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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테이프 Dec 18. 2023

엄마 음식

고단함과 수고로움을 이겨낸 엄마의 정성가득한 음식


  끼니를 준비하다가 좀처럼 무얼 먹을지 갈피를 못 잡을 때면 엄마가 해주시던 메뉴를 떠올린다. 그 중에서도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을 만들 때에는 최대한 엄마의 바로 그 손맛을 재현하려고 애쓴다.      



  어릴 적 내 방 창문 너머로 붉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면 피아노가 치고 싶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자면 연주 사이사이에 엄마의 도마소리가 들려왔다. 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는 나의 피아노 연주만큼이나 리드미컬하다. 어떨 때는 피아노 연습을 멈추고 주방에서 나는 소리를 가만히 듣기도 했다. 그리고 몇 분 후 코끝으로 들어오는 음식의 냄새를 맡으며 메뉴를 맞춰보곤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랑 내가 텔레파시가 꽤 통한다고 느꼈는데, 대부분은 엄마가 만드는 저녁 메뉴와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똑같은 순간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음식을 떠올리면 현관에서부터 그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신발을 벗는 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주방으로 달려들어가 확인하면 어김없이 그 메뉴다. 마치 엄마는 내가 먹고 싶었던 걸 알고 준비한 것처럼 말이다. 언급한 적도 없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매번 엄마의 촉이 감탄스러웠다. 내가 먹고 싶어하는 메뉴가 보란듯이 준비되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작고 동글동글한 요정같기도 하고, 마법사같기도 했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에는 바깥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그 돈이면 집에서 고기를 몇 그람은 더 먹을 수 있다고, 나가서 복잡하게 그러지 말고 그냥 엄마가 집에서 하면 된다고 굳이 직접 만들어 먹이겠다 하신다. 식구들이 괜찮다 하는데도 엄마는 행여라도 부족한게 있을까 염려하신다. 엄마 힘드니까 편하게 배달이라도 시켜 먹자고 하면 엄마는 그럴까? 하다가도 곧 집에 무슨 재료들이 있는지, 며칠 전 마트에서 무얼 사왔는지를 나열하며 해먹을 수 있는 게 많다고 하신다. 엄마는 아직도 직접 김장을 담그시고 정육점에서 돼지 뼈를 사다가 뼈해장국을 끓이신다. 사골국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시판되는 것들도 먹을 만하고 괜찮으니 사골은 이제 그만 끓이고 몸을 아끼시라 말씀드렸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전기 레인지 위에선 이미 커다란 들통이 뚜껑의 작은 틈 사이로 수증기를 폴폴 뿜어내고 있는 중이다. 주방 근처만 가도 뽀얀 온기가 느껴진다. 냄비에서 나오는 김은 꼭 구름처럼 뭉게뭉게 주방을 떠다니는 듯하다.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 내가 더 이상 엄마를 말리기는 힘들겠구나 하고 깨닫는다. 엄마는 주방에서 뿜어나오는 온기와 갖가지 향기들로 가족을 향한 사랑을 스스로 확인하고 안심하는 걸지도 모른다. 엄마는 분명 사골국이 완성되면 아구구구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쓰러지듯 누울 것이 뻔한데도, 음식을 하는 동안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는 냉동실에 사골국을 얼리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겠지. 그 순간을 위해 긴 시간을 애쓰시는 거겠지. 엄마가 스스로 충분하다고 만족하기 전까지는 엄마는 쉬지 않고 주방에서 무언가를 계속 만드시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 음식은 특별한 날 먹을 수 있었던 구절판과 갈비찜, 그리고 보쌈이다. 나는 지금까지 보쌈을 먹기 위해 자의적으로 식당에 간 적이 없다. 어느 식당을 가서 먹어도 엄마의 보쌈보다 부드럽지도 촉촉하지도 않아서다. 엄마는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보쌈을 시도하셨다. 처음에는 고기만 넣고 저수분으로 삶다가 그 다음번엔 커피가루를 넣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맥주를 넣고 삶기도 했다. 나는 먹을 때마다 엄마의 보쌈은 고기를 잘 고르는 것이 비법인지, 삶는 방법이 비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항상 같은 곳에서 고기를 사는 것이 아닌데 맛은 항상 변함없이 쫀득쫀득하고 촉촉했다. 어쩌면 고기를 어디서 샀는지, 어떤 방식으로 삶았는지가 맛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엄마의 정성으로 그런 맛이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랑은 돼지고기를 안 드시는 시어머니의 영향으로 집에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제육이나 보쌈 등 돼지고기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성인이 된 후 식당에서 먹었던 제육의 맛이 이따금씩 생각나면 장모님께 조심스럽게 애교를 부린다. 아내가 만드는 제육보다 장모님이 해주시는 제육이 더 제대로 먹은 것 같다나. 엄마는 그런 사위의 입맛에 맞춰 음식을 해주시고는 더 먹으라며 뿌듯해하신다. 달큰하고 칼칼한 엄마의 고추장불고기, 새우젓으로 시원하게 간을 하고 떡국 떡과 밥을 넣고 끓인 후 김가루를 얹어서 먹는 김치국밥은 나의 친구들에게도 유명한 엄마의 시그니처 메뉴다. 나도 몇 번을 집에서 시도해봤지만, 보기 좋게 실패한 후 엄마 맛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체념을 하고 더 이상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외할머니 집에만 가면 입이 쉴 틈이 없다. 외할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할 반찬을 미리 가득 만들어놓고도 아이들이 다른 것을 원하면 다 만들어 주신다. 마치 김밥천국처럼 주문만 하면 어떤 메뉴든 뚝딱 다 나올 것만 같은 엄마의 주방이다. 나는 엄마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할머니가 만들어두신 음식이 있고 할머니 힘드시니까 그것들을 먼저 먹자고 설득하지만 나의 발언권은 이미 효력이 없다. 아이들과 할머니의 의견만 맞으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만 모르는 사이 할머니와 손주들은 눈빛을 주고 받는다.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의 능력을 일찌감치 눈치 채고는 식탁에 차려져 있는 음식이 가득이어도 다른 것들을 원하면서 애교를 부린다. 파가 가득 들어간 달걀말이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할머니는 달걀을 가득 풀어 롤케잌 만큼 커다란 달걀말이를 상에 뚝딱 올린다. 엄마에겐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는 것처럼 오케이! 하고는 뒤돌아서서 뚝딱 하고 음식을 손에 들고 나온다. 솔직히 나는 음식을 해 먹는 것이 귀찮을 때가 많다. 하루에 한 끼 겨우 차려 먹는 날도 많다. 식구들이 모두 학교와 회사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평일에는 집에서 혼자 대충 점심을 때우거나 거르는 날도 많다. 저녁밥을 차려 먹고 나면 후식 없이 주방을 마감한 채 얼른 퇴근하고 싶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주방을 들락거리며 냉장고와 수납장을 열어보는 아들이 행여라도 음식을 더 요구할까봐 얼른 타박하기도 한다. 다른 엄마들은 다 못 먹여서 난리던데, 나는 먹이는 일이 왜 그렇게 수고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이건 유전이 되지 않았나보다.      




  얼마 전, 엄마는 급성으로 찾아온 어지럼증으로 응급실에 가신 일이 있었다. 이석증 검사를 하고 약을 먹으면서 증상이 많이 나아졌지만, 엄마는 언제 또 어지럼증이 재발해서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셨다. 주변에서 누구는 변기에 앉아 있다가 넘어졌다더라, 누구는 눈을 감아도 구토가 날만큼 심했다더라 하는 무서운 소리만 들으니 에너지 넘치던 엄마도 영 기운이 없고 우울해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위로한답시고 이 참에 좀 쉬시라고, 몸이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는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몸도 마음도 괴로워 보였다. “그래, 니 말대로 좀 쉬면서 배달도 시켜먹을게.” 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엄마의 옅은 한숨은 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힘들어 누워서 쉬는 와중에도 식구를 못 챙겨주니 쉬는 것 같지가 않으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보름 후 상태가 호전되자마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방으로 출근을 하셨다.      

  엄마를 지켜보면서 궁금해졌다. 엄마에게 집밥은 어떤 의미이냐고. 어떤 가치가 있길래 30년 가까이 시집살이로 손님을 치르고 명절마다 음식은 혼자 도맡아 했으면서 지겹지도 않다는 듯 여전히 음식을 열심히 하시는걸까. 우리 엄마에게 음식을 해준다는 행위는 단순한 사랑 그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에게 집밥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물었더니 엄마는 농담처럼 웃으면서 고생과 수고로움이라고 답했다. 같이 껄껄 웃었지만, 엄마에게도 음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도, 별 일없는 평범한 날들에 식구들을 위해 매 끼니를 손수 차리시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왜 수고롭지 않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 수고로움과 고단함을 이겨낼 만큼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음식으로는 엄마가 사랑을 듬뿍 표현할 수 있다 마음먹었던 것 아닐까. 그리고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식구들을 지켜보면서 엄마 자신의 행복도 채워졌으리라.

    


  나는 아플 때마다 엄마 음식이 정말 간절했다. 나는 5년 전부터 매년 가을만 되면 일 년 동안 아플 것을 한 번에 다 앓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한 달을 넘게 끙끙거리며 좀비처럼 버텼다. 어지럽고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무기력하게 누워서 증상이 나아지기만을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이들에게 굶기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끼니만 챙겨주는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아파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가 끓여주시던 콩나물국밥, 미역국, 김치찌개 같은 얼큰하고 따듯한 음식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아픈 나를 도와주러 오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반찬 몇 가지라도 해서 들를 수 있으면 오겠다 하셨다. 불효를 하는 것 같아 괜히 전화해서 아프다고 했나 걱정을 하다가도 엄마 음식을 먹으면 바로 기운 차려서 일어날 것 같은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주고 가신 음식을 한 숟갈씩 떠먹을 때마다 엄마의 정성을 남김없이 내 몸 전체에 채워 넣으려고 했다. 내 몸의 온 세포들이 엄마 음식을 느끼고 기운을 차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엄마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콩나물을 다듬는 모습, 새우젓을 넣고 간을 보는 모습, 파를 써는 모습, 종종거리며 주방을 머무르는 모습이 떠올라서 단 한 방울도 남길 수가 없었다. 엄마의 뒷모습과 옆모습만 떠오르는데도 아픈 딸을 챙기려는 엄마의 근심어린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플 때는 특히 엄마의 음식이 보약처럼 성스럽게 여겨져서 나는 웬만하면 다른 식구들에게 들키지 않고 혼자 먹으려고 하기도 했다. 보물 항아리를 다루듯이 냉장고 안쪽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가 식구들이 없을 때에 슬며시 꺼내먹으면서 기운을 차렸다.     

  시름시름 앓다가 기운이 나면 곧바로 그동안 그리웠던 엄마 음식을 재현하느라 바빠진다.  식욕이 돌아오는 순간은 어떤 음식으로 나의 몸에 기력을 넣어줄지, 무엇으로 입맛을 북돋을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설레면서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오랜만에 주방으로 들어갔으니 역시 김치찌개로 시작한다. 시어머니가 끓이시는 국물용 멸치가 들어간 것도 시원하고 담백해서 나는 어떤 스타일로 끓일지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에는 엄마 스타일로 끓이고야 만다. 김치는 기름에 한참을 볶아서 국물과 기름이 따로 놀지 않도록 하고, 돼지 앞다리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서 고기 반, 김치 반의 느낌으로 푹 끓이는 것이 엄마의 방법이다. 찌개가 끓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간을 보면서 엄마 맛을 내가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애쓴다. 마지막에는 새우젓을 넣으면서 엄마 맛으로 간을 맞추느라 냄비 앞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신랑에게 간을 보라고 한 뒤 신랑의 반응을 살핀다. 신랑이 장모님이 한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불을 끈다.    



 

  올 여름 <H 마트에서 울다>라는 회고록을 읽으면서 엄마와 이별하는 순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과 생각들 끝에, 결국은 나도 식구들에게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나도 엄마가 되어간다.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를 확인하며 메뉴를 궁리하는 매 순간,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방에서의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여겨왔을지도 모른다. 이제 엄마는 그 수고로움을 내려놓을 충분한 여건이 되는데도, 스스로 여전히 정성을 쏟을 기회를 자청한다. 엄마는 우리가 당신의 음식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단함을 보상받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부모님 생신에 미역국을 끓여간다. 비록 엄마가 한 것보다는 감칠맛이나 풍미가 덜하지만, 조금 따라잡은 듯하다. 그리고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는 날에는 찌개라도 끓여서 엄마에게 따듯한 밥을 차려드리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엄마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간단하게나마 한 끼를 차려서라도 보답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본다. 해가 바뀌고 부모님도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나도 엄마처럼 기꺼이 수고로움을 정성으로 대신해 식구들의 배를 불리고 마음에 풍족함을 채워주기를 기대한다. 먼 훗날 나의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일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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