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서체학연구 - 한글서체의 역동성
2018.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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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체의 역동성이라는 말은 조금 생소하다. 간혹 역동적인 느낌을 컨셉으로 글자를 그리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다양한 의미적 적용범위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 서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그런 것 같다. 서예의 필법론에 역, 세, 근, 압, 낙, 기, 행, 주 등 동사적 성격의 운필 용어가 등장하기에 저자는 이를 역동성으로 분석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연구한 결과라 하는데.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저자가 말하는 개념이 어렵다. 무형의 순간적 역동성과 유형의 무한적 역동성은 과연 무엇일까. 뜬구름 같은 말이다. 붓으로 쓴 한글서체에는 붓의 움직임과 힘을 통한 역동적인 느낌이 나타난다. 정자체보다는 흘림체에서 더 확연하게 나타난다. 저자는 그러한 역동성을 추사 김정희의 언간을 두고 분석하였는데 분석 방법과 요소를 모두 한자어 기준으로 얘기하고 있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서예학, 서체학에서는 당연한 전문용어 쯤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지만. 분석표에 순입, 노봉, 제필, 역입, 둔필 등과 동시에 곧음, 멈춤, 가늠, 끊음, 일어남 등의 한글 그리고 한자를 섞어 표기하고 있어서 아쉽다. 아무래도 논문 모음이라 그런 지 괜히 어려운 말이 굉장히 많다. 모든 것에는 역동성이 있다. 한글 서체의 다양화라는 주제에서 역동성을 얘기하는 것과 한글서예와 춤사위를 얘기하는 것은 좁은 시야로 일부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는 기둥과 같은 특성을 지녔다. 라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관련 논문들을 합하는 과정에서 다양화라는 포괄적인 주제로 몇가지를 묶어 이렇게 구성된 듯하다.
움직임은 여러가지 갈래로 나뉜다. 힘, 속도, 방향, 등. 그로인해 다양한 형태를 나타낸다. 흐름, 멈춤, 꺾임, 무거움, 거침 등. 이러한 부분은 서예 뿐만 아니라 한글 글자 조형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다듬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는 도구를 기반으로 나타난다. 기록하는 수단. 동양의 붓과 서양의 펜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다양한 문자들. 지금은 대부분 디지털로 글자를 그려내지만 투박하고 딱딱한 꽉 찬 고딕체 또한 판본체를 기반으로 한 조형이다. 판본체는 칼로 새긴 글자라 붓으로 그린 글자와는 다른 형태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역동성을 얘기하고 있으니 판본체는 미뤄두고서 붓으로 그려지는 글자의 형태를 디지털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글서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붓의 움직임, 어떠한 순서로 그려지는 지. 어디에서 힘을 주고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 꺾임의 형태는 어떻게 그려야 하며 맺음은 어떻게 그려 내는지. 이러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붓이라는 도구의 물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실제로 붓을 가지고 글자를 그려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붓이 먹을 머금은 정도에 따른 형태 변화. 힘에 따른. 압에 따른. 속도에 따른 글자의 형태 변화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한글 글자 조형을 처음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로 나타난 형태만 바라본다. 얇고 두꺼움. 크고 작음. 날카롭고 부드러움, 길고 짧음, 직선과 곡선, 굴림과 꺾임 등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한정적이다. 나 또한 처음 레터링을 가르칠 때 이러한 요소들로 보다 쉽게 글자를 설계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어떠한 결과물이 나타나려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은 도구에서 시작한다. 도구의 물성을 이해하고 도구를 통해 그려지는 획을 먼저 그려보면서 직선과 곡선. 꺾임과 굴림 등의 조형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자모를 그리게 된다. 도구의 물성을 이해하면 그 도구의 움직임. 획순이나 필법 등 순서와 방향 그리고 힘과 속도 등 글자가 그려지는 원리를 이해해야 하고 그렇게 그려진 글자가 결과물로 나타나게 된다. 도구와 필법 그리고 결과물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결과물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 장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역동성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 분석을 위한 근거와 분류에 있다. 추사의 언간은 역동적이다. 그 역동적인 힘의 흐름은 붓에 의해 글자와 글자가 이어지는 흘림을 통한 연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 역동적인 형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분석하기 위한 다양한 요인들은 어떻게 글자를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 앞서 얘기한 결과물의 형태에 따른 글자 설계 지도는 실패했다. 효율적이지 않았고 뻔한 결과물로 이어졌다. 그 후로는 조금 더 자유롭게 기획하고. 주제나 컨셉을 잡고. 글자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몇가지 방향을 제시해주며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아 나가는 방법으로 지도했다. 최근 이용제 선생님과 워크샵을 통해 레터링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 중 지도 초기에 준비했던 이 레터링 기획서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잘 살릴 수 있을 지 고민하던 찰나에 이 장을 읽게 되었고 과정을 구분하여 기획을 구체화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물을 머리 속에 그려나가는 기획이 아니라. 과정을 차근차근 떠올리며 자연스래 결과물이 그려지게 한다.
도구의 물성. 그리고 힘과 움직임. 주제나 컨셉을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 요소. 도구는 다양하지만 분류하자면 붓과 칼 그리고 펜.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판본체와 서간체로 이어지며 펜은 서구적인 느낌 혹은 획대비 등을 나타낸다. 붓은 획의 대비보다는 강약으로 나타나며 칼로 새긴 글자는 붓이나 펜과는 또 다른 인상으로 나타난다. 힘과 움직임 그리고 속도와 방향 등 여러 요인들은 글자의 형태와 인상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적용하거나 고려하는 요인이 많아질수록 글자의 표정은 더욱 풍부해진다. 물론 주제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하지만. 글자의 쓰임이나 주변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레터링은 보통 일반적인 활자와는 다른 장식 글자로 글자 조형 뿐만 아니라 글자 표현에도 신경써야 한다. 단순히 읽기 위한 텍스트가 아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어떻게 보일 것인지가 중요하다. 주제나 컨셉을 더 부각시키고 강조해줄 색감이나 질감 혹은 그래픽적 장식요소들 또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