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 편 써보고 싶어.

다른 이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쉬우나,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어렵다.

by 귤이

초등학교 시절, 수업이 오전 9시에 시작한다면 그 시간 전의 20분 동안은 자습 시간이었다. 초등학생에게 자습 시간은 어떤 공부 같은 것이 아니라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게 독서란 지루하고 힘든 것이 아니라, 즐겁고 쉬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글을 잘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읽는 게 좋았다. 교실 한편에 마련된 책장에 꽂힌 책들 중에 한 권을 골라 읽어도 되고, 교내 도서관에 미리 들러서 빌려온 책을 읽어도 되고,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어도 되고 아무렴 그저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장르는 단연코 소설이었다. 소설이 왜 좋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체험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소설의 키워드를 보았을 때 내가 전혀 겪지 못하고 앞으로도 겪지 못할 어떤 것이라면, 그건 소설 속에서 체험하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주인공까지 빙의돼서 이입할 필요는 없지만 책을 여는 순간만큼은 나는 그 세상 속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전지전능 관찰자다. 그게 얼마나 매력적이고 행복한 일인지. 나이가 어릴수록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많기에 경험과 행복의 역치가 높지 않고 아직 현실 세상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서 소설의 세상이 마치 현실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게 느껴졌다. 더 설레고 꿈꾸듯 모든 것을 그릴 수 있었다.

내가 그 소설을 쓴 소설가의 지인이나 그 어디쯤 비슷한 사람이었다면 소설이 마냥 허구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할 것 같다. 소설가도 사람인지라 전혀 겪어보지 못한 무언가를 적기보다는 주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이모저모 뜯어보고 만져가며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킨다고 본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라고 밝히지만, 내가 소설 하나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우선 수필이라는 장르와 그다지 다를 게 없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있는 인물이 다듬어져 창조된 주인공은 작가가 투사한 애정이 가득한 존재다. 그렇기에 작가의 가치관과 생각이 담겨있기 –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역의 경우에도 작가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인물이 악역이다.-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정말 소설을 쓰게 된다면 본명을 밝힐 수 있을까 늘 생각하는 점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의 모든 것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것 같아서 그렇다.

브런치 스토리에 참 오랜만에 들어와 10주년 팝업 전시 공고 글을 읽었다. 주제는 ‘브런치와 함께 이룬 작가의 꿈’ 또는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이라니. 나의 오랜 바람이지만, 쓰는 건 너무도 어렵기에. 읽는 것만 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내 온전한 글 몇 편을 남기고 싶다는 작지만 큰 욕망 또한 가지고 있다. 그걸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이룰 수 있다면. 누군가가 재미나게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좋은 소설은 시간이 지나도 고전으로 남아 개인에게 사회에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그렇게 거창하게 바랄 것도 없지만 죽기 전 하나의 온전한 소설이 내 머리와 손을 통해 탄생할 수 있다면. 너무 부끄럽지만 즐거운 것이라는 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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