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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Jun 16. 2024

Love is long suffering


어떻게 한 사람하고 평생을 살지 고민스러웠다. 세상에 질리지 않고 영원한 것이 있기나 한가? 죽고 못살던 친구도 짜릿했던 연애도 싫증이 팍 나는 지점이 있다. 사들이는 물건은 어떻고. 매장에선 예뻤던 게 집에선 왜 시들한지 모를 일이다. 초마다 새로운 자극이 쏟아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한 사람', '영원', '평생'은 촌스러럽다. 내 사랑이 영원할 거란 기대는 안 했다. 사는 데까지 살지.



어쩐 일인지 20년 동안 이 사람한테 싫증이 난 적이 없다.  20, 30, 40을 지나 50이 목전이다. 그 사이 더 나빠진 것도 더 좋아진 면도 있다. 비율로 따진다면 나빠진 게 많다. 나아질 거라 기대했던 게 하나도 개선이 안 되었으니까. 나도 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나이를 먹는다는 건 죄만 더 하는 일이라 어떤 점에 발전이 있었다면 기적이 아닐까. 그래도  내 사랑은 깊어졌다. 사랑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죽여 버릴까, 이혼을 할까 고민한 순간도 수없지만 이런 건 사랑의 한 편이었다. 연민이 더 일었다. 



이번에는 진짜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에겐 오래 묵은 고질병이 있는데 좋다는 건 다 해지만 고치지 못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우리 주가 우릴 이대로 두지 않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른 건 코치와 사인을 하시면서도 이 문제는 아무 언급이 없다, 'Love is long suffering.' 끝없는 고통이라고 한마디 하셨다. 20년을 매달렸는데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사랑하니까 고통받으라고?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 그이는 날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제 그만해야겠다.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내 옆에 막내가 있다. 두 아들과 큰딸은 거실 바닥에 앉아 티브이를 본다. 큰아이가 대뜸 "엄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행복하지? 말이 안 되잖아. 전혀 화목할 조건이 아닌데."라고 한다. 모두 웃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부모는 좀 이상한데 자식들이 착해서 그런 것 같아." 이 말에 한 번 더 같이 웃었고 서로가 자기 공이 크다고 우겼다. 그러면서 그 순간 우린 더 행복했다. 내 결심이 무색하게.



가만히 일어나 작은 방으로 들어가 얼굴을 감쌌다. 손에 물이 흘러넘쳤다. 지금을 지킨 이유가 사랑을 위장한 지독한 이기심이라 나란 인간에 깊은 회의가 든다. 사랑은 개뿔. 손에 가진 걸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평안한 가정, 토끼 같은 새끼들, 든든한 부모님, 울타리가 되어주는 남자. 이것도 저것도 다 가지고 놀고 싶은 것이다. 이걸 빼앗기고 겪을 고통은 고질병보다 훨씬 심하다. 그래, 어쩌면 그리 깊은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다행이다. 사랑이 아니면 덜 고통스럽겠지. 




잠든 남자 옆에 누웠다. 팔을 내 목 밑으로 깊이 넣고 꼭 안는다. 그리고 눈에 입을 맞췄다. 아, 이런 달콤한 밤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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