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하다. <파묘>는 감독의 이전작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보다 넓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시종 긴장의 끈을 단단히 잡아당긴다. 눈앞에 들어찬 굿판의 현란함과 굿판이 끝나도 고막을 두드리는 서늘한 무악(巫樂)은 영화의 장력에 힘을 보태며 객석의 눈과 귀를 제압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교차하는 묫자리를 수직으로 짓누르는 거대한 첩장의 이미지는 실로 대단한 위압감을 드러낸다.
장재현 감독은 도시에서 험지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공간을 옮겨가며 전작들보다 넓은 세계를 품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그리고 그동안에 축적한 종교적 레퍼런스들을 사이사이에 빼곡히 주석 달며 오컬트 장르의 전문성을 여실히 뽐낸다. 여기에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까지 더해지니 이 영화는 충분히 전문가 영화라 할 만하다.
<파묘>에는 초자연적인 세계관을 설득하기 위한 보이스오버나, 음양오행이나 정령 같은 다종의 설정들을 손에 쥐어주듯 설명하는 대사들이 여러 번 눈에 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신비롭고 모호한 오컬트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다소 몰개성 하고 편의적인 화법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작품을 꿰매 놓은 것처럼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의 경계선이 선명하다. 오컬트에서 크리처물로 장르가 변한다는 점에서 누아르에서 슬래셔로 전환하는 <황혼에서 새벽까지> 같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사실 <파묘>는 장르 간의 격차에서 나오는 쾌감보다는 서로 다른 장르들이 결국 항일이라는 소재를 공유한다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독립운동가에서 따온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친일파의 후손들이 호의호식하는 영화의 상황, 0815라는 차 번호판이 보여주듯, <파묘>는 기억해야 하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거듭 (손쉽게) 강조한다.
그러나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후손이 살아갈 땅을 만든다는 주인공 일행의 숭고한 비전을 전면을 내세우고도, 영화의 후반부는 침략자라기에는 현저히 수동적인 크리처의 위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데 몰두한다. 메시지와 장르를 갈팡질팡하는 연출은 영화가 아직 과도기에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또한 불과 한 세기 전 나라를 배신한 친일파의 혼은 관째로 한풀이시키는 반면, 임진왜란의 유령을 관에서 꺼내어 처단하는 결말부의 심판 서사는 어딘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다. 단순히 바라본다면 이 영화는 국적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의 빌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작품이 다루는 주제의 무게감에 비해, 영화는 심판만큼이나 중요한 내부의 자성이라는 문제에는 쿨하다.
스코어가 보여주듯 <파묘>에는 분명 희소하고 강력한 개성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역사의 어느 좌표 평면에 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씁쓸한 피로감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