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를 찍고 오는 날
병원을 다녀오는 여정길보다 봉정암을 오르는 일이 더 수월할 듯하다.
오늘은 대학병원 CT 촬영이 예약되어 있는 날이다. 3개월에 한 번씩 이렇게 대학 병원에 가야 하는데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니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신촌에 있는 YS병원에 다니기에 그나마 김포에서 길이 막혀도 1시간 전후로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지방에서 다니는 환우들을 보면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오전 7시 30분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집에서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서 남편 아침밥을 간단히 차려주었다. 나는 보통 저녁을 먹지 않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많이 고팠다.
남편이 아침을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밥을 먹고 싶었지만 CT촬영을 위해서 공복을 유지해야 했기에 시선을 회피했다. 남편은 평상시에는 오전 7시에 출근을 하는데 오늘은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가야 해서 함께 6시에 집을 나서기로 했다.
이렇게 오전 일찍 병원 예약이 잡히면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께 아이 등원을 부탁해야 했다.
친정 엄마도 새벽잠을 끊어내고 새벽 6시 우리 집으로 달려오셨다. 엄마에게 아침에 아이 밥을 챙겨주고 등원 일을 인수인계를 하고 남편과 함께 서둘러 나왔다. 새벽 6시라서 아직 캄캄했다. 나는 계속 하품이 나왔다. 새벽 6시인데도 서울로 가는 길에 정체 구간이 꽤 길었다. 다들 얼마나 부지런하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일찍 출발한 탓에 40분 만에 병원에 도착하였다. 남편은 나를 병원에 내려주고 회사로 출근하였고 나는 늘 오던 병원 본관의 동선을 익숙하게 찾아서 들어갔다.
제일 먼저 피를 뽑아야 하기에 1층의 채혈실로 갔다. 채혈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혈실 앞에는 환자들로 바글바글 했다.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먼저 계산하고 채혈을 접수했다. 7시가 되니 채혈실이 문을 열었다. 내 앞에 약 30명이 채혈을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알레르기 주사실로 가서 대기표를 뽑아야겠다고 판단하고 발 빠르게 알레르기 주사실로 향했다.
그런데 알레르기 주사실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일단 번호표부터 뽑아서 주머니에 챙겨서 다시 채혈실로 돌아왔다. 10분 정도 기다렸더니 금방 채혈 순서가 되어서 채혈을 하고 알레르기 주사실로 향했다.
그런데 알레르기 주사실이 여전히 셔터가 내려진 채로 문이 닫혀있었다. 나는 조영제 알레르기 부작용이 심해서 CT를 찍고 나면 구토를 하고 울렁거림과 어지러움증이 심하다. 그래서 CT를 찍기 전에 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제, 위장약을 혈관 주사로 맞아야 한다. 번거롭지만 늘 이 과정을 거쳐서 CT를 찍어왔다.
주사실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운영 시간표가 눈에 들어왔다. 평일 오전 8시 30분에 오픈한다고 쓰여 있었다. 'CT촬영이 7시 30분인데 주사실 오픈이 8시 30분이면 어쩌라는 거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일단 CT실로 가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본관 4층 CT실로 향했다.
길치인 내가 넓고 복잡하게만 보이는 병원의 동선을 어찌나 그렇게 잘도 찾아서 가는지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두뇌의 명석함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CT실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어떻게 서든 예약을 잡아 드리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8시 30분에 주사실에서 주사를 맞고 오시면 대기 없이 바로 촬영하실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5분이면 끝나는 CT 촬영인데 알레르기 주사를 맞기 위해서 7시 20분부터 8시 30분까지 1시간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다.
꼬르륵꼬르륵 눈치 없이 배꼽시계가 계속 울려댔다.
나는 3층 로비에 있는 푸드코트를 돌며 CT촬영이 끝난 후 어떤 메뉴를 먹을지 미리 정해 보기로 했다.
야채김밥부터 샐러드, 토스트, 호떡, 짜장면, 햄버거, 죽, 미역국 등등 다양한 종류의 메뉴들이 많았지만 결국 나는 본죽에서 야채죽을 먹기로 했다. 샐러드나 김밥도 너무 가격이 비쌌다.
드디어 주사실이 오픈을 하고 1번 번호표 호출 소리에 나는 번개처럼 접수를 하고 들어가서 주사 맞을 준비를 하였다.
간호사 언니가 왼손등 위에 혈관 자리를 짚어보더니 주사를 놓았다. 잘못짚은 건지 어쩐 건지 혈관이 퉁퉁 붓는다고 찔러 넣었던 주삿바늘을 뽑아서 밴드를 붙여주었다.
오른쪽 손등에 놓겠다며 오른쪽 손등에 주사 바늘을 찔러 넣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잘 찔러 넣었다.
차례대로 항히스타민, 스테로이드, 위장약을 넣어주었다.
5분도 안 걸려서 끝날 일인데 이걸 맞으려고 1시간이 넘게 기다렸다.
CT실로 올라가서 5분 정도 기다리다가 CT를 찍었다.
침대에 누우면 링거처럼 생긴 것을 손등에 연결해 준다. 둥근 관에 들어가서 촬영이 시작되고 AI 음성을 듣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AI는 어떤 생명력도 없는 소리로 이렇게 지시한다.
"숨을 들이쉬고 숨을 뱉으세요."
"숨을 들이쉬고 숨을 참으세요."
"숨을 쉬세요."
"숨을 뱉으시고 숨을 참으세요."
"숨을 쉬세요."
"숨을 삼키지도 마세요."
CT 촬영기의 AI는 약간 명상 지도사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조영제 들어갑니다. 몸이 뜨거워질 수 있으니 놀라지 마세요."
목부터 회음부까지 순식간에 온몸이 뜨거워진다. 촬영기의 거친 기계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또한 5분 만에 금방 끝났다.
"10분 앉아 계셨다가 오시면 바늘 빼드릴게요."
"네."
나는 조영제 알레르기가 있어서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에도 대기실에서 꼭 10분 안정을 취한 뒤에 바늘을 빼주신다. 새벽 6시에 나와서 오전 9시 30분이 넘어서야 CT촬영이 끝났다.
너무 배가 고파서 푸드코트로 달려가 야채죽을 시켰다. 뜨거운 야채죽을 호호 불어가며 한 그릇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죽이 정말 맛있어서 맛있기보다는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병원 셔틀버스를 타고 신촌역까지 왔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신촌의 풍경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았다. 알레르기 주사 부작용으로 졸음이 쏟아져서 전철보다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수월할 것 같았다. 신촌역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전광판에 1004번 경기버스가 30분을 기다려야 온다고 떴다.
오랜만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 본다. 나는 기다란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햇빛이 눈부실 정도로 따사롭고 졸음이 쏟아지고 피로가 몰려왔다. 조금 더 일찍 오는 다른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고 15분 뒤에 도착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깨보니 종점이었다.
'이런......'
조금 빨리 가려다가 더 돌아서 가게 생겼다.
기사님께서 여기는 양촌 종점역이고 환승해서 구래역까지 가서 풍무동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라고 하셨다.
구래역에 가서 풍무 가는 버스를 또 15분 기다렸다 타야 했다.
시계를 보니 12시였다. 정류장 근처에 찐 옥수수 노점상이 있길래 옥수수 한 봉지를 사서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옥수수를 먹었다. 옥수수가 어찌나 맛있던지 옥수수를 다 먹어갈 무렵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풍무동까지 무사히 잘 왔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니 좀 많이 돌아왔어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나쁘지 않았다.
풍무동 정거장에 내리니 12시 30분이었다. 고촌의 우리 아파트로 가는 버스를 다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12시 53분이었다. 새벽 6시에 나가서 오전 반나절을 병원 다녀오느라 다 써버린 것이다.
백담사에서 설악산 봉정암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병원을 갔다 오는 여정의 길보다 어찌 보면 내게는 봉정암에 갔다 오는 편이 더 수월할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매트 위에 드러누웠다.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암환자로 살아가는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쉬운 일도 아님에 틀림없다.
이 또한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이다.
2주 뒤에는 진료를 받으러 또 병원 행차를 해야한다.
휴......스마트한 이 시대에 화상 진료는 왜 안되는 것일까?
오늘 고생많았다.
자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