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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안한 사람이 되지 않기로 해요.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 헤어지시라고요!

by Kaelyn H
시쳇말로 영문 모를 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 어떤 높은 분의 별 뜻 없는 한마디가 침소붕대되어, 당장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가 됩니다. 혹은 하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들’의 이해 부족과 자기 정치로 말미암아, 별 일 아닌 것이 매우 중요한 일로 둔갑하고, 전달받은 우리는 헛과제를 하기도 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일 겁니다.


최근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일을 하나 끝내고 나서, 꽤 허탈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리고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걸까. 라는 원론적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동기부여가 된 일은 굳이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지만, 그저 쳐내야 할 일은 여간해서 뚜렷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듭니다. 그러니, 이런 일을 할 때마다 결국 모든 건 생계를 위한 월급값이라고, 반쯤 체념하면서 넘기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가장 긴 시간을 머무르는 곳은 사무실이고 주어진 일은 좋든 싫든 삶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기 때문에, 뭐든 일의 의미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요. 예전(어린 시절)에는 나름 명분을 찾아, 없던 의미를 ‘있어 보이도록' 하기도 했고 그 무늬만 명분을 스스로 주입하면서 열심히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알맹이 없는 일은 어쩌다 한두번 동기 부여를 할 수는 있어도 지속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일들이 안타깝게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겠지요. 그 땐 부득이 환경을 바꾸거나 아니면, 아예 시야를 외부로 돌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리 만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커리어를 포기할 게 아니라면 자신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 적당히 안주하거나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너무 당연하고 뻔해서 도덕 교과서에나 쓰일 법한 이야기겠지만 정말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만일 팀 전체가 부득이 그런 일을 아주 가끔 하게 되는 경우와 같이 이해 가능한 수준이라면, 인내를 가지고 일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다른 동료 대비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만 낮은 퀄리티의 일을 계속 도맡아 하고 있다면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자신의 역량의 문제인지, 조직 구조 상의 문제일지 말입니다. 전자가 주요 이유라면 어쨌거나 능력을 키우고 조직장에게 어필해서 보다 나은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혹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라면 문제 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합니다. 성장에 장애가 되는 직장과의 ‘헤어질 결심’은 본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쌀로 밥 짓는' 당연한 이야기를 거듭하는 이유는 모두가 알지만 제대로 대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반복된 일상 속에서 월급의 달콤함까지 맛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일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감각이 조금씩 무뎌집니다. 오히려 보다 편한 일을 찾고 스스로를 기계화 하기도 합니다. 발전도 경쟁력도 없는 상태로, 곧 과거가 될 현재를 낭비하는 무의식적 삶이랄까요.


얼마전 아끼는 후배 하나가 퇴사를 고민한다면서 이유를 묻는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선배님, 저는 더 이상 제 자신에게 미안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로 깊이 공감해 주었습니다. 회사에선 더 이상 그 예쁜 후배를 못보게 되어 아쉽지만, 그녀의 앞날을 생각하면 더없이 옳은 선택이니까요.

그리고 저도 다시 한번 각성하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스스로에게 미안한 사람이 되지 말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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