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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이 Jan 24. 2024

고양이는 사랑입니다 4

고양이와의 인연과 현재진행형 일상.

4.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 2     



개나리색보다는 진하지만 호박빛보다는 연한 빛의 노란 옷을 입은 고양이었다. 치즈태비. 노란 바탕에 줄무늬. 그런데 이 고양이, 어쩐지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어딘가 소심한 모습으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분명 눈빛은 저 간식이 너무 먹고 싶다는 그것인데, 자신이 가까이 가도 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나’라는 인간을 믿지 못해서일까 싶은 마음에, ‘널 해치지 않아’라는 미소를 잔뜩 띠며 상냥하게 고양이를 불러보았다.

“야옹아, 너도 이게 먹고 싶니? 이리 와~.”




그때였다. 또 다른 젖소 무늬 고양이 – 덩치가 좀 더 컸던 – 가 치즈 고양이를 위협하듯 앙칼진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 덤비는 것이었다. 반격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그 길로 후다닥 도망가버린 치즈는, 골목에 주차된 흰 트럭 밑으로 이내 숨어버렸다. 그때는 잘 몰랐다. 왜 젖소가 갑자기 치즈를 공격했던 것인지. 그저 젖소가 천성이 못 돼서 – 근데 이 쪽도 맞다. 겪어보니 못된 구석이 없지는 않았다. - 괴롭히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이제는 안다. 그들 사이에 서열이 있었던 것이다. 덩치 있는 젖소가 노란 놈보다 서열이 위였다는 것. 고양이들은 영역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가진 동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생일대의 싸움을 해야 한다.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도시의 고양이들은 더욱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일찍이 질 것을 알아서 동네북 신세가 되면서도 우두머리 고양이와 같이 다니거나, 혹은 치열한 싸움 후에 만신창이가 되어서 떠나거나. 그도 아니면 어느 상냥한 인간을 따라가서 이 고단한 삶을 끝내거나.




그렇게 치즈는 차 밑에서 웅크린 채 이 쪽을 떨리는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고 덩치 큰 젖소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가 준 간식을 태연히 먹고 있었다. 덩치가 작은 젖소는 큰 젖소가 먹기 시작하자, 한 발 뒤로 얌전히 물러나며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치즈가 가여웠지만 더는 간식이 없었고 나는 계속해서 쪼그려 앉은 채로 이 세 친구들의 행보를 지켜보았다.      




“고양이 좋아하시나 봐요? 걘 이름이 애옹이예요. 누굴보든 애옹거려서.”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게 갑자기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근처에 지나가다가 고양이들이 있어서요. 간식을 아주 조금밖에 못 사 왔는데...... 노란 고양이는 못 먹었네요.”

짧은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어딘가 친근한 구석을 보이는 그에게 나는 오래 알던 사람에게 말하듯 대답했다.

“걔는 이름이 감자고요. 쟤 괴롭힌 애가 삼식이예요. 아, 애옹이랑 삼식이는 모자지간이에요.”

“그러고 보니 둘이 닮았네요. 애옹이가 엄마였군요.”    




남자는 고양이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듯했었다. 그는 나처럼 우연히 여기를 지나가다가 고양이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들 같은 사람들이 꽤 된다고도 했다. 그의 정확한 직업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는 업무와 관련된 생각을 정리하려고 산책을 하던 중 이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었다. 본인은 집에 강아지를 키워서 산책을 시키는데, 어느 날엔가 강아지가 산책 중에 갑자기 길고양이의 습격을 받아 눈을 다친 뒤로는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아이들에게 푹 빠지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아마 그가 오기 전부터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었고 그래서 인간을 경계하지 않은 아이들이 또 다른 이들의 기쁨이 되었던 것 같았다. 선순환이라고 해야 할까.     




이름도 여기 사람들이 지어준 것이라고 했었다. 애옹이, 삼식이, 감자 모두 자연스럽게 지어진 이름이라고 했다. 내가 정해둔 산책 시간이 끝나갈 때쯤 나는 그에게 작별과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스터디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그가 말했다. “저녁 시간에도 한 번 산책 나와요. 다른 분들도 그때 고양이 보러 오세요.”

나는 웃으며 화답했었다. “네, 여유가 되면 갈게요. 감사합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npc 같은 그와의 만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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