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것은?
내가 아주 어릴 적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미래에 블로그가 뜬다. 블로그를 해라.'
안 했다.
후배가 말했다.
'선배 그러면 블로그나 하라니까요?'
또 안 했다.
동생들이 취미로 블로그를 하며 말했다.
'우린 블로그하는데? 왜 안 해?'
그냥 계속 안 했다.
그렇게 계속 안 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블로그 해야겠다!
블로그는 이미 한물 갔다고들 이야기하며, 모두가 영상 작업물에 뛰어들어 모든 사람들이 유튜버가 되고, 브이로그를 올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블로그를 권했던 모두가 말 했다.
조금 늦으면 어떠랴.
어쨌든 한 가지 일만 하고 살아온 나에게는 다른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었다. 솔직히 말해, 당장 직업을 때려치고 도전을 하기에는 그럴만한 용기는 없었으니, 어정쩡하게라도 '뭐라도 하나 더 한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정말 뻔하지만, 또 정말 맞는 말인지라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에 주제를 잡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할 것 같은데, 말했다시피 한 우물만 팠던 나에게는 직업 이야기 외에는 할 게 없었다. 근데 그렇다고 나 일하는 이야기만 줄창 써내려가자니 그건 스트레스가 더할 것 같았다.
뭘 쓰지?
고민을 하던 나에게 주변에서 내린 답은 간단했다.
술 이야기나 써!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던 때는 유튜브가 굉장히 흥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유튜브도 거의 레드오션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그 레드가 정말 '찐'레드인 상태였고 그 와중에 블로그는 레드오션이 됐다가 김이 다 빠져 식어버린 느낌이었다. 지금 나 역시 블로그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긴 웃기지만, 이미 유행이 지나고도 지난 곳에서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 정말 재미가 없을 것 같기도했다.
유튜버들은 다 브이로그를 찍고, 블로거들은 다 맛집을 올렸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많았지만 초짜가 도전하기엔 딱 좋은 주제들이었다. 누구나 일상이 있고, 먹고 사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좀 평범하다 싶기도 했으며, 사실 어느새 세상 사람들이 너도나도 술을 즐기면서 술을 주제로 한 글이나 이야기는 너무나도 넘쳐났다.
근데 말이지.
이렇게 생각이 많아서는 결국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았다.
이미 '블로거가 되는 것'자체가 도전인데, 그 도전을 위해 또 도전을 한다?
도전을 위한 도전을 위해 그 도전의 발판이 될 도전을 하는 도전적인 나.
도전에 치여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단 '블로그'를 만드는 것 자체가 도전이니,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 마시는 술을 가지고 그냥 써보자!
그런데 '그냥 술집'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안에 '핵심'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맛집 블로거들을 보면 모두가 특징이 있다.
대단한 사진 기술로 엄청난 사진을 찍고, 메뉴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찍어가며, 맛의 미세한 차이까지 집어내는 진짜 전문적인 블로거.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정확히 모든 메뉴의 가격, 영업시간, 주차정보, 예약정보, 화장실 유무까지 세세하게 적어서 이 블로그만 보면 그 맛집에 언제든 편하게 방문할 수 있게 해주는 블로거.
요즘은 또 편한 일상을 올려서 매 달, 매 일의 내 이야기를 올리는 블로거.
그렇다면 나는?
일단 나는 대단한 미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사진 기술조차 허접했다.
대단한 정보를 적자니 솔직히 술집에 가면 즐기기 바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나는 빠르게 체크해나갔다.
사실 웃긴 게 도전을 하기로 결심하기 전에는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도전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면, 도전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그것만 빼면 도전할 수 있는 요인'이 됐다. 도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막상 하기로 결심하면 '할만한 것'들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을 빼고 난 내 블로그의 기획 의도는 '나를 위한 술(맛)집 기록'이었다.
'나'를 위해서 쓴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을, 내 기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담는다. 블로그를 만들어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건 내 지인들이었다. 맨날 같이 술집갈 때 술집 찾느라 고생하지 않고, 내가 다녀온 집 설명하느라 구구절절하지 말고, 내가 쓴 블로그 링크 하나 띡! 보내는 게 내 목표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쉬워졌다. 구독자가 내 지인들이라고 생각하니 이야기를 쓰기도 편하겠다 싶었다. 맨날 같이 술 마시는 술쟁이들은 술집에 원하는 게 빤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을 위한 블로그의 첫 포스팅을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