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다 타이완에서 평생 전당포를 운영했던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스물아홉 장의 전당표』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에게 전당포는 썩 좋은 이미지를 주지 않기에 책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쁜 전당포의 기억은 토스트에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고리대금업의 노파를 살해하는 장면에서도 두드러진다. 우리에게도 전당포는 1876년 구한말의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토지를 담보로 조선인의 농토를 빼앗는 수단으로 악용되었기에 유쾌하지만은 않다.
반면에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했던 착한 전당포의 이야기도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의 아버지들은 초봄이 되면 허름한 코트를 전당물로 잡혀서 신학기에 필요한 자녀들의 학비를 빌렸고 다시 겨울이 오면 그것을 어렵사리 되찾아 혹독한 추위를 넘겼다. 이때 전당포는 소액 대출 겸 좁은 단칸방 살림에 숨통을 터주는 창고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더욱 애잔하다. 1920년대 인적이 뜸한 섣달 그믐날 저녁 늦은 시간에 초라한 행색의 사나이가 전당포 문을 두드렸다. 신문지에 뭔가를 둘둘 말아 싼 물건을 쭈뼛쭈뼛 내놓자 주인은 아무런 말도 묻지 않고 금전 통을 열어 지폐 몇 장을 세어서 주었다. 전당포 주인은 신문지를 풀어헤치지 않아도 그 속에 들은 담보물이 뭔가를 아는 눈치였다. 내용물은 다름 아닌 부인의 개짐(생리대)이었다.
오직 사정이 딱했으면 그랬을까. 물론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아이를 잘 낳는 다산(多産) 여인의 속곳은 주력(呪力)이 스미고 있다고 여겨서 아무리 누더기라도 비단 여섯 필을 쳐주었다고 한다. 치마보다 속곳이 비싸고 속곳보다 개짐의 값이 많이 나갔다. 그런 주술적 무의식이 작동한다고 해도 설 명절 전날에 쌀 한 됫박도 살 수 없어서 부인 몰래 개짐까지 들고 나선 사나이의 딱한 처지를 누가 알 수 있을 것인가.
돈을 맡기고 돈을 빌려간 전당포 이야기, “돈이 있으시면서 뭐 하러 돈을 빌리려고 하세요?”
『스물아홉 장의 전당표』에서도 착한 전당포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데 ‘돈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가는’ 황당하고도 아이러니한 대목에서 현대 화폐사회의 저변을 흐르는 원시화폐가 떠올랐다. 돈은 무엇이 됐든 모두가 똑같은 돈이라는 사고가 현대화폐라면 ‘돈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돈이 아니다’라는 관념이 원시화폐의 출발점이다.
아침 일찍 베란다 기둥 아래 쭈그리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전당포 주인은 강도라고 생각하고 놀란다. 그는 새벽부터 전당물을 맡기로 온 사람이었고 성은 천 씨였다. 천 선생은 품속에서 어렵사리 철제로 된 낡은 과자통을 꺼냈다. 그 안에는 작은 가방이 들어 있었고 지퍼를 여니 현금으로 가득했다.
“돈이 있으시면서 뭐 하러 돈을 빌리려고 하세요?”
천선생은 민망한 얼굴로 손을 비비며 말했다.
“어 … 저기 … 어쨌든 이 돈은 못써요! 왜냐하면 이건 … 저희 할머니가 유품으로 주신 수미전(手尾錢)이거든요.”
타이완에는 민간풍습이 하나 있다. 노인이 세상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짐작하면 설날 세뱃돈을 주듯 손아래 사람에게 액수가 크지 않은 돈을 준다. 자손에게 기념으로 남겨주는 것이자, 그들에게 돈이 끊임없이 들어오길 바라는 뜻이 담겨있어서 ‘수미전’이라고 한다.
천선생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해 모든 친척들에게 외면당하였지만, 그의 할머니만이 유독 애정과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임종 전에 천선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제대로 된 일을 찾고 정착하라고 당부한다. 할머니는 자녀나 손자들이 자신에게 주는 돈을 아껴두었다가 20만 위안을 모아서 천선생에게 수미전으로 준 것이다.
천선생은 전당포 주인에게 애원했다.
“이 돈은 은행에 저축할 수가 없어요. 저금을 하면 원래 있던 돈이 아니게 되니까요. 지금 저는 창업할 돈이 없고 빌려주려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수미전은 할머니가 저한테 거신 기대와 똑같기 때문에 절대 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서 사장님께 보관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장사 밑천을 좀 빌리려고요.”
그 뒤로 천선생은 창업 자금으로 해산물 볶음가게를 열었다. 정성껏 요리한 덕분에 가게는 금세 지역에서 유명세를 탔다. 천선생은 한 달 남짓 지난 후에 수미전을 되찾아 갔다. 이 에피소드에서 보듯 돈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돈은 아니다. 할머니의 돈에는 헌신적 사랑과 성스러움이 위탁되어 있었다.
모든 돈이 다 똑같은 돈이라고 생각했다면 천선생은 곧바로 수미전을 털어서 장사 밑천으로 삼았을 것 이다. 할머니가 모아둔 수미전은 저승길 여비에 보태도록 자녀들이 드렸던 노잣돈이었다. 어쩌면 천선생에게 전당포는 할머니의 노잣돈을 영정 앞에서 지불하는 의식이었으며 성스러움의 통과의례를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이때의 '지불'이라는 뜻은 물건을 사고 가격을 치르는 세속적 거래가 아니다.
화폐의 기원은 지불수단, 세속적 시장이 아닌 성스러운 종교의 영역에서 출발
동서양에서 화폐의 기원과 연관되는 ‘지불’이라는 개념은 종교적 차원에서 ‘죄를 씻는다’는 것과 같다. 어느 일본학자는 고대 종교 제사에서 사회적 채무를 해소하고 씻어내는 祓(불, 푸닥거리를 하거나 부정을 없애는 것으로서 일본어 발음으로는 ‘하라이’)과 지불(支拂)한다는 拂의 발음이 ‘하라이’와 똑같다는데 착안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신전에 예물을 바쳐서 죄를 씻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화폐의 기원은 지불수단에 있으며 세속적 시장이 아닌 성스러운 종교의 영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편협한 시장경제의 틀을 벗어나면 화폐는 더 큰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화폐는 시장경제에서 물물교환의 편의를 위한 교환수단이거나 서로 다른 상품의 가치를 무차별하게 계량화해주는 가치척도의 수단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이제 물물교환의 불편 때문에 화폐가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했다는 낡고도 익숙한 상식은 저버려야할 것 같다. 사람들이 자기가 생산한 물건을 가지고 시장에서 서로 필요한 것과 교환하고 싶은, 즉 사람마다 원하는 물건이 서로 다른 ‘욕망의 이중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 표준화폐가 출현했으며 다시 무거운 금속화폐는 이동하기에 불편해서 마침내 신용화폐로 발전했다는 물물교환 → 화폐경제 → 신용화폐의 도식은 당연히 부정되어야 한다. “고대 함무라비 시대의 바빌로니아에서는 보리가 지불수단이고 은이 보편적 가치였으나 교환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물었다“는 사실도 화폐가 시장교환에서 출발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화폐는 생전에 지었던 죄를 씻고 신에 대한 의무를 갚기 위한 지불수단에서 시작했다. 할머니의 수미전은 똑 같은 돈이라도 오직 성스러움의 지불수단에만 한정되어 있고 시장거래의 교환수단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원시화폐의 속성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화폐는 교환수단, 지불수단, 가치척도, 부의 축장(蓄藏)수단, 계산 수단의 기능을 갖는다. 이렇게 5가지의 기능을 한꺼번에 담은 현대화폐를 칼 폴라니는 다목적 화폐(all-purpose money)라고 불렀다. 현대에 우리는 지폐 한 장으로 종교단체에 기부도 하고 시장에 가서 물건도 사고 은행에 저금도 한다. 달러와 원화라는 화폐단위로 계산과 가치척도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와 달리 원시화폐는 지불수단, 교환수단, 가치척도, 부의 축장, 계산 수단이라는 목적에 따라 화폐의 소재도 틀리고 상징적 의미도 다양하다. 원시화폐는 다양한 화폐의 기능마다 각각 별개의 기원을 갖고 있어서 특정목적(special-purpose) 또는 한정된(limited) 목적의 화폐로도 불린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계산화폐로는 은이, 지불수단은 대맥(barley)이, 교환수단으로는 양모와 석유가 유통되었다.
원시화폐는 공동체의 심층적 구조나 집단적 무의식이 발현되고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의미망이 투영되는 기호(sign)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갖는다. 사람들은 여기에 기원(祈願)과 무의식적 믿음을 위탁 했다.
조개껍데기(cowrie, 별보배 고동, 紫貝)는 생김새가 여성의 생식기 모양을 닮아서 다산, 풍요, 번영을 상징하는 대표적 화폐였다. 양과 말과 소는 원시화폐 가운데 대표 격으로 지불수단, 교환매개, 가치척도 단위 등으로 두루 사용되었다. 기원전 7세기 호머의 시대는 가축 수의 보유량에 따라 부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결정되었다. 호머(Homeros)는『일리아드』에서 “글라우코스의 갑옷은 소 9마리의 값과 같다”라고 썼다. 가축이 대표적인 원시화폐(가축 화폐, cattle money)로 쓰인 것은 허기를 채우는 유용적인 목적 말고도 영적 교통의 주술적 실체이며 희생제의에서 종교적 채무를 갚는 지불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조개화폐는 주로 소액거래에 사용했다. 소액의 조개화폐로 아내를 살 수는 없지만 가축(cattle)은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조개화폐를 아무리 많이 모아도 아내를 살 수는 없다. 신부대금의 가축화폐는 노동력의 보상이나 부족 간의 연대와 의례에 따른 지불수단이지 결코 시장의 교환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서북부에 있었던 말리제국(현재의 말리)은 가는 동선(銅線)과 굵은 동선이 함께 통화로 쓰였다. 가는 동선은 가난한 사람들의 화폐로서 숯이나 수수와 교환했다. 굵은 동선은 무엇이든 구매가 가능해서 말이나 노예, 황금을 비롯하여 명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고급 유통재를 살 수 있었다. 가는 동선이 아무리 많아도 굵은 동선과는 바꿀 수 없는 교환불가능성은 화폐가 신분을 경계 짓고 유지시켜 사회적 안정과 통합의 정치 기능까지 담당하였음을 보여준다.
원시화폐는 화폐의 목적 또는 화폐용도의 칸막이가 다르면 상호 등가성은 물론 서로 간의 교환도 불가능했다. 교환 불가능성은 자본주의 사유방식으로 볼 때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교환 가능한 영역의 상품세계로 구성된다. 모든 사물에 내재한 고유한 감성과 구체적 특수성을 제거해 어떤 하나의 기준으로 동질화시키지 못하면 시장 교환의 세계는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자본의 논리를 만물의 상품화(the commodification of everything)로 규정한다.
'속된 돈'은 모든 것을 동질화하여 화폐 계산 가능한 교환세계로 이끄는 자본주의 논리
산업자본은 영혼, 사랑, 인간, 토지, 미적 가치 등 원래 상품이 아닌 것도 끊임없이 상품화하여 생산과 교환과정에 집어넣고 잉여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낸다.
교환 불가능성의 존재는 모든 사물을 추상과 이성의 힘으로 동질화시켜 화폐로 계산 가능한 교환의 세계로 밀고 가려는 자본주의 논리와 어긋나는 것이다. 할머니의 수미전은 일반 상품처럼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갖지 않으며 세상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교환 불가능한 상징 가치를 갖는다.
오래전 대학원 시절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지도교수를 모시고 야외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배도 고프고 맥주라도 미리 한잔해야 하는데 주문한 매운탕이 너무 늦어 간단한 세리머니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기다리다 못해 주방에 들어갔더니 구수한 부침개 냄새가 요란했다. 주인한테 “돈을 드릴 테니 부침개 한 접시만 달라”고 하자 별로 반응이 없었다.
내가 머쓱하여 그냥 자리로 되돌아오자 조금 뒤에 주인이 부침개를 듬뿍 담아 와서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것은 오늘 시아버지 제사음식으로 장만한 것이라서 돈은 받을 수 없고 그냥 드리니 어서 드세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하는 ‘불가능한 교환(L’Échange impossible)‘도 이 지점에서 머문다. “우리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교환이 도처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세계는 교환될 수 없다. 모든 사물 하나하나는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선물이다. 세계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등가물을 갖지 못하고 그 어떤 것과도 교환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세계 자체를 불가능한 교환으로 사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과 속’의 관점에서 보면 교환 불가능한 할머니의 수미전은 원시화폐로서 성스러운 돈(sacred money)이다. 천선생은 성스러운 돈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 전당포에 그것을 맡겨 속된 돈(profane money)으로 바꾸고 나중에 돈을 벌어 다시 성스러운 수미전을 되찾았다. 성과 속은 영원불변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다.
성이 속이 되고 다시 속이 성이 되는 것처럼 서로 가역적이다. 속에서 성으로, 불순에서 순수로 끊임없이 상승하려는 태도는 성스러움 속에서 풍요, 숭배, 사랑, 감사의 마음과 초월적 힘을 얻어서 생명력을 얻고자 하는데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