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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Feb 21. 2024

당신은 어떤 메아리를 듣고 사는가요?

'이고치고'의 고해의 바다에서 파도를 넘어 항해하는 힘과 지혜

오늘은 아침부터 눈이 내리더니 오전 11시부터는 진눈깨비가 되어 내렸다.

문수산은 가지마다 유리처럼 얼어서 반짝거렸다. 어제와는 또 다른 황홀경었다. 문수산에는 싸리나무가 많은데 꼬부라진 싸리나무 가지마다 진눈깨비가 내려 싸리나무가 얼음 여왕으로 변신한 것 같았다. 

오늘은 산에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산에 오직 나만 있는듯했다. 

그러나 산에 혼자 있다고 두렵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소나무와 잣나무, 싸리나무, 개암나무, 개복숭아 나무 등등 너무나 많은 나무들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천군만마처럼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하늘에는 새들이 곳곳에서 날아다니며 공수부대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이 깊은 신뢰감이 있었기에 나는 언제나 씩씩하게 맨발로 산을 타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산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 산의 품이 포근하고 산냄새가 향긋했다. 내게는 산이 친정이었다. 문수산은 내게 그런 따뜻한 품이 되어주었다. 나는 산의 품에서 나의 마음의 고향에 돌아가는 길을 찾았던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암 덕분이다. 암이 아니었다면 나는 영원히 나의 참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르고 바깥으로 헤매고 다녔을 게 안 봐도 너무나 뻔하다. 내가 하루라도 빨리 인생에서 암을 만났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자 천운이었던 것이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학교에서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어떤 박학다식한 교수나 전문가도 결코 알려줄 수 없는 길이다. 이 길은 오로지 암과의 만남, 고통과의 만남에서 그 만남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그 인연이 내게 전하는 법문을 열린 마음으로 새겨들을 때 나타난다.


더운 여름에는 뜨거운 음식으로 더위를 이기며 건강을 지킨다는 뜻의 '이열치열'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나는 우리 인생의 고개에서 만나는 위기와 고통을 마주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뜨거운 고통에는 뜨거운 고통으로 위기를 이기고 마음을 지킨다는 뜻의 '이고치고'라는 한자성어를 치병을 하며 재탄생시켰다. 

'이고치고'는 고통이 괴롭고 힘들지만 그 고통을 받아들이며 수행을 통해서 순간순간 뚫고 가는 힘이다. 

그렇다고 고행 수행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몸져누워만 있다면 수행력을 쌓아갈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이기에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고통스럽더라도 수행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그 고통을 뚫고 가는 힘을 키워내야 한다.  


자연치유는 수행이다. 수행은 마음을 닦는 일이고 이것은 인생이다. 인생은 정답이 없기에 스스로 닦는 길밖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런 인생은 예술이 되고 문화와 역사가 된다. 그래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인생은 무상하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자연치유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끝내주는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고 영원을 창작하는 예술가가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도 영원을 창작해 냈고 오늘도 참 잘 살았다. 

"당신은 어떤 메아리를 듣고 사는가요?"

메아리를 듣고 산다면 그대는 활활 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메아리가 없다면 비록 육체는 살아있더라도 시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임에 인생의 적신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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