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3
부분과 전체 #1 : Uncertainty principle
부분과 전체 #2 : Something invisible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우주의 복잡함 속에서 영원한 것을 찾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들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영원의 속성을 가진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수학적 진리, 물리적 개념은 영원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영원할 것 같았던 뉴턴의 역학을 끝내고 새로운 기준이 되었고,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던 결정론적 관점도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관점의 등장으로 그 위상을 잃었다. 시간과 공간, 의식과 무의식, 존재와 부재, 이성과 감정에 대한 개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영원하다는 개념은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상상에 그칠 뿐 현실에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영원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부분과 전체』는 영원히 역사에 남을 20세기 천재들의 대화를 기록하여 그 정신을 전승했다. 이 책에 나오는 대화는 물리학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과학적 배경 지식이 있다면 몇몇 부분은 이해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논의들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그 논의들 아래에는 자연과학적 사고가 바탕이 된다. 20가지 주제에 걸쳐서 진행되는 여러 토론들은 그 당시 독일의 상황과 현대물리학의 흐름을 매끄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천재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분명 유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혼란에 휩쓸려 찰나의 불꽃으로 사그라진 사람들의 정신을 다시 점화시키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말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일들을 우리는 막을 수 없어. 자네도,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 후에도 삶은 다시 계속될 거야. 독일, 러시아, 미국에서도. 그때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사라지겠지. 유능한 사람이건 무능한 사람이건, 죄 있는 사람이건, 죄 없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말이야. 그러나 그 뒤 살아남은 자들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해. 자네는 왜 거기에 함께하려고 하지 않는 거지?" (p.326)
한스 오일러가 대답했다. "나는 그런 과제를 감당하려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아요. 애초에 불충분하고 미비한 상황과 타협할 마음이 있었고, 한 걸음씩 개선해 나가는 일을 커다란 혁명보다 더 우선시했던 사람은 '내가 그럴 줄 알았지' 하면서, 전쟁이 끝난 뒤 다시금 힘들게 작은 걸음을 내디디게 되겠지요.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요. 폴란드나 핀란드, 혹은 다른 곳에서 전쟁으로 죽어가는 무고한 사람들보다 더 쉬운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나는 할 수 있는 한, 나의 희망에 충실하고 싶어요. 세계를 용광로로 만들고자 한다면 스스로 용광로 속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p.327)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정찰 비행을 나갔던 오일러의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이 벌어지는 혼란의 시대에서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내는 하이젠베르크와, 과거와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는 한스 오일러의 대화는 혼란 속에서 사그라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맞서서 국가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들과, 12.12 군사반란에서 반란군에 맞서다 전사한 김오랑 소령과 정선엽 병장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초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던 그들의 정신은, 인간의 한계인 죽음에 부딪히면서 끝내 한계를 넘어섰다.
인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으로써 영원해진다. 외부와 끊임없이 투쟁하고, 변화하고, 적응하는 인간을 정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다. 위대한 인물들의 정신은 후대에 영원히 계승되고, 혼란 속에서 자신을 내던졌던 숭고한 반짝임은 찰나에 그치지 않고 영원히 타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