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우리가 만날 수는 없지만.
시간은 정말이지 빨랐다.
놀랍게도 곧 있으면 구랍일 12월 말 정신없었던 하루
왠일로 차 사고가 났다.
힘든 일이 워낙에 많았던지라
순간 ‘칭찬 기제’가 발효했다.
실상은 차에서 울고 차에서 웃었다.
직장인인지라 차로 같이 이동할 때
상사를 모시거나 동료를 태우기도 했다.
그 얼마후
과장은 물색 없는 나를 자리보전하게끔
왕따 사건을 주도했고
다들 과장의 속내를 알지만 내가 자신들을
짜증나게 했든, 신경을 건드렸든, 비위에 안 맞았든
각자 사유로 그것을 눈 감고 동조했다.
내게 차는 늘 아지트이고 대기소였다.
이동 수단일 뿐만 아니라...
차에 ‘물성’ 말고 ’인성’도 부여하던 내 생활을,
부서진 차를 물끄러미 보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지 않았는지,
‘얼마나 아파?‘ 차한테 말을 하고있지 않았는지
직장 생활도 하나하나 인연이라 소중하게 생각하다
생각에 잠긴 상태에서
그들이 몰려 간 후 나만 남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언제나 현실은 하나의 문제만 갖고 있다.:
비워도 생각은 차고 넘쳤고
버린다고 버렸어도 아직 버릴 게 많다.
한 해를 되돌아 보면
버리지 못한 욕심과 미련이 가득한 것 같다.
노력은 진행 중.
내 ‘몸이 가벼워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하는 중이다.
어느 날이었다.
노트북을 보며 파일을 찾는 게 있었다.
파일명을 찾기 쉽게 한다곤 했지만
매번 규칙이 머릿속에서 바뀌고
해가 지나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서 더 헤맨다.
그래도 ‘요 놈이다!‘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찾고 또 찾다 보면 해결이 되는데
그러다가 본 것이다.
아니 읽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호의를 업무용 메신저에 남겼던 그 사람들조차
내 모든 것이 구색을 갖출 수 없게 되자
총총히 발길을 돌렸지만,
나는 저 메시지를 받고도
그들은 나처럼 힘이 없었다.
우린 내년도 인사에 결정권을 갖지 못한
약한 자들이었다. 반면에 과장은 당시 인사권자였다.
그러니 누가 거스를 것인가.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완전 좋은 척이 국룰인
이 무대에서
과장이 퇴직할 때까지 그를 정지시킬 힘은
누구나 언감생심이었고
누구보다 그 사실을 과장은 십 분 이용했다.
세상은 다 그렇다.
‘잘 하고/ 못 하고‘ 구분은 의미가 없다.
운동 선수 출신 누군가가 쓴 글을 읽었다.
때는 내년도 업무를 신청해야 하는 기간이 되니까
마음이 산란함을 정리하고 있던 차였다.
프로 선수들의 이적료 이야기였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최근에 내가 내린 결정이 잘 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때 ‘대체 불가‘라고 자임하기도 했지만
말짱 헛소리에 불과했다.
여기 아무도, 그 누구도
나와 같은 플레이어를 데려 가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들보다 오래 일했고
무엇보다 많이 알고
누구보다 열심인 아랫사람은,
그냥 저냥 대충 잘 버무린 일머리가
나와 같이 이끝과 저끝을 관통해 버리는 선수를
기용하느니보다 낫다.
말 많은 조직에서 까딱 잘 못 해서 왕따되는 과정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누가 걸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만연해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해 볼 대목인 것 같다.
마음에 담는다.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때 고마워 하지 못한 나에게
시간을 주길 나는 바라고 있다.
그러면
오늘 밤엔
자신의 상황을 잘 갈무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