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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Dec 15. 2018

폰트계독 #16

한글궁체연구 - 한글 인쇄체의 구조적 변천

20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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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서체는 훈민정음 창제 후 당시 고전체에 가까운 판각체가 5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점점 정자체의 필서체로 변하였고 이후 명조체형 인서체로 변하였다. 훈민정음 창제, 반포 시기에서부터 동국정운,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은 전서체에 가깝다. 이 글자들은 서체라기보다는 조각을 하여 목활자판을 만들기 위한 자체라 할 수 있다. 


판본 고체의 종류는 표기 방법과 형태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모음의 구조에서 점과 선으로 그려진 훈민정음 원본과 동국정운 그리고 선과 선으로 그려진 이후의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로 나눌 수 있고, 문자 형태 상 자모음의 구조로 보아 원필에 가까운 훈민정음 원본과 방필에 가까운 월인, 동국, 석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판본 고체의 구조의 특징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한자 서체의 발달 순서로 보아 여러 서체 중에 전서체가 가장 먼저 나타나듯, 한글 서체도 훈민정음과 같은 전서체형의 글자가 가장 먼저 나타났다. 그 외형적 구조 또한 한자의 전서체 특징과 비슷하다. 그 형태가 기하도형적으로 모든 자모음이 점과 선 그리고 원으로 이루어졌으며 합자의 외형 또한 도형적이다. 무표정하고 단순하며, 고대적이고 원시적인 인상을 풍긴다.


이후 판본 필서체로 발달하게 되는데, 이 역시 당시 쓰이던 한자와 맥락을 같이 한다.

1450년대 이후로 전서체형에서 해서체에 가까운 형으로 바뀌며, 대표적인 필체는 월인석보에 실린 세종어제훈민정음이다. 이서 훈몽자회, 훈민정음언해본과 각종 언해본이 있다. 17세기에는 대학율곡선생언해, 송강가사 관서본, 이선본 등 해서체 양식이 더욱 발달되며, 18세기에는 직접 붓으로 쓴 경세훈민정음, 그리고 송강가사 성주본, 속명의록, 유듕외대쇼신셔륜음이 나왔다. 시기 별로 구분해보자면, 16세기 언해류 글씨의 자형은 이전 판본 고체의 직사각형과 같거나 비슷한 면을 보이고, 17, 18세기의 언해류 글씨는 세로 길이가 긴 직사각형의 자형으로 변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표기가 점점 유연해졌다. 자료를 조금 더 살펴보면, 1590년대 듕용언해까지는 판본 고체의 구조에 해서체 양식이 나타나며, 1668년 대학율곡선생언해와 1690년 송강가사 관서본부터는 판본 고체에 비해 종성의 폭이 줄어들어 근대 명조체와 비슷한 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1797년 오륜행실도에 와서는 근대 활자체와 굉장히 비슷한 구조로 발달되었다. 


판본 필서체와 동시에 인서체 또한 발달하였는데, 인서체는 한자 명조체나 송조체의 특징을 살려 만든 목활자, 금속활자의 활자체다. 인서체의 구조와 조형은 필서체보다 근대 활자에 가까워 보인다. 붓으로 쓴 필서체보다는 글자를 그려 만든 활자체라 1777년 슉명의록이나 1782년 유듕외대쇼신셔륜음과 같은 문헌을 살펴보면 글자의 길이가 길고, 받침이 작아 근대 활자의 구조와 닮았다. 하지만 각 글자의 크기나 균형이 잘 맞지 않아 그 짜임이 정연하지 못하다. 이후로 1792년 증수무원록언해, 1895년 조선지지, 1908년 국어문전음학, 1935년 훈민정음운해 등 각 문헌을 시기별로 비교해보면, 글자가 점점 작아지고, 글줄이 점점 가지런해진다. 인서체의 기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략 1700년 중엽 전후라 밝히고 있다. 18세기,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 이르러 명조체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인서체로 발달하였다. 판본 고체에서 판본 필사체로, 그리고 필사체에서 발달한 인서체가 다시 필사체에 영향을 미친다. 간행된 활자본이 문자 생활의 규범이 되어 쓰기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16세기까지는 전서체에서 해서체로 발달하는 과도기적 면모를 보이며, 한글의 구조나 형태가 불안정하게 나타난다. 17세기에 이르러 한글 해서체 양식이 무르익었고, 18세기, 오륜행실도의 활자를 살펴보면 근대 활자 못지 않은 구조로 발달되었다. 이후로 20세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 변화의 양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문헌과 자료가 있지만, 지금 모든 자료를 살펴볼 수는 없으니 이 책에 실린 자료들을 통해 비교해보았지만, 그 시대적 흐름에 따른 발달 과정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고전 활자체의 발달 과정을 모르던 때에는 근대 활자의 구조나 조형이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한글꼴을 그렇게나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내내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조금 정리되었다. 고전 활자 자료를 그저 이미지로만 받아들이고 비교해 보았을 때는 시간에 따른 발달 과정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찾아보면 각각의 자료가 어느 시기의 것인지 알 수 있었겠지만, 그리 노력하지 않았다. 이 책 덕분에 그 부분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전에 읽은 한글서체학연구보다는 한글궁체연구가 더 도움이 되고 있다. 같은 저자의 책으로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이미지 자료도 잘 정리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한글꼴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훈민정음 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이제 와서 모든 활자는 현대 활자로 대체되었고, 고전 활자체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몇 종의 고전 활자체가 폰트로 복원되었지만 수많은 고전 활자체가 아직 잠들어있다. 한두 명의 활자 디자이너가 뛰어든다 해도 얼마나 오래 걸릴지, 또 얼마나 고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사실 그래픽 디자인과 레터링으로 글자를 그리던 내가 고전 활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용제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길을 가보고 싶었고, 그다음에는 그래도 역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기웃거렸다. 이제 조금 알고 보니, 되려 고전 활자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그래픽적인 새로운 한글꼴은 조형이 억지스럽고 사용도 까다롭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방대한 고전 활자와 최정호 선생님의 완성도 높은 근대 활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현대 활자를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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