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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률 Jun 24. 2024

[영화 리뷰]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딱따구리 소리가 들렸다. 아니, 어쩌면 기관총 소리.

 딱따구리 소리가 들린다. 아니, 기관총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무성히 핀 라일락 뒤편으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치는 무엇을 태웠을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평온과 파괴의 이미지를 혼곤히 겹쳐놓으며 기이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 2024. A24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담장 주변을 풀과 나무로 가꾸는 나치 가정의 모습을 집요히 보여준다. 그들이 정원 가꾸기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말한 대로 ‘미관’을 위해서다. 담장 안쪽이 꽃과 나무로 채워지는 동안 흙 위에는 정체 모를 하얀 재가 뿌려지고, 굳은 표정의 인부는 묵묵히 수레를 옮긴다. 이윽고 아우슈비츠의 주인은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을 거닐며 뿌듯함을 뇌까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영화는 잔인할 정도로 선연한 꽃들의 몽타주를 강렬하게 이어 붙인다. 빨강, 초록, 아마 노랑.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화면을 연거푸 꽉 채운 꽃들은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다 페이드아웃으로 사라진다. 마치 꽃들이 인류를 질책하는 듯한. 마치 너희들이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다뤄도 되는 것이냐는 분노가 지나간다. 이토록 처절하고 타당한 비난이 또 어디 있는가.


© 2024. A24

 영화의 마지막은 현대로 시간을 옮겨 아우슈비츠 추모관을 꼼꼼히 정돈하는 직원들을 비춘다. 별다른 대사도, 사건도 없다. 그들의 근면함은 하루의 일과를 마친 뒤 방문을 닫고 켜진 불을 끄는 루돌프 회스의 근면함과 무엇이 다를까. 나아가 현재의 수많은 일상 중에서 산처럼 쌓인 희생자의 유품들에 익숙해진 채  벽과 바닥의 미관에 몰두하는 시민들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편집 의도는 무엇일까. 나는 '용서 못할 악행이 여기 있었습니다'라는 피상적인 감상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 그저 악행의 전야 같은 권태를, 절규를 가린 평온한을, 일상을 일궈가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잠시 잊어버렸던 스스로를 그저 잠시 흔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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