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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월 Apr 22. 2024

일터에서 쉼터 찾기

Job-念(잡념)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공간인 우리 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공간은 따로 있다. 나의 경우 방에 있는 작은 소파가 그런 곳이다. 침대는 각 잡고 '휴식'하는 곳이고, 책상 앞의 의자는 무언가 '집중'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따른다. 그러나 소파는 휴식과 집중의 중간인 회색지대 같다. 그래서 쉬어도 되고 뭔가에 집중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그냥 멍을 때려도 좋다.


그곳에 몸을 늘어트리면 휴게실이며 책을 잡으면 도서관이 되고 음악이나 영화를 틀면 감상실이 된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앉아 잠시 충전하는 시간을 가진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때도 소파에 앉으면 생각이 정리된다.


돌이켜 보니 나는 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장소에 항상 '애착공간'이나 '쉼터' 하나씩은 있었다. 중고등 학교를 다닐 때는 교실 창가 맨 뒤 볕이 잘 드는 곳이 그랬고 대학교를 다닐 때는 도서관 뒤쪽 자판기 옆에 있던 벤치가 그랬다. 교우관계, 학업 스트레스, 장래에 대한 고민에 머리가 무거울 때면 그 장소들을 찾아 가볍게 비웠다. 그렇다면 회사에서는?


회사에서는 더욱 그런 애착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출근할 생각에 한숨이 나오고,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이 놈의 회사 확 때려치울까 몇 번이고 마음먹게 만드는 장소일수록 나의 심신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장소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감정이나 스트레스는 관성을 받아서 가만히 두면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잠깐이라도 멈춤 버튼을 눌러주어야 한다. 회사 사무실 자리에서는 그 버튼이 꽁꽁 숨겨져 있어서 찾아 누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업무를 보고 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있는 사무실 자리에서는 관성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애착공간은 평소에도 잠시 멈추기 위해 찾아가기 때문에 버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나는 이미 회사에 나만의 '애착공간'을 만들고는 그곳을 찾아가고 있었다. 바로 화장실 세면대 앞의 유리창이다. 창이 크게 나있고, 건물도 높아서 그곳에서 밖을 내다보면 시야가 트여 있다. 창 밖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은 작게 보이고 도통 올려 보지 않았던 하늘은 가깝다. 그러다 보면, 내가 고민하는 것들과 속상해하던 일들이 별 일 아닌 게 된다. 양치를 하다가, 혹은 손을 닦고 나서 1~2분씩 그렇게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온다. 어떤 때는 일부러 그 창을 보려고 화장실에 가기도 했다. 괜히 한번 더 양치질을 하며 밖을 내다보면 눈과 마음이 정돈되고 입 안은 상쾌해진다.


이처럼 애착공간이자 나만의 쉼터는 꼭 회사에서 만들어준 휴게실일 필요는 없다. 화장실의 탁 트인 유리창 앞도 좋고, 커피 향이 나는 탕비실도 좋으며 바람을 쐴 수 있는 옥상 공원이나 회사 앞 벤치도 훌륭하다. 장소가 어디든 남들이 뭐라 하든 중요한 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쉬어갈 수 있는 곳, 이상하게 그곳에만 가면 뒤집어질 거 같던 속도 차분해지는 그런 곳이면 충분하다.


상사와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라면, 그리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애착공간을 회사에서 찾지 못한 분이라면 꼭 하나 만들어 보시길 추천한다. 일터에도 확실한 나만의 쉼터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자신을 잃기 전에 다시 스스로를 찾고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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