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망 Oct 07. 2024

남편을 잃은 엄마의 아픔을 몰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13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간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3기였다.

10개월간 투병을 하시고

돌아가셨는데, 끝까지

엄마가 함께 하셨다.


어려서 살던 동네에서는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미녀와 야수'라 놀렸다.

우리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의 미인이었고,

아버지는 못생겼다는 의미였다.

사실 아버지가 그렇게 추남은

아니었는데 엄마가 워낙

미인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야수가 되어 버린 불쌍한 남자다.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말 그대로 사랑꾼이었다.

아버지가 워낙 성격이 철저한

분이라 엄마가 많이 힘들기는

하셨지만,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였다.

엄마는 밖에 나가도 지갑도

안 들고 다니고, 주머니에

10원짜리 하나도 안 넣어

다니셨다.

아버지가 항상 함께 다니며

엄마가 원하는 것은 뭐가

되었든 'NO'가 없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동네에서 가장 먼저 차를 샀고,

여름이면 엄마와 함께

캠핑을 다니셨다.


그렇게 다정했던 남편,

모든 삶의 전부였던 남편을

잃은 엄마가 무너질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버지 없는 엄마의

모습은 상상도  못 할 정도였기에..


엄마의 상실감이 너무 커서

회복을 못할까 걱정이 앞섰다.

이미 노인 우울증의 병력이

있는 엄마라 나는 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엄마는 잘 버티는 것

같았다.

우리 남매가 보기에 별다른

감정의 풍파가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도..

왜 우리는 모두 엄마가 별다른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


간암으로 병원을 전전하다

요양병원으로 갔을 때,

간다는 실감이 나지 않아

발이 둥둥 허공에 떠서

나를 내려다본 듯했다.


자기 가는 것보다 나를

이 험한 세상에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병실에서도

만리장성을 기록했다.


모든 기기 사용이나

집안일 등등 노트 한 권을

벌써 비툴어진 글씨로 채웠다.


평생을 넌지 난지 모르고

살아온 믿음의 대들보가

떠내려 가고 있었다.


꿈속처럼 흔들흔들 그를 보내고

며칠 지나 주위가 조용해지자

실감이 나서 혼자 대성통곡했다.


엄마가 놓은 주제일기를

읽으며 엄마의 상실감을

그대로 느꼈다.

엄마의 그 덤덤함 속에

얼마나 큰 상실이 있었는지..

엄마는 남편을 잃은 현실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자식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엄마에게 글을 쓰게

한 일이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엄마는 그때그때

표현하지 못했던 아픔을

정리해 가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