에는 많은 게임이 등장한다. 인물 사진을 보여주고 3초 만에 맞추기, 사자성어 이어 말하기, 텔레파시 게임 등이 그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다른 강사들의 운영 방식을 익히기도 했다. 특히 사람들의 실수를 어떻게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어 올리게 하는지를 배웠다. 기존 강의 때 쓰던 것들도 몇 가지 집어넣었다. 혹시 시간이 모자랄까 싶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준비했다. ‘레크레이션’ 강사 형님에게도 자료를 받았다. 운영 팁까지도 얻었다. 준비되어 갈수록 자신감이 생겼고, 빨리 선보이고 싶었다.      


김해공항에서 7시 30분 비행기로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 공항에 약속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만나기로 한 게이트 앞으로 가니 담당자도 일찍 와 있었다. 안면이 있었기에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에게 ‘힐링 캠프’ 대상자들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평균 50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준비한 게임들을 그분들이 과연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걱정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표정이 굳는 것을 느꼈는데 담당자가 눈치챌까 싶어 태연한 척했다. 한둘씩 캐리어를 끌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우린 담당자를 따라 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미 버스에 타 있는 분들도 있었다. 버스를 타며 그분들 얼굴을 보는데 또 한 번 눈앞이 노래졌다. 공상을 당했던 분들이라 그런지 표정들이 대부분 어두웠고, 무뚝뚝해 보였다. ‘망했다, 난 오늘 망신을 당하겠구나! 어떡하지?’ 미칠 것 같았다. 우린 제주 해양 경찰 수련원으로 이동했다.     


첫날 일정은 담당자 소개 및 ‘힐링 캠프’ 프로그램 소개 한 시간, ‘레크레이션’ 두 시간, 집단상담 두 시간 후 저녁 식사로 일정이 마무리된다. 결국, 나에게 맡겨진 그 두 시간이 일주일간의 분위기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었다. 가슴속 돌덩이는 점점 커져 심장을 짓눌렀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속으로 외쳤다. ‘넌 할 수 있다! 일단 들이대 보는 거야!’ 담당자가 내 소개를 했다. “모시기 어려운 분을 초청했습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 거야?’ 한번 흘겨본 후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말했다. “저 모시기 아주 쉬운 사람입니다.” 한 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그 후 준비한 프로그램을 펼쳐 나갔다.     


걱정과는 달리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평균 50대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맞췄을 땐 오히려 아이보다 더 좋아했고, 문제가 나가기 전엔 이게 뭐라고 긴장하는 모습마저 웃음을 자아냈다. 분위기가 좋으니 나 또한 평소보다 더 능숙한 진행을 선보였다. 웃고 떠드는 순간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같은 팀이 된 분들은 벌써 친해져 있었고, 굳어있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훈훈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그 날 강의는 성공적이었고 많은 분이 감사를 표했다. 오히려 내가 더 감사했다. 그분들을 위한 ‘힐링 캠프’는 되려 나를 위한 힐링이 되어버렸다. 조금 욕심을 더 부려본다면 제주 ‘힐링 캠프’에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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