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존재의 순환
작년 9월 느닷없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걱정스러운 월요일 저녁이었다. 야간 강의를 위해 퍼덕이는 우산에 얼굴을 묻고 전주에서 남원 가는 열차에 겨우 올라탔다. 거의 남원역에 도착할 시간이 되어 기차칸에서 서성거리는데 낯선 동남아 청년이 가볍게 눈인사를 건넨다. 건성으로 응답하고 잠깐 시간이 흘렀다. 그 청년이 주춤 다가오더니 기차표를 슬그머니 보여주며 서투른 한국말과 눈짓으로 "이 표가 맞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뒷골을 잡을 뻔했다. 천안에서 대구 가는 기차표를 들고 서울 용산에서 전주와 남원을 거쳐 여수까지 가는 전라선을 탔던 것이다. 비바람은 잦았졌으나 어둑한 저녁에 어떻게 대구까지 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니 내가 아득하였다. 대화를 잠깐 나눠보니 우즈베키스탄 청년이었다. 어쩌면 좋을까, 망설였다.
어둑한 저녁, 대구 가는 차표를 들고 여수 가는 기차에 잘못 올라 탄 우즈베키스탄 청년
남원역에서 일단 내리자고 말했다가 번복하였다. 여수까지 큰 도시로 나가야 대전을 거쳐 대구 가는 기차 편이나 버스 편이 수월할 것이었다. 남원역에서 기차가 멈췄다. 여수까지 가서 역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라고 말하면서 5만 원짜리 지폐를 황급하게 손에 쥐어 주었다. 막무가내로 사양하였다. 서로 눈망울이 글자 그대로 허공에서 엉켰다. 새까만 눈망울에 갈색 피부가 어울리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문득 배낭여행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인도 군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때 입었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잠재적 본성이 떠올라서 우즈베키스탄 청년에게 나도 모르게 5만 원짜리 지폐를 건넸나 보다.
2020년 2월 인도에서 바라나시를 여행하고 이제 네팔 국경과 가까운 북서쪽으로 이동할 작정이었다. 부탄과 가까운 시킴 왕국과 칸첸중가 국립공원에서 트래킹도 할 계획이었다. 그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라나시 부근의 무갈사라이역에서 기차를 타고 뉴잘패구리까지 가야 한다. 683km로 1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무갈사라이 역에 도착하니 대략 5~6시간씩 기차가 연착되는 탓에 혼잡하고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도 많았다. 밖에서는 개들이 날카롭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몇 마리 개는 대합실 안에까지 들어와서 물고 뜯었다. 기차 출발시간은 7시였는데 연착을 거듭하여 10시 30분이 넘어서야 기차가 도착한다는 글자가 전광판에 떴다. 기차 승차홈은 정해져 있지 않고 수시로 철도앱에서 공지된다.
문제는 내 핸드폰이 와이파이 외에는 인터넷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아끼려고 유심을 인도 현지에서 구입하려고 했다가 규정이 까다로워서 포기했기 때문이다. 기차 앱(train men)을 깔 수가 없으니 수시로 바뀌는 기차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우리를 차량 침대까지 안내해 주었던 인도역의 젊은 무장군인, 어느 전투에서 부상당한 듯 다리도 불편
출발 게이트에서 경비를 보던 철도 무장군인에게 무갈사라이역으로 가는 기차 승차홈을 물어보니 철도앱에서 3번이라고 확인해 준다. 3번 홈에서 기다리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힌디어로 어떤 설명이 나오는데 착오가 생긴 것 같았다. 잘못하면 기차를 놓칠 수 있었다. 다시 아까 철도 경비군인에게 달려가서 확인하니 2번 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놀래서 황급히 뛰어가려는데 군인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기차가 도착하기 5분 전이었다.
갈색 피부에 수염이 있고 소총을 맨 인도군인은 나와 와이프틀 2A 코치 차량 안에까지 올라가서 침대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뒤에서 보니 어느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는지 다리도 약간 절은 듯한데 고마웠다. 같은 룸의 철도침대에 누워있는 인도인도 내가 무장군인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랜 눈치였다. 불안한 기차여행에 어깨가 더 으쓱했다. 안도의 숨을 쉬고 침대에 앉자마자 기차가 덜커덩하는 소리를 내며 출발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인연이 그물망처럼 번져서 인도 군인에게 입었던 신세가 우즈베키스탄 청년에게 이어졌을까. 지금도 그 청년이 어두운 밤을 뚫고 대구까지 잘 도착했는지, 낯선 기차칸에서 불안으로 초조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이데거는 우리는 세계에 내동댕이쳐진 존재라고 한다. 나 자신의 주체는 데카르트처럼 '생각하는 확실한 이성의 존재'가 더 이상 아니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존재다. 오직 확실한 것은 내가 세계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뿐이다. 세계- 내- 존재이다.
우즈베키스탄 청년이 가끔씩 떠올랐던 까닭은 불확실한 여정과 불안이 나의 실존과 겹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불안과, 나의 불확실은, 따뜻한 마음이 담긴 손이 서로 마주 하면서 조금은 줄어들었지 않았을까. 세계-내 - 존재의 이음과 만듦이다.
혼자서 고속버스를 타고 밤에 떠난 노인, 세계 -내- 존재의 이음과 만듦
진짜 오래전에 읽었던 단편 소설 하나가 떠오른다. 때는 추석 전날이었다. 저녁 7시 서울로 출발하는 고속버스가 있었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버스에는 노인 한분만 타고 있었다. 다른 승객들은 혹시라도 빈자리가 생기면 차표를 바꿔서 타려고 버스 밖에서 줄을 서있었다. 출발 시간 막바지까지 버스는 텅텅 비었다. 결국 알고 보니 노인이 혼자 차표 41장을 샀던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 있었던 고속버스 안내원이 할아버지에게 가서 통사정하였다. 차표 요금을 드릴 테니 밖에 있는 사람들을 태워서 함께 가자고 애원했지만 노인은 단호하였다. 실랑이 끝에 7시가 넘어서야 고속버스는 별 수 없이 노인 한분만 태우고 출발하였다. 승객들은 버스 밖에서 차창을 두드리고 아우성쳤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밤으로의 여행처럼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안내원이 겨우 노인에게 말을 걸어서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노인은 자식들이 모두 이민을 떠나서 외로웠다. 이제 연락도 끊긴 자식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멀리 떠날 생각을 하였다. 물론 세계 어디에도 갈 곳은 없었다. 노인은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없앴다. 고속버스 차표 41장 값만 남겨놓았다.
모두가 고향으로 떠나 가족과 만나는 추석 전날에 노인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로 외롭게 떠나는 것이었다. 노인은 몇 시간 후면 휘황찬란하고 인파가 넘치는 서울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존재가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밤버스를 타고 낯선 곳으로 떠난 노인은 어떻게 됐을까, 가끔씩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 청년과, 인도의 군인과, 나와, 노인은 불안과 존재로 순환하여 지금 여기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