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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순 Aug 17. 2024

Re: View 07. 리볼버

리볼버의 주인공은 리볼버다

<리볼버>는 건조한 전도연을 좋아하는 전도연 덕후 영화다.


그도 그럴 게 무뢰한 때부터 오승욱 감독님의 전도연 사랑은 절절하다.(사랑할 수밖에 없긴 함) 영화 속 정윤선(임지연), 신동호(김준한)는 감독의 부캐 수준이다.

/신동호: “하수영이 뭐가 그렇게 좋냐?” 정윤선: “에브리띵” 

/앤디: (하수영을 쏘지 못하는 신동호에게) “사랑하냐? Tlqkf 아주 그냥 사랑을 해”

두 장면으로 축약 가능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둘이다. 하수영(전도연)과 리볼버. 리볼버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자신의 몸체를 허락하는 이에게 무조건 승리를 쥐여 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건을 해결해 주는 신적인 존재다. 그렇다면 수영은? 사랑의 큐피드다….


리볼버를 보면서 느낀 첫 번째 문제점은 관객이 수영과 사랑에 빠지기도 전에 모든 인물이 하수영을 맹목적으로 애정한다는 점이다. 수영의 목표는 단 하나, 돈을 찾는 것이고, 이제 막 출소한 수영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험난한 길이다. 그러나 수영을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npc가 되어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곧이곧대로 다 넘겨 준다. 그리고 다음 퀘스트를 내린다. 수영이 퀘스트 장소로 향하면 뚝딱 튀어나온 npc가 수영을 곧장 알아보고 말을 건다. 그리고 다음 퀘스트를 내린다. 수영은 또 퀘스트 장소로… (더보기)


정보, 인력, 자본 중 그 무엇도 없는 수영은 7억의 출처를 향해 외롭게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정보를 신중히 뒤쫓아가며, 거짓과 참을 가려내며, 헬퍼와 딜러를 가려가며, 돌다리도 두들겨 보며 건너야 하는 상황에 수영은 냅다 점프부터 하고 본다. 솔직하고 군더더기없는 무데뽀 롤이 매력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리 무미건조한 캐릭터여도, 그렇게나 간절한 목적 달성을 향해 나아갈 때는 관객보다 똑똑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건조한 마스크로도 영리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거침없으면서도 현명할 수 있다. 그 선택은 각본이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수영은 거짓말하지도, 상대를 떠보지도 않고, 들어오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래도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다. 마치 어떤 신적인 존재가 수영이 힘든 일을 겪지 못하게 지켜 주고 있는 것처럼. 영화 내내 수영과 붙는 인물들은 그녀가 시련을 겪기 전에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고, 무언가 저지르기도 전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며 따라다니려고 한다. 이 점은 두 번째 아쉬움과도 이어지는데, ‘돈’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수영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모든 게 흐릿하다. 마치 수영 자체가 목적인 양, 그저 따라다니기만 할 뿐 무엇을 이룩하고자 수영의 곁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윤선은 수영에게 얻어낼 것이 있다. 돈. 그러나 사건이 진행되면서 윤선에게는 또 다른 거대한 자본이 다가온다. 그레이스의 개, 본부장(김종수)이다. 그는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윤선과 조사장(정만식)을 불러 수영을 감시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윤선은 이를 대놓고 어기며 수영의 편으로 돌아선다. 수영에게서 어떠한 잠재력을 읽어 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수영의 에브리띵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수영의 편이 된다. 자신의 입지가 위험한 상황에서도.


동호는 어떤가? 수영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는 그는 본부장 측 사람이다. 수영과 대놓고 대립 각을 세우는 인물이다. 앤디(지창욱)는 부분적 사건만 제공하는 새끼빌런이고, 결론적으로 수영에게 제일 큰 위기를 선사할 사람은 동호다. 그런데 그는 윤선에게 ‘수영을 따라다니면서 보고하라’는 지시만 내릴 뿐, 수영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한 그 어떤 트랩도 설치하지 않는다. 갑자기 마지막에 총을 들고 등장해 ‘아가리죽닥쳐~!!’ 하기 전까지 그의 존재감은 너무나도 미비하다. 이 위기마저 총이 선사한 거지 동호가 한 게 아니다. (그리고 동호는 뭘 믿고 본부장과 앤디에게 그렇게 까부는 건가. 까불 만큼의 실력을 보여 주지도 않았으면서.)


그의 윗선이며 어딘가 미스테리하고 냉철해 보이는 본부장은 정보, 인력, 자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본부장은 어떨까? 동호가 그랬듯 조사장과 윤선을 불러 수영을 따라다니며 감시하라고 지시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총을 들고 무적이 된 동호가 본부장과 전화하는 장면에서, 그는 동호에게 말한다. “너 알아서 해라.” 이렇게 난장판이 된 상황에 본부장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기대했던 마음이 무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레이스(전혜진)는 그런 그들의 가장 윗선이니 주인공에게 끝간데없는 지옥을 선사하는 최강 빌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레이스를 과거의 불행으로 낳은 아들 때문에 골머리 썩는 불쌍한 엄마로 만들 뿐이다. 그레이스에게 주어진 유일한 서사다. 물론 흥미롭고, 그 자체가 그레이스를 흑화시키는 동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타이밍이다. 그레이스는 영화 내내 서너 장면 등장할까 말까다. 관객과 그레이스 사이에는 어떤 유대도 쌓이지 않았다. 우린 그레이스와 아직 데면데면한데, 그녀가 앤디의 엄마라는 사실을 마지막의 마지막에 알게 되면 놀이터에서 친구 엄마 마주치고 안녕하세요 하는 기분이 된다. 그녀의 서사는 오로지 수영의 마지막 대사, “난 당신의 불행을 떠들지도, 이용하지도 않고 이대로 사라질 겁니다.” “행복하세요.” 때문에 삽입된 것 같은 찝찝함을 선사하고 소모될 뿐이다.


등장인물들은 하수영과 크고 작은 이익관계에 얽혀 있다. 돈부터 감정까지. 리볼버의 절정은 그런 그들이 어둑어둑한 숲속에 모두 모이게 되는 장면이다. 달러 걸린 수배범을 노리는 <헤이트풀>처럼 수영을 때려잡으려는 목적으로 모였다거나, 각자 돈 또는 감정이 얽힌 대치되는 욕망을 품고 이글거리는 상태로 마주쳤다면 긴장의 교집합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살떨리는 장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내내 그 어떤 인물도 쌓이지 않았다. 유의미한 서사 없이 하수영 중심으로만 흘러가던 인물들은 끝끝내 가장 쉬운 우연에 의거해 마주친다. “야! 너 왜 여기 있어!” “너는 또 왜 여기 있어!” 재미있을 뻔했던 대사에는 미약한 에너지가 흐를 뿐이다. 애초에 정해진 대로 리볼버를 든 수영은 손쉽게 승리자가 된다.


시종일관 남이 건네준 지도만을 따라가던 수영이 처음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은 젊은 장정 세 명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되는 장면이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10살+a는 어린 젊은 남자 셋을 혼자 무찌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수영은 바로 옆에 있는 숲속으로 피신한다. 어둠 속의 닌자처럼 활보하며 긴장한 남자들을 능숙하게 뒤쫓는다. 너무나 현명한 선택 아닌가. 도연언니의 날쌘 뒷모습에 드디어 리볼버라는 영화의 액기스를 보게 되는 줄 알고 속절없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한 방. 딱 한 방에 남자가 엎어졌고, 그 다음 두 방에 마지막 남자도 엎어졌다. 그걸로 액션은 끝이었다. <리볼버>에선 절대권력의 리볼버를 제외하고 그 어떤 인물도 힘이 없다. 스크린에서 느껴지는 힘은 수영을 향한 사랑의 에너지뿐이다.


감정을 다루는 느와르는 멋지다. 건조하지만 섬세한 주인공도 매력적이다.(그게 전도연이라면 더더욱) 같은 이유로 <무뢰한>을 좋아한다. 하지만 정확히 같은 이유로 <리볼버>는 아니었다. 감정도, 사건도 죽고 전도연만 살아남은 영화 <리볼버>, 윤선과의 연결고리가 더 짙어졌다면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 개인적인 아쉬움을 기록하며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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