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말만큼이나 저력 있는 소통의 매개다. 언어 없이도 다수의 심금을 자극하는 힘을 지녔다. 영화사 디즈니는 이러한 감정적 특성을 기업 전략으로 삼아 큰 성공을 거뒀다. 서사 속에 음악적인 요소를 버무려 잘 설계된 한 방을 날리는 것이다. 디즈니사의 대표작 <겨울왕국> 역시 그렇다. 어린 안나가 방문을 걸어 잠근 엘사에게 ‘나랑 눈사람 만들래?’ 조심스레 물을 때, 아렌델의 공주 안나와 이웃나라 왕자 한스가 ‘사랑은 열린 문’이라며 철없는 약조를 주고받을 때, 엘사가 속박의 상징이었던 장갑을 비로소 벗어던질 때. 주요한 모든 순간마다 음악이 공존한다. 영화의 성공으로 수록곡들도 유명세를 떨쳤는데, 특히 엘사가 부르는 <Let it go>는 범세계적으로 메가 히트를 친 메인 테마 곡이다. 이를 사례로 디즈니가 음악의 힘을 빌린 방식에 대해 리뷰해 보고자 한다.
<Let it go>는 서사의 전환점에 삽입됐다.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온 마을을 얼려 버린 뒤 인적이 없는 설원으로 도망친 엘사가 ‘이제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겠다’고 외치며 중압에서 벗어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곡이 처음 등장한 부분은 해당 장면이 아니다. 영화 초반부,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처음으로 개방된 대관식 날 아침, 엘사의 침울한 노랫소리가 안나의 밝은 목소리와 교차된다. 안나는 대관식을 기회라고 생각하는 반면 엘사는 기존의 중압감을 가속화시키는 또 하나의 속박으로 여기는데, 디즈니는 이를 <Let it go> 중반부 차용으로 드러낸다. 성문이 열리면서 두 음악이 중첩된다. [2분 14초] (안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 (엘사) 마음 열지 마, 보이지 마 / (안나) 나의 꿈 이뤄질 거야 / (엘사) 착한 모습 언제나 보여 주며 / (안나) 외롭게 살진 않을래 / (엘사) 감추고 / (안나) 진정한 사랑 꿈꿔 / (엘사) 절대로 들키면 안 돼
다른 프레임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인물이 상반된 음악으로 묶여 대조되는 장면이다.
멜로디 활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엘사가 숨어 있는 얼음성에 찾아간 안나는 대관식 테마인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를 변주해 부른다. 태어나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서겠다던 안나의 갈망이, 태어나 처음으로 외로운 언니 엘사 곁에 있어 주겠다는 의미로 변형된다. 엘사는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안나를 외면하며 <Let it go>의 중반부 멜로디를 다시금 노래한다.[5분 01초] (안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니를 이해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같이 해낼 수 있어. “함께 이 산을 내려가는 거야.”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니와 함께해 줄게 / (엘사) 제발 돌아가. 넌 가야 해. 날 멀리해. 그래야 네가 안전해 / (안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 (엘사) 난 자유로워질 수 없어 / (안나) 두려워하지 마 / (엘사) 내 안의 폭풍 멈출 수 없어 / (안나) 우리 둘이 함께라면 되돌릴 수 있어
대관식 듀엣을 응용해서, 갈등 이후 연대의 서사가 이어질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후반부, 위기에 놓인 안나는 왕자의 키스가 아니라 엘사의 눈물로 구원받는다. 자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음과 동시에 얼어붙었던 아렌델은 푸른 녹음을 되찾는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여왕 엘사는 국민들에게 환호받는다. 이때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가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흘러나온다. 디즈니는 결말에 대관식 테마를 반복함으로써, 진솔한 사랑을 갈망하던 안나와 마법을 숨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엘사가 각자의 시련을 극복해내고 완전한 행복에 도달했음을 은유한다. 자매는 엘사의 마법이 깃든 스케이트장에서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엘사가 미끄러지는 안나의 손을 맞잡을 때 백그라운드 뮤직은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으로 바뀌어 연주된다. [42초] “나랑 눈사람 만들래?” 항상 무언의 거절만 돌아왔던 안나의 물음에 엘사가 응답한 것이다. “그래, 좋아.”
엘사와 안나가 기승전결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음악은 최전방에서 이들을 돕는다. 강한 힘 때문에 고립되어 있던 엘사를 자애로운 여왕으로 성장시키고, 이상에 도취되어 있던 안나를 독립적이고 단단한 서포터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버려지는 음표 없이, 상황에 맞춰 변주되며 동요하는 인물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문화산업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디즈니의 성공 전략은 말만큼이나 저력 있는 음악을 소통의 매개로 활용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선율을 따라 자연스레 등장인물의 자취를 좇는다. 함께 동요한다. 마음으로 소통한다. 대화는 필요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