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6
오랜만에 엄마에게 온 카톡에는 '민방위 통지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어느덧 나도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영원히 수능을 안 볼 줄 알았는데."에서 시작한 낙관적이고 막연한 기대는 시간이 지나며 신체검사, 병역, 예비군을 지나, 민방위까지 도달한 것이다. 통지서에는 그런 쓸쓸하면서도 뚜렷한 느낌이 있었다.
'이 친구를 만나다 보면 언젠간 결혼을 하지 않을까.' 나 또한 타인에게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평소처럼 저녁 식사와 간단한 술을 함께하고 난 후, 함께 담배를 피우던 때. 그녀는 어제 다른 남자와 하루를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생각해 보면, 내게 커다란 일들은 대부분 통지로 이뤄지곤 했다. "밥값을 네가 내겠다고 한 것엔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디저트까지 주문할 걸 그랬어." 눈물로 인해 흐려진 시야 사이로, 메뉴의 판나코타가 아른거렸다.
나의 엄마 또한, 아들에게 가진 막연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영국에서 대충 돌아온 후엔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누군가와는 언젠가 결혼을 할 것이라고, 지금껏 그래왔듯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아들이 될 것이라는. 대충 그러한. 속상한 이야기가 있다면, 엄마의 가진 기대치에 비해 그녀의 아들은 영 아니올시다- 라는 점이다.
엄마는 머리가 좀 짧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며칠간 기른 수염도 썩 꼴이 별로라는 말도 함께 했다. 어떻게 하면 예의도 지키고, 엄마에게 상처도 주지 않고 나의 고결함을 지킬 수 있을까. 여러 시간 고민한 후에 내린 결론은 "내 맴."이었다.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안다. 각자가 이유를 말하지 않는 것은 '네가 어떻게 말하든 내 맘대로 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엄마와 내가 가진 신뢰의 기저에는 서로를 쉽게 포기하는 방식에서 시작했다. 지금처럼.
여자친구가 내게 수염을 길러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따가워서 아픈 건 네가 아닐까.'랴고 말하려는 불건전한 마음가짐은 접어두고, "수염 길러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라고 대충 대답한 것이 2주 전. 엄마의 아들은 기다란 머리칼에 수염이 범벅인, 그녀가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 된 것이다. 자식 키워봤자 별 수 없다.
앞으로 어떠한 기대를 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외국에서의 삶은 불안정한 부분이 제법 많고,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다는 것은 더욱 그렇고, 이후의 생활을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기대보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도드라진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