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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A Apr 15. 2024

짝사랑을 되돌려받았어

너는 나빠, 나는 나빠

https://youtu.be/k0zfPAQFiss?si=7Jzy5I6YDqrd9Oks

* 엄마가 이상하게 이 드라마를 좋아했다. 너무 어릴때라 기억도 안나는데, 노래만 언뜻 생각난다.


타코를 먹으려 자신있게 알아본 가게는 문앞에 다다르자 닫혀있었다. 이미 그때부터 뭔가 예감이 안좋았어.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눈앞에 보이는 저기 들어가자고 했다. 

달리 수가 없는 나로는 그냥 그러자고 했지만 저곳은 음식이 맛없어서 예전에 가족끼리 먹었을때도 돈이 아깝다고 불평했던 곳이었다. 

그치만 딱히 대안도 없는 찰나에 음식만 따지는 예민충이 되고싶지 않아서 '아마 별로 일텐데 감안하고 먹어요 우리' 라며 그를 안쪽 소파자리로 양보했다. 

먹는동안 내가 무슨 실수를 했었나? 딱히 없었던 것 같아, 그리고 대화는 평범했다. 

연락을 하고 지낸지는 2달이 넘었지만 얼굴을 본건 2-3번밖에 안되서 막상 그간에 나눈 메시지들이 휘발되어 싸구려향수처럼 날아가버리고 서먹해지려나? 싶었지만 의외로 그는 수다스러웠다. 

본인 말로도 스스로 말이 많은 편이라 했고, 내가 의외로 말수가 적다며 자기 보다 어린 '동생'을 즐겁게 해주려 했다고 으쓱했다.  자기 친구들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의례 이쪽 사람들이 그렇듯, 처음 만나면 본인 이야기를 해주고, 듣는것을 부담스러워하는지라 일단 친구부터 팔아먹는다. 누구랑 친하고, 우리 서로 팔로잉된 사람이 누구고, 형 사진에 댓글단 그년이 사실 걸레구,,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둘러가다보면 상대방의 얼굴이 좀 더 뚜렷하게 기억에 남기 시작한다. 


아, 코가 생각보다 조금 크구나. 얼굴이 나만큼 작은 남자는 보기 힘든데, 거의 나만하네?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탄탄한게 보기 좋았다. 대게 뽀얀 사람들만 만나다 까무잡잡한 남자를 보니 깊이감있는 청동 오브제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자세히보면, 그 까무잡잡함 안에서 어느곳은 연하고, 어느곳은 더 진했다. 그렇게 둥글리게 형셩되는 그을음들의 깊이가 '그'라는 사람의 쉐입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울림이 좋았다.  

운동하는게 그렇게 재미는 없지만 하는 수 없이 한다고 했다. 5개 하기로 했는데 늘 2-3개쯤 하고, 이만 하면 됬어! 하고 내려놓는다는 그가 너무 귀여웠다. 나는 5개밖에 못한다고 엄살 부려요, 그리고 3개를 더 못하면 내가 쓰레기라고 자책하고, 2개를 더 채우지만 실은 10개 할 수 있다는걸 알고 있었을 뿐이죠. 자신의 가지고있는 몸둥아리와 이바닥의 생리에대해 꽤나 고민의 흔적이 역력해보이는 철학도 좋았다. 

어렸을땐 나한테 안어울리는 옷을 입었어요. 머리도 염색하고, 너무 말라서 해골같아 보일정도였어. 

아마 그때 나 봤으면 동생은 말도 안걸었을거야- 하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 미소에 어떠한 누군가의 미움이나 자책이 서려있지 않아서, 눈앞에 놓인 자몽에이드보다 상큼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 나를 몸만 보는게 싫어요. 그러려고 운동한게 아니면 뭐냐라고 물으면 할말은 없지만, 

단순히 운동하는게 누군가한테 보여지기위해서만은 아니잖아요.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건 연애를 하게되서 나중에 시간이지나 공원을 산책하며 이야기해도 좋겠다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둘다 근육질의 마초스러운 남자를 선호 했다. 그리고 쇼윈도에 비친 두 남자는, 충분히 그래보였다. 

그런데도 뭘 어떻게 '남자다워야'하는건지, 그는 그것을 '책임감'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비겁하지 않은 마음' 이라고 말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계산을 해놓았고, 브런치값이라기엔 맛도 형편없는데다가 가격가지 꽤 나와서 기분이 상했다. 그는 머쓱하게 일어나 백팩을 메고 먼저 걸어나갔다. 이미 계산을 한뒤인듯, 나는 그게 싫었다. 

'앞으로 그렇게 먼저 내지 말아요, 나 그렇게 누가 다 내는거 싫어요'. 앞으로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밥값을 빚졌다. 누군가한테 빚지는게 죽기보다 싫은 나는, 

그 사람이 사준 맛없는 브런치를 빚진것이었다. 기분이 좀 안좋았다. 

카페에들어간 그는 아까와는 다르게 갑자기 사무적인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사실, 우리 못했던 이야기 하나 있잖아요. 그거 이제 이야기 해봐요. 라며.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씩 쿵-떨어지며 내 팔다리에 떨어졌다. 돌맞아죽는 개구리가 이런기분이었을까? 


전애인과 연락하고 있다고 했다. 몇일전에 갑작스레 이야기를 꺼내서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말하는걸까, 친구는 당연히 '돌아가고싶으니까' 라고 답했고 

그는 처음부터 말해야되는걸 알았지만 , 그렇지 못한것에대해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했단다. 

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했지, 그 사람이랑은 전에 만났던 사람이고, 나는 갑자기 끼어든 사람이니까. 

나한테도 유예기간을 줘요. 나랑 3번만 더 만나봐요- 그는 그런 나를 종종 '귀엽다'고 말했다. 

자기보다 한살 어린데, 큰 덩치에,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꼬박꼬박 이름을 붙여가며 ㅇㅇ씨- 하고 

부르는, 저음의 목소리가, 어디갈까요하며 데이트코스를 짜고 상상하고, 

우리 괜찮으면 모텔가서 잠깐 쉴래요? 이상한거 말고, 그냥 편하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하는 이 모든 말들을 '귀여워 했다'. 기분이 조금 상했다. 

나는 한국말에서 '귀엽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건 일본어의 kawaii 와는 다른 의미이니까. 귀엽다라는건, 나보다 약하고, 작고, 여린존재에게 느끼는 곤란하고, 어쩔줄 모르겠고, 거절할 수 없는 마음에대한 미안함같은것이니까. 그는 사실 알지도 못했겠지. 

내가 그를 더 좋아한다는것만으로도 그가 내 앞에 있을때 우위에 서있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지. 

날 좋아한적이 없으니까. 근데요 귀여운건 곤란한데, 귀여운건 친구에요. 멋있어야 연애를 하구요. 

그는 끝까지 그게 왜요? 그냥 귀여워서 귀엽다고 말한거라 했지만 내가 맞았다. 


왜냐면 정확히, 나도 누군가에게 '귀엽다' 얼버무린 마음들을 마주한적이 있으니까. 

그는 꽤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전애인과 연락한지는 나랑 연락을 시작한지 거의 비슷한 시점이었고, 나랑 연락을 하면서 느낀게, 그 사람을 다시한번 잡아보고싶고, 서로의 마음도 어느정도 확인됬고, 

후회할 짓을 하고싶지 않아서 란다. 그렇게 그는 또렷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혼나는 학생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생활을 오랫동한 한 그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영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무 미안해, 네가 나를 때리고, 화내고, 커피를 끼얹어서라도 화가풀린다면 그렇게해'.

나는 이런상황에서 다른사람들의 시선같은게 눈에 뵐리 없는 배우출신이다. 나는 울것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화는 안나는데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화는 나중에야 날 수 도 있겠지, 이별을 받아들이는 공식 단계마냥, 그를 욕하고 분풀이를 해야 속이 시원해질 것 처럼, 그거야 나중에서야 그렇겠지만은, 그 순간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오늘 일찍 만나자고 했어요? 난 근데 그것도 모르고 나랑 오래보고싶어서 그런줄 알았잖아요' '이럴거면 귀뜸이라도 해주지, 답장이라도 늦게하고, 뜸도 들이고, 바쁘다고 사라지기도 하고 그러지. 그러기에 너무 연락도 바로바로 왔고, 이야기도 너무 많이 했잖아요.

' 이미 옆테이블에선 낮은 목소리로 수근거리며 연신 '어머'를 내뱉었다. 

그래 여러분, 이게 리디북스에서만 보는일들이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답니다. 

알게뭐야, 그는 어쩔줄 몰라 하느 표정으로 말했다


 '동생 기다리게 하면, 상처만 줄 것 같아서 그래요. 그찮아요?'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 나랑 연락한거 노력했던거에요?'

'생각해보면, 좀 노력했던 것 같아요. 동생이 겉으로 봤을때 누가봐도 멋지고 잘생겼으니까. 그래서 연락하면서 그 사람을 잊었다고 확신할거라 생각했나봐요' 

'그럼요, 이건 못하겠어요. 연락하는 순간만큼 형이 진심이었다면, 몇번이고 기다릴 수 있겠는데, 

남자는 연락하는걸 노력할 수 없거든요. 그런건 노력하는게 아니에요. ' 


주변친구들과 연애고민을 이야기할때마다 늘 그런 사소한것들에 우리의 마음이 뻐렁치게 흔들렸다. 

왜 내 연락을 읽지 않지? 아니 1은 없어졌는데 왜 답장이 없는거야? 바쁘다고 말은 했는데, 

그게 그렇다고 요즘같은 세상에 핸드폰을 못볼정도로 바쁜게 말이 돼? 

그때마다 제일 모진 대답은 한마디였다. 어렵게 생각할게 없어.심플하게 생각해봐,  <좋아하면 안그래>. 

어쩜 이렇게 같은거 달린것들끼리 좋아죽어서 연애좀 해보겠다는데 이리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는걸까? 

그건 내가 기대하는 바와 다를 현실을 부정하는 오래된 자아와의 사투일 뿐이었다. 남자들은 정말 단순하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을 한다. 그걸 못참겠으니까 좋아하는거다. 그리고 그가 나한테 하는 모든 애매하고 해독이 필요할것같은 오리무중의 말들 모두, <좋아하면 안그런다>. 

그와 헤어질때, 악수를 청하고 그를 안았다. 


"좋아해서 좋았어요. 그 사람이랑 잘되란 말은 못하겠구요, 잘 지내요. 나는 더 잘지낼거니까" 


그는 말을 잃었다. 후회되는건 아닐거고, 미안한거겠지. 친한 형동생으로라도 지내고싶다는 그의 말에, 

그것도 나는 지금 아무생각이 안든다고 내팽겨쳤으니까. 실은 아는사이로라도 지내면 좋았을까? 

어차피 아는 사람들이 한두명씩 엮여 있었고, 앞으로 이태원을 나가게 된다면 결국 만나는건 시간문제니까.  자기눈에 한없이 귀엽고 걱정되는 동생이라면서, 오히려 어깨를 툭치며 '이거 다 내덕분에 형이 누구 좋아하는지 깨달은거에요. 원래 나이먹어도, 자기가 누구좋아하는지 모르거든. 그건 남때문에 아는거야' 

실 없는 농담을 내뱉으니 쓴웃음을 짓는 그가, 너무 미워서 한대 치고싶었다. 

이제 곧 그에게 화가 날 시간이 다가오겠지. 그리고 그건 굉장히 자연스러운거고, 내 인격이 하등하거나, 못난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를 있는그대로 좋아해봤기 때문에 건널 수 있는 터널이라 생각하겠어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정확히 이년전에, 나를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그랬다.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보이려, 얼마나 어떤 노력을 하건 관심이 없었다. 나는 정말 의외로 무심한 남자새끼같은 면이 있는 덕택에, 엄마는 '재잘댈때만 친하지, 지 기분 안좋으면 찬바람 부는 사내새끼' 라는 말을 했다.  그사람이 입었던 베이지색의 트렌치 코트와, 차에서 나는 좋은 방향제와 카오디오에서 흐르는 클래식이 모두 지루 했고, 지루했다. 이 시간을 빌어서, 그를 다시 만난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겠구, 

'고맙다'고 사과하고싶다. 나같은걸 좋아해줘서. 그래서 당신의 짝사랑이 나한테 돌아왔어요. 

아마, 당신 맘 하나, 허투로 지나치지 말라고 그 사람이 나한테 왔나봐요. 

우리는 그렇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았으니까. 그건 너무 당연한건데,

왜 가해자와 피해자가 늘 동일시 될 수 없는걸까. 나는 이 짝사랑을 다른 누군가한테 떠맡길까? 


그를 좋아하니, 한국에 온뒤로 10시이전에 일어난적 없는 내가, 8시 반에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나 때문에 전애인을 정말 사랑한단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그 덕분에 좀 더 부지런하게 나를 끌고갈 자신이 생겼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아직도 그가 밉지는 않다는 거야. 시발새끼, 뭐새끼 욕을 하고싶은데, 

무서워서 그 사람 인스타에도 들어가질 못하겠다는게, 그리고 내가 했던 병신같은 말들 하나 하나가, 

그 사람눈에 귀여웠다는게, 정말 귀여웠던 걸까, 보답하지 못할 마음의 죄책감이었을까. 


그래도 좋아해서 정말 좋았어요. 나는 역시, 사랑을 해야 하나봐. 당신이 좋아지니까, 

나도 내가 좋아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어서 아둥바둥해. 

그렇게 지지리못난이 내가, 애쓰는게, 그게 좋아. 잘 지내. 그리워 하진 않을거니까. 


이 글을 쓴지 2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때때로 나에게 자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모든게 우스워졌다. 짝사랑이라는 말도 빼앗긴 기분이었다.


우린 참, 나쁘고 가볍다. 그래서 때로는 혐오스럽고 이런 어쩔 수 없음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의 짝사랑을 되돌려받은 B가 등장했다. 나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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