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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Sep 15. 2024

76.  싸우는 게 누군 좋아서 하나

- 피할 수 없으니까 그러지.


쇼펜하우어가 그 말을 했다고 하니

그의 명성과 그의 위대함을 생각, 나 같은 일개 ‘공무원 나부랭이‘는 받아들여야 할까.

“ 현재 네 주위에 있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너의 미래”라는 말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많이 답답한 게 현실이다.

죄다 현직 공무원이거나 퇴직했거나.

어뜩하라고!?! 어떡하라고.


아래는 ‘어떡하라고’의 이다.

오늘은 추석 명절, 웃자고...

출처: https://m.blog.naver.com/inkinkink11/223555833047


나는 웃는 게 좋았다. 사무실에 있다 보면 실제로 너무 ‘웃기(끼)는’ 일이 많았다. 자기들도 부끄러운 줄은 알았는지 개중 누군가는 내가 많이 웃는 게 너무 싫다고 대놓고 말했다. 웃기(끼)지나 말든가.




나는 문서를 작성할 때 ‘세 가지’를 맨 앞에 놓고 하는

버릇이 있었다.

모든 우리의 작업이 ‘세 가지’ 이내로 잘 압축되고

다시 분산하여 보면 세부 계획이 잘 잡혔다.


내가 속한 기관에서는 미괄식으로- 주저리주저리- 떠들기만 하는 ‘동료’가 유난히 많았다.

쳐들어 와서 할 수 없이 ‘인간 실격’인 줄 알면서도

‘인간 대접’을 하느라 마주 보면서

하던 일의 ‘기대 효과’까지

내가 머릿속으로(In my heart) 다 쓰고 나면

그 때서야 이래라 저래라(‘일해라 절해라’인 줄로)

요구 사항이 나온다. 정말이지 구구절절 하나도 맞지 않는, ‘감 떨어진’ 소리만 한다.

그저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오래 버티기만 해 온 그들의 알량한 ‘존재감’이란 것을 일찌감치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세 가지’에 대한 사고조차 모른다.

아니 ‘사고’ 자체가 없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아니 개인 사무실도 아니고

항상 민원이 날라다니는

공개된, 공식적, 공공 사무실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혹은 불러내서


몇 살 선배라는 이유로, 자기가 신입일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 들어봐야 그게 그거인, 그밥과 그나물인 - 쌍팔년도 이야기로 도배를 다 마친다는 게


그런다고 1955년도로 돌아갈 리도 만무하고

그저 남의 일머리를 가격하는 게 목적이 아니면

뭐겠냐고.

열불이 나다가

어이없어서 웃참을 하다가 그러면서

속 정리를 혼자 다 한다.


일하고 있는데 커트하고 들어와

나이든 보직이든 자기만 인정하는 줄도 모르고 있는 그놈의 ‘경륜’이랍시고

밀어붙여서

원대로 일이 중단되면

자기들만의 ‘아성’-사실은 ‘아지트’-에서 다음 기회를 노린다.


그 중에 제일 강자는 진짜 밀어붙이는 놈이다.

밀어붙인’다는 게 바둑으로 들어가면

참 ‘똘똘한’ 기술이 된다는 걸 요새 알았다.


바둑에서 ‘밀어붙일’ 때는 ‘한 발 뒤에서 또는 일직선으로’ 그렇게 붙여서 집을 짓고

세를 만든다는 설명을 듣고

나는 쌰아악~ 소름이 끼쳤다.


바둑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란 그렇게 바짝 붙어서, 즉 밀어붙여서

빼 가고

바로 옆에서

치고 끊어가는 것이라는 걸

나의 케이스가 말해 준다.


과장은 내게 자기 식대로 ‘경고’를 했던 거다. “내 옆에 오면 내가 달라 보일 거”라고. 

쎄 할 때가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랬다.




싸우기 싫다고 대개 사람들이 말한다.

‘싸우기 싫어서 그러지’라고 말이다.


의도적으로 조작된(manipulated) 밀어내기와 왕따가 있었고

중심에는 과장의 열등감과 활활 타오른 복수심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세 가지’를 세울 줄 모르는 집단 내 포식자들의 규합이 ‘성과’를 내는 데 기여도가 완전 컸다.


웃으면서 일 (잘) 하는 게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의

마음은 ‘아스팔트 콘크리트’처럼

잘 혼합되고 결합되었다.

그리고 인사혁신처는 하루 14시간으로 근무 시간을

지문인식한 나에게

“너의 질병(부상)은 공무와 상관이 없다.”고

시멘트 벽돌을 날려 주었다. 거기다 대고,


https://brunch.co.kr/@dff3dd9acfae4f7/1


“네, 그렇군요.”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도저히.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의 공무상 요양 승인 신청을

불허가 때린 사람들의 일머리가 무엇인지를.

나의 일도 아니고 어차피 내 가족이나 내 자식의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머리’를 돌리지 않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남의 호소가 갖는 중대한 개연성에 관심을 끊고 오직 페이퍼로 상황을 넘긴다.

출근하는 이유가 퇴근하기 위함인 사람들이

 ‘공무’를 집행한다.


밑장을 빼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불리한 패를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나의 일’일 뿐이다.

어떤 패로도 게임을 이어 갈 수 있는 고단수가 되어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던져 버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세 가지 버전이다.

‘던져!

던져 버려!

던져 둬.“


역시 ‘세 가지’는 유용한 법칙 같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자신의 루틴을 잘 할 수 있다.

왜냐 ? 루틴이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구상을 하고 있어도 그냥 먹고 들어가는 게 루틴이다.


이제 손잡이를 잡고 이럴까 저럴까 생각지 않아도

나는 어느새 계란 후라이를 만들고

커피메이커를 조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싸울 것이다.


퀴퀴한 그들이 있었고

조직이란 것은 바둑판처럼도

잘 짜여지지 못했기 때문에

시스템 같은 소릴 하는 작자들의 다리를 부러뜨렸고

부러뜨린 그들이 은신한 아지트로 변질됐다.


공공의 세금으로 먹고 마시며

아픈 사람을 아프지 않다고 일갈하는 것을

자신의 권위로 오인한 모두들에게

말하고 싶다.


“싸우고 싶은 사람 어딨냐고요.

이쯤 되면 피할 수가 없잖아요.“


이왕 하는 거 능숙하게 하자. 다 던져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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