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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곽 Oct 04. 2024

제2의 인생, 노래를 배워보자!

암환자가 보컬학원에서 노래를 배우게 된 사연


  암에 걸린 후에 바로 병가를 쓰고, 이어서 병휴직을 썼다. 직업이 공무원이라 그래도 휴직처리가 원활히 되어 다행이었다. 그 후엔 이제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마무리하는 하루가 계속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과일이나 요거트를 간단히 먹고 아파트 한 바퀴를 산책한다. 산책이 끝나면 친오빠가 하는 한의원으로 가서 침 치료를 받고 온다. 한의원에 다녀오면 왔다 갔다 거의 2시간 정도 지나있다. 벌써 점심시간이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채소와 해산물 위주로 요리해 직접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는 또 동네를 걸으러 나간다. 어디서 본 책에 암이 혈당수치와 관련 있다고 말하는 글이 있어서 식사 후에는 가급적 10분 이상 유산소를 하려고 한다. 휘적휘적 아무 생각 없이 아파트 한 바퀴를 걸어본다. 그러고 나서는 다른 주부들이 그러하듯 아기 장난감 치우고, 매트 들어 청소기 돌리고, 설거지를 했다. 그러고 나면 벌써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 이런 하루의 끝에 어느 날 남편이 제안했다. "이쯤에서 당신이 해보고 싶었던 걸 즐겁게 배우면 스트레스도 줄고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야기만 들어도 벌써 활력이 생긴다. 그래, 비록 내가 암이 생겨서 쉬고 있지만 오히려 이걸 기회로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한번 해보자!

  그렇게 보컬 학원에 등록했다.

  욕심이 많아 살면서 무수히 많은 걸 배우고 싶어 했지만(예를 들어 기타, 우쿨렐레, 피아노, 배구, 탁구 등) 끈기가 없어 끝까지 제대로 해낸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 내가 열심히 할 수 있고,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정말 좋아했다. 목소리만 가지고 하는 거니까 어렵지 않고 끈기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코로나 때문에 겨우 3주 정도 다녔던 보컬학원이 이미 있었는데, 전화해 보니 아직도 영업 중이라 그 학원으로 재등록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예전 선생님은 안 계시고 새로운 선생님이 계셨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려는지 첫 수업에 선생님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배웠을 때보다 훨씬 이해가 쏙쏙 잘 되게 설명해 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셨다. 물론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걸 내가 따라 할 수 있느냐는 별도의 문제지만, 그 쾌활하고 기운 넘치는 모습 자체가 이미 좋은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았다.

연습 첫 곡으로는 아이유의 마음을 드려요를 골랐다. 이 곡을 고른 이유가 있는데, 사실 보컬학원을 등록하면서 내 나름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해서 잘 부르게 되면, 주변 사람들 결혼식 등의 뜻깊은 행사 자리에서 축가를 부르고 싶었다. 목표가 있으면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할 동기 부여도 될 것 같고, 또 한 사람 인생에서 무척 의미 있는 날에 내가 살아남아서 축하를 건넬 수 있다는 게 나에게 너무 뜻깊은 일인 것 같았다. 아이유의 마음을 드려요는 주변의 친한 동생이 자기가 결혼할 때 축가로 듣고 싶은 노래라고 해서 골랐다. 당장 결혼할 친구는 아니었지만 가사가 워낙 좋은 곡이니 연습해 두면 분명 여러 결혼식에서 부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선생님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봤는데, 워낙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누군가 앞에서 시원하게 노래 부르는 것이 부끄럽다기보다 '누가 내 노래를 이렇게 정성껏 들어주다니, 행복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보컬학원에 등록하기를 정말 잘했어.

그렇게 벌써 약 4개월 정도 배우고 있는데, 운명처럼 축가 약속이 잡혔다. 오랜만에 연락하게 된 언니와 통화하며 언니의 결혼 소식과 나의 암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그날 언니가 나에게 축가를 맡긴다고 했다. 감격스럽다. 언니는 나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준 지 모르겠지. 고마운 마음뿐이다. 언니가 축가로 원한 곡은 다비치의 팡파레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많이 들어본 적은 없는 곡이었다. 문득 여성 2명이 부르는, 고음이 꽤 있는 곡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보컬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가능하다고 하셔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축가는 10월 예정인데, 노래가 많이 많이 늘어서 언니의 기쁜 날에 내가 살아남아(^^) 멋지게 축가를 들려주고 싶다. 노래 잘하는 아는 지인이, 보컬 학원을 다닐 거면 1년은 제대로 다니라고 했는데, 1년 후에 그리고 축가를 부르게 되는 날의 멋진 내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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