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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옹졸 Dec 28. 2024

왼손과 오른손의 일

터닝매카드


유치원 선생은 가지런한 이를 모두 드러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오른쪽 앞니에 오렌지 색 립스틱이 조금 묻었다. 선영은 선생처럼 입이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대나무 숲 아래로 맑은 천이 흘렀다. 천변으로 국숫집이 즐비했다. 거기서 제일 유명한 가게였다. 허름했지만 연예인 누가 다녀가고는 갑자기 번성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치원에 로봇이 자동차로 변신하기도 하고 번쩍번쩍한 빛을 내는 장난감을 가지고 온 애가 그 집 아들이었다. 꽤 값나가는 물건이 없어져 선생은 신경이 곤두섰다. 짐작이 가는 아이가 있긴 했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을 한 데 모았다. 눈을 다 감게 하고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손을 들라고 했다. 아무도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열매반, 도둑 알지요? 도둑질은 나쁜 짓이에요. 하지만 남의 물건이라도 갖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어요. 그래서 잠깐 실수할 수도 있는 일이랍니다. 용서받을 기회를 줄 때 용기 있게 고백하면 아무 문제 되지 않아요. 선생님도, 장난감 주인도 너그럽게 이해할 거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고백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선생의 말이 끝나자 눈매가 길고 꼬리가 처진 남자아이가 손을 들며 일어났다. 손가락이 짧고 손바닥과 등에 살이 피둥피둥했다. 그 양손을 연신 비비며 입을 열었다. 그 장난감을 롯데마트에서 보고 엄마한테 졸랐지만 자기 엄마는 안 사주었다고 했다. 교실에서 현수가 가지고 노는데 너무 갖고 싶었다고. 기억은 안 나지만 혹시 자기 손이 자기 모르게 집에 가져갔을 수도 있으니 집에 가서 한번 찾아보겠다고 한다. 그리니 오늘은 경찰에 전화하지 말고 기다려 줄 수 있겠냐고 선생에게 물었다. 속에서 쏟아지지 않던 그렁그렁한 눈물이 말을 마치자 이내 우수수 떨어졌다.


"세상에 어머니, 아들을 어찌 똘똘하고 양심적인 애로 키우셨습니까, 제가 누가 가져갔는지 뻔히 알고 있는데 우리 지명이가 일어나니가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요. 가져간 애도 눈이 똥그래지던걸요." 선영은 선생의 치아에 뭍은 오렌지색 립스틱을 닦아 주고 싶은 마음과 아이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주고 충동이 일었다. 양심이라니. 안 가져갔으면 안 가져간 것이지 자기도 모르게 손이 그랬을 수 있겠다고? 조그만 게 게 벌써, 지나치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된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설령 훔쳤어도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떼라고 가르쳐야 했어야 했나. 아무도 니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은 모른다고, 머릿속으로 도둑질 백 번을 해도 그건 들키지 않는 일이니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다고 일러줬어야 하는데. 피곤한 인생이 지명이 앞에 놓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지명은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고는 방과 방을 오가며 서랍을 길게 꺼냈다. 장롱은 활짝 열어젖히고는 이불 깊숙이 손을 넣어보기도 했다. 선영은 아이 손을 끌고 식탁 의지에 앉혔다. 그리고는 요구루트에 빨대를 꽂아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뭐 찾는 거야?" "엄마, 우리 집에서 터닝메카드 봤어요? 엄마도 알지요, 그게 막 로트로 변신하고 다시 손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로보트도 되고 그러는 거요" 아이는 작고 통통한 손으로 장난감 조작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못 봤어. 그런데 그게 왜?" "아니, 현수가 유치원에 그걸 가져왔는데 없어졌어요. 선생님이 내일 경찰에 신고한대요." 아이 눈에 눈물이 또 고인다. "그거 내가 많이 갖고 싶었어요. 목사님이 그랬잖아요. 왼손이 한 일 오른손이 모른다고. 머리도 눈도 왼손도 모르게 오른손이 그걸 집에 가져왔을 수도 있잖아." 선영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를 의지에서 내리고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꼭 끌어안았다. "그거는 지명아......"


아무도 몰라. 그걸 어떻게 알겠어? 마음을 어떻게 아냐고. 들여다볼 기계 같은 것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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