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과 영화평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
어려서 감명 깊게 읽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책이 영화로 만들어져 나왔을 때, 나는 그 영화를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책으로 읽으며 나름대로 느꼈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후부터 책을 영화화한 것은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가졌던 환상과 상상이, 주인공 역할을 하는 배우들에 의해 여지없이 깨졌고, 그 내용조차 내가 이해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면서, 그 내용은 내가 읽고 해석한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색깔로 변색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지 않고 영화만을 본 사람들은,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책을 이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방향으로의 해석조차 일절 거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책을 읽더라도, 자신을 그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서, 그 주인공의 성격이나 외모까지도, 자신과 유사한 방향으로 상상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 책의 경우, 여주인공 스칼렛이 되어, 남북전쟁의 참상을 몸소 체험하며, 비참한 현실을 찬란했던 과거로 되돌리기 위해 애쓰는 스칼렛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겠고, 멜라니처럼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면모를 동시에 갖춘 여성이 되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아름답고 잘생긴 외모에 박식하고도 이상을 꿈꾸는 애슐리에게 공감을 느끼며 스토리에 젖어드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고, 레트와 한 몸이 되어 현실감과 비열한 유능함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 권의 책은 수백 수천 가지의 색깔로 이해되고 상상되며, 독자들 각자가 이루어낼 수 있는 해석이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명한 소설을 영상화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상상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여백의 미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런 여유를 전혀 두지 않은, 감독 주관적인 작품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제작한 감독은, 유독 레트 버틀러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영화의 스토리 전체가 레트 버틀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소설에서 보였던 비열한 레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유독 그에게만 깊은 동정심과 이해심이 발휘되고 있었다.
사전에 이 책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감독이 해석한 방향으로만 작품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은 작가의 의도를 작은 화면 안에 가두어버리는 불행을 초래하고 말았다.
유명한 소설을 내용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 스토리를 조금씩 변형하고 각색하여, 소설 속에 갇히지 않은, 영화만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책은 책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각자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같은 책을 여러 사람이 나름대로 해석하여 영상화할 때, 제각기 다른 맛과 느낌의 영화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는 소설의 내용에 지나치게 충실하고, 그 내용해석과 결과마저도 감독 자신만의 것으로 바꾸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버렸다. 그 어떤 다른 감독도 같은 소설을 두 번 다시 영상화할 용기를 갖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너무도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었다. 그러자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영화가 책의 내용에 너무도 충실하고, 장면장면을 방대한 스케일로 찍어, 하나도 실망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들이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읽지 않았음을 확인하였고, 더 이상의 토론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말문을 닫아버렸다.
물론 영화의 스케일이랄지, 시대적 환경적 배경을 그대로 화면 위에 옮겨놓기 위한 훌륭한 노력에는 나 역시도 감탄해마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을 지나치게 일방적인 관점에 의존해 해석한 탓에, 일절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는 데에 나의 불만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나길 바랐으나,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영화와 감독을 칭찬하였고, 영화가 원작의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충실한 작품임에 반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영화에 반하는 평을 하기라도 하면 마치 반역자라도 되는 양 단정 지어 몰아세우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