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선명했던 그날의 결심
만 네 살이 되던 해,
MERCY SHIP이라는 이름의 병원선이 한국에 정박했다.
그 배는 바다를 떠다니는 병원이자, 선교지로 향하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수술하며, 복음을 전하는 의료 선교선.
그 배가 부산항에 머물며 의료사역을 소개하던 그 날,
나는 부모님 손을 잡고 그곳을 찾았다.
너무 어릴 적이라
배 안의 구조나 안내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벽에 붙어 있던 수술 전과 후의 사진들—
특히 웃고 있는 어린이 환자들의 얼굴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전에는 입술이 갈라져 있거나,
눈빛에 어딘지 모를 두려움이 어려 있던 아이들이
수술을 받은 후에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 앞에서 한참을 멈췄다.
그리고 어린 마음으로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에 휩싸였다.
‘이런 일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나는 그날,
아주 단순하고 선명한 결심을 했다.
“아, 나도 의료 선교사가 되어야겠다.”
아마 그 삶이 너무 멋있어 보였던 걸 거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게 네 살 꼬마의 눈에는 가장 대단하고 가치 있는 일로 보였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 나이에 뭘 안다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까 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 내 마음 한가운데
하나님께서 선교라는 불씨 하나를 심어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도 선교사로 나가기로 했단다.”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어릴 적 가졌던 꿈, 선교사!
이제 그 꿈을 우리 가족이 함께 이뤄가는 여정이 될 거라니.
언제가 될진 몰라도 금방 떠나게 되겠지,
그저 설레고 들뜬 마음뿐이었다.
부모님은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선교 훈련에 들어가셨다.
우리가 가게 될 나라는 나미비아.
아프리카 대륙 한구석에 있는 나라였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내겐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대감을 안겨줬다.
그런데,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파송 교회가 연결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고,
계속 기다렸지만 소식은 없었다.
1년이 넘도록 우리는 떠날 수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어느 날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도대체 언제 가요?
고마, 아무 데나 갑시다!”
아마도 나는 어린 마음에
기약 없는 준비와 멈춤이 답답했던 거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말을 들은 부모님은 그날 밤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고백하셨다고 한다.
“우리가 가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그 고백 후,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연결된 곳이 바로 ‘캄보디아’였다.
그렇게 2005년 5월 10일.
드디어,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인생 첫 해외 이주.
가방엔 장난감 몇 개와 너무 많은 기대들이 들어 있었다.
선교가 어떤 삶인지,
그 길이 얼마나 낯설고 고된 여정인지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그 순간의 나는
정말 멋있는 일을 하러 간다고 믿고 있었다.
“드디어 떠난다!
캄보디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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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의 또 다른 이름은 MK, Missionary Kid가 되었다.
그게 어떤 이름인지,
어떤 이야기들이 그 안에 담겨 있는지는
아직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