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갈비뼈 4번에 실금이 간 채로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첫 문장에 갈비뼈요? 네.. 주짓수요? 네...
3주 전 금요일이었다. 도장을 다니기 전에는 금요일은 다 놀러 다니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 도장엔 금요일에 사람이 더 북적인다. 신나게 몇 차례 스파링을 했고 집에 돌아와 푹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좀 이상했다. 음.. 옆구리 근육 쪽에 염증이 생겼나? 그도 그럴 것이 뼈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될 만큼 아프지 않았다. 누웠다가 일어날 때나 간혹 재채기가 나오면 조금 아팠지만 참을만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지 않았고, 운동도 계속 했다. 심지어 3박 4일 일본도 (주짓수 하러)다녀왔다. 통증이 거의 없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스파링 도중 스윕을 당해 오른쪽 옆구리로 정확히 떨어졌고 너무너무 아팠다. 아팠던 첫날 보다 더 아팠다. 음 이건 뭔가 확실히 잘못되었군. 즉시 운동을 멈췄다. 다음 날 아침 집사람의 출장 길을 배웅한 뒤 몰래 병원으로 향했다. 그럴수밖에.. 이번에 걸린다면 주짓수를 당장 그만두라며 뜯어말릴 것이 분명했다. 반드시 집사람이 돌아오기 전에 나아야만 한다. 병원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엑스레이부터 찍었다. 의사선생님은 3주 전에 다친 것이 갈비뼈에 실금이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엑스레이를 찍어봤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실금이었고 지금은 회복이 되면서 엑스레이에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는 그쪽으로 떨어져서 아픈 것이라고 하며, '꼭... 하셔야 하는 운동이죠?'라고 말했다. 그동안 선생님이 만났던 주짓수 인간들이 선생님을 이렇게 질리게 만들었나요? 대신 사과드립니다. 아무튼 예.. 저도 쉬고 싶지는 않은데. 선생님은 앞으로 첫 주는 혼자 연습만 하시고 둘째 주부터는 같이 하는 운동도 하시는데 대신 살살하십시오.라고 하시며 주사와 약 처방을 해주셨다. 아... 실금이라니.. 이게 무슨... 이게 무슨 일인가. 물리치료 실에 누워있는데 관장님께 문자가 왔다. '부상은 어떠신가요?' 답장을 드리니 단답의 답장이 또 왔다. '제 잘못입니다' 아니야. 아니야 관장님. 안 그래도 아픈데 죄책감까지 주지 마세요.
생각을 해 보니 그랬다. 애초에 해서는 안 되는 스파링이었다. 아마도 부상을 입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스파링의 상대는 나보다 20kg 정도 무게가 더 나가고, 10살이 넘게 어린, 20대 초반의 남자 블루벨트였다. 물론 시작 전에 살살해 살살해줘 무조건 살살 해줘야 돼 하고 부탁했고, 그도 분명 살살 하였지만, 그렇다. 나는 물복숭아 재질 인간인 것이다. 그와 나는 각자 몇 번의 다른 스파링 후 만난 것이었고 이미 둘 다 도파민 과다 상태였다. 그러니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부상을 몰랐던 모양이다. 신기하게도 상대가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다. 응.. 즐거웠거든. 지금 당신, 주짓수 인간에게 질리셨나요? 죄송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마사지 연고를 바르고 .... 도장에 출석했다. 주말 이틀을 쉬고 나니 많이 회복된 것 같았다. 근 이완제가 그렇게까지 잠이 오는 약인 줄 처음 알게 됐다. 아마도 사람을 못 움직이게 해서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장에 들어가니 관장님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아무 말씀도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셨다. 음... 괜... 괜찮습니다. 관장님은 여전히 빙그레 웃으며 앞섶을 주섬주섬 푸셨다. 보여드려도 되죠? 네. 근데 뭘.. 갑자기 냅다 래시가드를 올리곤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갈비뼈 하나가 이상한 자리에 툭 튀어나와 있었다. 처음 다쳤을 때는 조금 다쳤었거든요? 그래서 운동을 계속했어요. 그러다가 똑같은 자리를 또 다친 거야. 그랬더니 똑 하고 부러졌어요. 한 쪽이 쑥 들어가니까 한 쪽이 쑥 올라오더라고. 조금 다쳤을 때 쉬셔야 됩니다. 앞으로 2주간 기술 연습만 하세요. 안 그러면 진짜 접어야 됩니다. ...넵.
기술 연습만 하고 스파링 구경을 하다가 뽀송뽀송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상대는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는 조금 원망스러웠다. 곧 5개월 차. 다른 사람들 보다 너무 많은 부상을 입고 있다. 눈(탱이), 입술, 손가락, 그리고 갈비뼈... 멍 연고는 3개째 비우고 있다. 승부욕이 센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실력에 비해 너무 나대(?)고 있는 것일까. 풀 스파링을 허락받은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2주간 스파링 금지라니 나만 멈추는 게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조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문득 첫 달의 일이 생각났다. 주짓수를 시작한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코로나에 걸렸다. 막 재미를 붙이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너무 속상했지만 2주 푹 쉬고 회복한 후에 도장에 나갔다. 당연히 백지상태가 되었고 조금 시무룩해져 있었는데, 관장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습니다. 다시 하면 됩니다.' 하고 말하셨다. 20년이 넘게 운동을 한 사람이 보기엔 2주전 의 나나, 지금의 나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하면 되는 일이었다. 5개월? 5개월 전의 나나 지금의 나나 뭐가 그렇게 크게 다를까. 그리고 지금은 격리해야 하는 질병도 아니니 상황이 훨씬 좋다.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운동에 돌아버린 사람 같지만 5개월 전만 해도 의무감에 짓눌려서 꾸역꾸역 헬스장에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격기 운동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이렇게 낼롱 돌아버리게 만드는 것일까. 교통사고처럼 내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주짓수에 대해 조금씩 적어 볼 생각이다. 오늘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