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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건 Feb 17. 2024

눈 뜬 장님

행복의 정복 #1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자기의 방식대로 정리한다. 그 정리의 결과는 존중, 동경, 시기, 질투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정해진다. 그중에서 지금 생각해 볼 것은, 질투다.


 질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사물 사이의 관계에 집중할 때 생긴다. 만약, 자신이 스스로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런데, 자신보다 결코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2배 이상의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질투가 많은 사람은 순식간에 불행해질 것이다. 또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할 것이다.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내 월급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에 집중해 비교를 하는 순간 불행은 찾아온다.


 인간이 관계에 집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리고 두 대상을 비교하는 것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본능적으로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왔을 것이다.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관계를 형성해야 했고, 더 적합한 생존환경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비교해야 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현대인의 심리가 우애보다는 증오 쪽으로 더 쉽게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왜 선전 활동은 우애를 선동하려고 할 때보다 증오를 선동할 때 훨씬 더 성공적인가? 그 분명한 이유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인간의 심리가 우애보다는 증오 쪽으로 더 쉽게 기울어진다는 데에 있다. 현대인의 심리는 불만에 가득 차 있고, 이미 삶의 의의를 상실했다. 자신은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누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서 깊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인의 심리는 증오로 더 쉽게 기울어진다. (p.102)


 현대 사회의 밑바탕이 된 평등주의 이론은 질투의 영역을 크게 넓혀 놓았다. 신분 제도가 존재하던 과거에, 노비들은 왕을 질투했을까? 그저 옆 집의 노비가 더 좋은 옷을 입고 있어서, 밥을 잘 먹어서 질투했을 것이다. 현대는 모두가 평등하다.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피상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질투는 누구든지 할 수 있고, 그 누구를 대상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질투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경합할 필요도 없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손쉽게 질투할 수 있다. 질투는 공공재다.


 하지만, 질투를 기반으로 세워진 시스템은 자칫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 선전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질투와 증오는 까칠한 여론을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도록 만든다. 불행한 사람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들의 불행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틀어지기 쉽다. 이 세상에는 부조리함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사회의 하위 계층을 지칭하는 말로 썼던 '서발턴(Subaltern)'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존재나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들은 스스로 말할 수 없다. 그들을 대표하는 대표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 담론에 등장할 수도 없다. 질투와 증오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그들은 질투의 대상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증오로 더 쉽게 기울어지는 현대인의 심리 덕분에, 소외된 자들의 설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질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도 보지 못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질투를 하며 불행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질투는 나쁜 것이며, 그 결과는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질투가 악의 화신인 것만은 아니다. 질투는 깜깜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영웅적 고통의 표현이다. 그 길은 어쩌면 더 나은 보금자리에 이르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죽음과 멸망에 이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절망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문명인은 지성을 확대했던 것처럼 감정 또한 확대해야 한다. 문명인은 자기를 뛰어넘는 법은 배워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주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손에 넣는 법을 배워야 한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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