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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STYPE Oct 15. 2019

폰트계독 #19

한글궁체연구 - 2. 궁체 원전의 문자 구조미

2019.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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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획형은 서체의 종류에 따라 외형, 굵기, 위치, 방향 등이 변화한다. 이 장에서는 판본 고체, 정자체, 반흘림체, 흘림체 4가지 서체의 획형 변화를 살펴봤다. 판본 고체는 월인천강지곡 원전, 정자체는 옥원듕회연 권지뉵, 반흘림체와 흘림체는 옥원듕회연 권지십팔의 원전에서 집자했다.


정자체와 반흘림, 흘림체는 그 연관성과 변화가 자연스럽지만 판본 고체는 그 변화의 연관성이 모호하다. 판본 고체는 전각을 가득 채우는 단순한 획형으로 정체나 반흘림, 흘림체와 같이 붓으로 쓰인 글씨와는 그 맥락이 다르다. 판본 고체와 달리 글씨에는 쓰기가 형태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자체는 획을 바르게 끊어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면, 흘림체는 빠르게 획을 이어가며 쓰인다. 반흘림은 그 중간 정도로 볼 수 있다. 획의 기울기에도 그 속도가 드러난다. 정자체는 바르고 흘림체는 기울어져있다. 보편적으로 기울기는 속도감을 나타낸다. 빠르게 써 내려가면 자연스레 획이 기울고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며, 기울기는 곧 속도를 나타내는 표현방법이 된다.


244페이지를 살펴보면 정자체와 흘림체의 형태를 비교해볼 수 있는데, 흘림체가 정자체에 비해 판독성이 떨어진다. 특히 흘림체 핑, 핀, 필, 핌, 핍 등 'ㅍ' 가로 모임 받침글자를 살펴보면 'ㄹ'로 보이기도 하고, ㄴ과 ㄷ을 보면 세로 모임 글자에 비해 가로 모임 글자는 굉장히 닮아있다. 글씨를 바탕으로 한 서체는 낱자의 크기가 각기 다르며 일정한 규칙에 따라 그 크기가 결정된다. 기본적으로 획수가 적을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서선의 태세는 필법이나 운필 등으로 달라진다.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를 잘 비교해두었지만 극히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부분이 아쉽다.


이번에 읽어본 내용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문자의 간가'라는 부분이다. 간가란 문자 내의 자모음간, 점획 간의 떨어진 정도를 말한다. 즉 속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궁체 원전의 문자 속공간을 나누어보면 일정한 규칙에 의해 균일하게 조정된 것을 볼 수 있다. 간가는 네 가지 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가로로 나누는 횡분위, 세로로 나누는 종분위, 사선으로 나누는 사분위, 이를 모아 복합분위가 있다. 판본 고체나 정자체는 횡분위와 종분위만으로도 정리할 수 있지만 흘림체는 사분위가 꼭 필요하다. 정자체와 흘림체는 이 간가라는 속공간이 대부분 균등하게 나누어져 비슷한 간격을 나타내며, 그렇기 때문에 '를' 같은 글자는 굉장히 길어지고 커질 수밖에 없다.


그다음으로는 접필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이는 획과 획이 맞닿는 부분을 말한다. 저자는 이 접필을 수치로 환산하여 각 낱자들의 접필부 비례를 분석했다. 얇게 닿는 것을 근접이라 하고, 깊게 닿는 것을 심접이라 한다. 표를 보면 획이 시작되며 닿는 기필부는 근접으로 그려지고, 획이 끝나며 닿는 수필부는 심접으로 그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문자의 균형에 대해 정리되어 있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균형 잡힌 점획이나 문자들은 시각적인 면에서 전혀 다른 불균형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궁체는 이러한 왜곡에 대해 시각보정까지 고려하여 균형을 잡고 쓰였다. 궁체는 서로 다른 굵기의 서선을 중심이 아닌 비대칭으로 접필시켜 시각적인 안정감을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낱자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각 닿자 별 모임꼴에 따른 민글자나 받침글자의 크기는 서로 균일하게 나타난다. 작게 보이는 점획은 크게 쓰고, 크게 보이는 점획은 작게 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고려하여 얼마나 표현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가 글자를 그리며 고려하는 부분을 과거에도 고려하고 있었다는 것은 조금 놀랍다. 저자의 눈으로 분석하여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실제로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궁체 연구를 들여다보며 단순한 글씨가 아니라 서체로서 여러 규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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