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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Feb 24. 2024

거절을 배운다.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선생님. 해 오지 마세요. 해 오라고 안 했어요. 혼자 해 가지고 와서 안 먹는다고 화를 내시면 어떡해요. 지난번에 얘기했잖아요. 안 먹으니까 해 오지 마시라고요. 선생님 먹을 거만 해 오세요.'


요양원 밤근무가 있는 날은 저녁을 먹게 된다. 원래는 요양원에서 밥만 제공하고 반찬은 각자 싸 온다. 우리 팀은 저녁으로 밥을 먹지 않는다.  나는 건강관리를 위해 음식을 조절한다. 가리는 음식도 많다.  팀장은 원래 잘 안 드시는 분이다. 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올 때가 많다. 같이 먹어도 정말 가볍게다. 그냥 이런 분위기로 대충 지나왔다.


세 사람이 한 팀이다. 함께 하시던 한 분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그 자리에 새로 오신 분과 팀장이 자꾸 부딪친다. 저녁으로 먹을 걸 해 온다. 문제는 식성이 틀리다 보니 먹기가 좀 힘들다. 안 먹겠다고 하면 물러나면 된다.

 자기가 해 온 음식을 안 먹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반응이 격렬하다. 자기를 싫어한다고까지 말이 마구 나온다.


팀장은 확실한 성격이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의사표시 분명하다. 내가 팀장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거 없다. 거절할 때는 분명하다. 까칠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팀장의 확실한 거부에 묻어간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안 먹을 수 있다.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었다. 거절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확실하게 거절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거절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분명한 거절은 상황을 더 명쾌하게 만든다. 애매한 반응은 신경 쓸 일이 많아진다. 관계에 보잡함이 더해진다.  결국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한다.


원래 나는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다. 거절을 못해서 참 힘들게 살았다 싶다. 그냥 바로 거절하면 그걸로 끝날 일이다. 거절을 못해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렇게 한평생 다 갔다. 바로 거절하는 팀장이 부러운 이유다.


처음 결혼하고 주말마다 시댁에 갔다. 말 그대로 한 주도 빠지지 않고다. 주중에는 남편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직장이 너무 멀었다. 토요일 퇴근하고 오면 바로 시댁행이었다. 주말을 시댁에서 보냈다. 일요일 밤 11시가 되어야 집에 왔다. 정말 싫었다. 가끔 안 갔으면 하는 의사표시를 했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화가 감당이 안되었다. 결국 또 끌려가야만 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그 생활이 청산됐다. 15년이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거절을 했었어야 했다.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아닌 건 아닌 거라 했어야 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거절을 했더라면 내 삶은 많이 달라졌겠구나 싶다.  나의 의사표시로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내가 못 견뎠다. 그냥 원하는 대로 해 주면 모두가 조용했다. 그렇게 나는 메말라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족 모두가 만족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당연히 뭐든 요구하면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었다. 거절의 기운이라도 비치면 난리가 났다. 내가 만든 함정이었다.


항상 예쓰맨이었다. 요양원 일을 하며 NO를 배우고 있다. 까칠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의사표시 분명한 사람에게서다. 함께 일하는 분들 대부분이 의사표시를 제대로 하는 분들이다. 싸워야 할 때는 싸운다. 그분들께 또 배운다. 나를 죽이면서 예쓰맨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팀장과 일하며 거절을 배운다. 그래도 아직은 불분명한 모습이  있다. 그 자리에서 분명한 거절을 못한다. '신경 끄기의 기술'을 통해 거절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했다. 내 삶을 간단하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더 나은 삶에 집중할 수 있기 위해서다. 거절의 이유를 분명히 하고 나니 거절이 힘을 얻는다. 나를 위해서고 상대방을 위해서다. 우리 모두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는 일이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거절!

그런 건 개한테 줘야 한다. 거절당하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최대한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절은 가능하다. 그런 건 또 고수의 영역이다. 나 같은 시정잡배는 그냥 일단 거절하는 거다. 내 의사표시 분명히 하기로 한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지키기로 한다. 더불어 상대방도 지키기로 한다. 언젠가는 무림의 고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대방이  거절당하는 줄 모르게 거절할 수 있는 비급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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