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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May 07. 2024

한 우물만 팠더니 그 우물에 빠졌다 (8)

4-3. 고인 근육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운동을 하면서 무언가를 못한다는 것은 큰 상처가 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따르겠지만 그것이 '비난'이 아닌 정확히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팩트'라는 것을 느낀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나도 그랬다.

PT를 받기 위해 테스트를 해보고, 부끄럽지만 나 혼자 갈고 닦은 스쿼트도, 나 혼자 해왔던 운동들도 선보이며 선생님 앞에서 잘못된 자세를 테스트 받을 때! 처음 PT를 받아보는 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선생님은 최대한 내 장점을 찾으려 애를 쓰셨으나, 혼자 운동을 해온 나의 몸짓이 전문가의 눈에는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회원님, 근육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는 심란하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아우성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건치로 밥을 씹어먹는 줄 알았더니

사실 저는 이가 없어서 잇몸으로 밥을 먹는 애였단 말씀이신가요

근데 이제 잇몸인 줄도 모르고 아그작대서 잇몸이 다 아작난...?

임플란트가 되긴 하나요...? 틀니를 살까요...?

... 저, 괜찮을까요?'






PT에 열정을 가지고 몇 달을 배운 나는, 지금에서야 안다.

헬스장에 있는 사람들 중 '제대로'운동을 하는 사람과 '제대로'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이래서 헬스장의 고인물들이 때때로 내 움직임을 참지 못하고 다가와 "죄송한데 가슴 좀 펴주시겠어요? 죄송한데 팔 좀, 죄송한데 자세 좀"했던 것을.


나의 근육은 당연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운동'에 필요한 '그 근육'을 움직인 게 아니라, 그냥 쓰고 싶던 근육을 움직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근육을 쪼개서 운동한다고 할 때, 나는 '그게 뭐?'했다.

모르면 용감하기에 굳이 뭔가를 쪼개서 하지 말고 크게크게 잘 하면 될 것 같았다. (이거야 말로 뭔 소리야. 진짜 용감하다.) 어쩐지 수년을 운동을 해놓고도 근력이라는 늘지도 않았고, 근육도 자라지 않았다. 흥이 나면 식단도 해보고, 흥이 나면 술도 끊어가며 운동을 해보았어도 대단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당장 카드를 긁었다.

비록 선생님의 말이 PT를 시작하게 하는 뻔한 영업 멘트일지라도, 칭찬으로 당근 주고 바로 채찍으로 후려쳐서 내 카드를 꺼냈을 지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일시불이요."


한 방에 긁은 카드값만큼, 근육도 한 방에 생겼으면! 하고 나는 또 뻔뻔한 생각을 했다.



당시의 나는, 회사 일이 매우 힘들었다.

사실 일이라기보다 사람의 문제였는데, 15년의 세월과 마침 만난 빌런이 어우러져 나의 퇴사를 앞당겼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의 업무는 늘 즐겁지 않았고 우울했으며, 뭔가 노력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울감에 살이 빠지고, 잠을 자도 피로감이 쌓이던 와중 나는 PT를 나갔다.


당시 나는 PT에 중독되어 있었다, 고 생각했으나 생각해보니 PT가 나를 살렸다.

움직이지 않던 근육을 선생님과 쪼개고 쪼개 움직였다. 그게 제 할 일을 하면, 미미하지만 그 변화가 느껴졌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잘 하면 잘 하는대로 선생님의 칭찬이 따른 것은 기본이며, 그 차이를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회사의 일이 우울하면, 무조건 PT를 하러 헬스장으로 향했다.

빈 봉만 들고(비었다고 해도 20KG이다.) 겨우겨우 스쿼트를 하던 내가, 양쪽에 10KG의 원판을 끼우고 40KG의 스쿼트를 했으며, 시간이 지나자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70KG정도를 들고 스쿼트를 할 수 있었다. 힘이 강해질 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굉장히 고강도의 PT를 받기를 원했는데, 선생님은 그런 회원을 찾았던 듯 했다.

나의 의지가 강해질 수록 선생님의 열정이 불타올랐다.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날, 선생님은 나에게 속삭였다.


"저 체대 입시 준비할 때, 울면서 운동했어요."


... 선생님, 저는 체대 입시 안 하잖아요.

아, 그런데 그렇잖아도 일 하기 싫던 찰나인데 지금이라도 체대 가요?

이렇게 인생을 바꾸나?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에 운동은 너무 고되고, 힘들었다. 뿌듯한만큼 따라오는 근육통.

아, 체대로 인생 한 번 틀어보려 했는데, 나이도 나이였으나 체력이 안 됐다. 아쉽다, 나이는 무시하더라도 체력만 좋았으면 우물 탈출해서 체대생 한 번 돼보는 건데.



체대생은 되지 못했으나, 그 무렵 나의 근육은 쑥쑥 자랐고.

나의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운동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근육과 스트레스가 동일한 수준으로 무럭무럭 자라던 어느 날.

나는 회사를 때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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