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았던 것은 짧있던 대로
브런치 운영진(?)에서 알림을 주었다.
글 발행 2주가 좀 지날 무렵이었다.
노티스가 떴는데도 손이, 몸이 따르지 않았다.
왜냐 하면...
알고 계신 대로 나는
보직 변경과 함께 근무지를 옮겨 일 년을 보냈고
브런치에서 나를 왕따시킨 사람들을 쓴 지도
일 년이 곧 된다.
요 일 년 간 내가
그들을 썼는지, 혹은 그들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자,
왕따와 같은 일이 일어났던
그 특수한 상황에서 일상이 멀어지자,
나는 그런 일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종종 생겼다.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나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
후회하고 부정하는 단계가 왔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왕따 사건을 잊고
왕따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살 수 있을 거라는...
하지만 불쾌하고 불안정한 경험은 ‘내’가 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왕따 사실을 아예 잊는다는 건 달콤한 희망이지만
그 사실은 이미 몸과 마음에, 근육에 새겨졌다.
나는 왕따 당했고
그렇게나 익숙해질 수 없는 처참함을 견뎌야 했으며
그래서 다시 오늘을 쓰련다.
소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 내가 말을 꺼냈다고 해야겠다. 구체적인 경과는 늘어놓을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해석한 ‘좋은 해결’은
마음이 흔들린 사람이 일찌기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마침 이 과정을 ‘즐겁게‘ 가고자 마음 먹고 있었다.
이 직장을 다니면서 사내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뒤로 오고가는 것이 많았고
주로 ‘정실’에 의해 인사가 이루어지는데
‘찝음(집음, Pick)'을 받으려면 본심이 어떻든지
영향력 그 가까이로 가야 했다.
얼마 전 그가 나에게 근황을 이야기했다.
나는 다 듣고 말했다.
“도대체 인맥이 어디까지인 거야?”
그랬다. 자신이 정한 거리마다 구석구석에 그는
사람을 두었다. 그의 시간은 거기에 투하되었다.
명절이나 계기일에 그는 요즘 유행하는 AI 사진을
활용한 카드를 뿌렸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늘 똑같이 나를 대하는, 즉 ‘관리’하는 사람을 보면
오피서도 아닌, 옛날식 관료도 아닌
이 사람들의 두꺼운 멘탈,
자신의 것을 내어 주지 않고도 사람을 길게 만날 수
있는 자기관리 역량을 확인할 때면
영혼이 탈 탈 털리곤 한다.
그들이 내 직장 사람들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즉시 표현하고 바로잡는다면
이 사람들은 내색하지 않는 대신에
즉시 자기가 정한 상대방의 위치-마음 속 어딘가, 혼네의 영역에 있겠다.-를 비밀리 조정한다.
그게 그의 ‘표현‘이다. 누구나 표현은 하고 사니까.
‘A'의 소재를 알게 된다.
여기는 말 그대로 돌고 돈다.
https://brunch.co.kr/@dff3dd9acfae4f7/20
‘A'가 했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
내가 0.0001%의 가능성을 두기 어려웠던 변화의
가능성(불가능성인가?)은 제로에 수렴했다.
특유의 오리무중 말꼬리 자르기와
“내가 모르는 일”, “내가 언제 그랬냐고요?” 의
현실 부정이 생존 스킬이다.
“네 네 네 네” 여기서도, 저기서도...
짧은 연애,
짧은 만남,
짧았던 순간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사는가?
그렇다. 아쉬움이다.
바로 그,
‘6개월이라도 더 끌었더라면...’, ‘그 때 그 일로 그가 떠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바램들, 상상들이
현존을 괴롭게 한다.
‘A'는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가면서
나와 같이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을
쉽게 지치고 쉽게 마음 상하게 했다.
내 책임인 것은 마치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내 글 안에서 ‘A'로 소환될 수 있었다.
내가 어쩌면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지난 2주 간을 흔들리며 보냈다.
바빠서가 아니었다.
바쁘지 않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방금도 나는 지하철 출구로 나오기 위해서 긴 줄을 기다리지 못하고 삼백 미터 계단을 뛰어 올라 왔다.
잰 걸음, 아니면 뛰어다녔다.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하는데 ...‘ 라는 생각처럼
사람을 요에서 등을 딱 붙이고 못 일어나게 하는 게
없다.
자신의 ‘우호자’를 가득가득 둘러 세우고
어떠한 의사 표명도 하지 않으면서
소위 ‘적’을 만들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실망한 사람들의 숫자로 탑을 만든
사람들이 이 곳에서 유통되는 카르텔에 들어갔다.
아는 걸 모른다고 하고
들었지만 못 들었다고 하는 걸
그들과 게임을 할 수는 없었다.
짧게 만나고 짧게 헤어진
인생의 접점만으로도
그 사람의 시간을 설명할 수가 있다.
그 때문에 울고 웃고 분노하고 열 받은 시간들로
내 시간이 채워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pSmhaJGlwUo&pp=ygUd7J207KCBIOqxseygleunkOyVhOyalCDqt7jrjIA%3D
‘걱정 말아요...’가 명곡이라는 것을,
노래는 인정했지만
진작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라는 대목이 내겐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브런치 ‘거리두기’ 2주 간을 보내면서
지나간 걸 지나갔다고 말한다는 것이
지나간 일을 지나갔다고 보내어야
나는 나의 ‘이정표‘대로 살 수 있다.
짧은 만남,
짧았던 연애가
짧은 순간으로 끝나 버린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나도 틀리지 않았고
아직도 수많은 종사자로 남아 있는‘A'들도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