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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건 Jan 18. 2024

사랑 없는 사랑 이야기

노르웨이의 숲 #1

 사랑은 흥행의 보증 수표이다. 『노르웨이의 숲』 역시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사랑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들다. 사랑인 듯 보이지만 사랑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이 무미건조한 이야기에서, 그나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들이 존재한다.


 이 책에서 사랑을 느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시작과 동시에 문장에 밑바탕에 깔리게 되는 죽음의 그림자 때문이다. 너무 이른 시간에 찾아온 기즈키의 죽음은 기즈키의 연인인 나오코와 기즈키의 친구인 와타나베의 삶에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만들어버렸다. 항상 같이 다니던 셋은 둘이 되어버렸고, 연결고리를 잃은 둘은 결국 하나와 하나로 끊어지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른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크게 유행을 했으며,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 역시 이 책과 꽤 잘 어울린다.


 우리는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의 상실이든, 목표의 상실이든, 그 어떤 것이든. 상실은 허무와 고독을 불러온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면, 들판의 어딘가에 있는 깊은 우물에 빠지는 것이다.

"아무도 그 우물을 찾을 수 없어. 그러니까 제대로 된 길을 벗어나면 안 되는 거야."(p.17)

 기즈키의 죽음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한 이 말은 상실에 대한 나오코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상실이란, 제대로 된 길을 벗어나는 것. 불행히도 나오코는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했다.


 길을 잃은 나오코와 달리, 와타나베는 나름대로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p.55)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서 와타나베의 삶은 완전히 변화했다. 그전까지 와타나베는 죽음을 완전히 삶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했다. 삶은 이쪽에, 죽음은 저쪽에 있다는 논리적인 귀결은, 기즈키의 죽음으로 무너졌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모두 죽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했다. 나오코는 연인의 죽음을 마주했고, 와타나베는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마주했다.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둘의 태도는 완전히 상반되었다. 나오코는 상실을 경로의 이탈로 이해하였고, 와타나베는 상실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태도가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오코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와타나베 역시 결국엔 고장이 나버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행복과 우울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 존재한다. 행복이 느껴지려고 하면 우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우울이 느껴질 때쯤이면 행복이 찾아온다. 상실을 극복하려고 하는 인물들의 몸부림 속에서, 우리는 사랑 없는 사랑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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