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이란의 야경
이란의 어느 가정집. 한 여성이 거울을 바라본다. 군데군데 검붉은 멍이 선명하다. 자고 있는 아이를 확인한 뒤, 그녀는 피폐한 얼굴로 집을 나선다. 화려한 치장으로 몸을 가린 그녀에게 음흉하고 싸늘한 시선들이 날아와 박힌다. 성매매와 아편이 계속되는 밤. 그녀는 자신을 집으로 데려간 어떤 남성에 의해 교살당한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의 이 비참한 첫 시퀀스는 남성과 여성, 성구매자와 판매자, 살해자와 피해자라는 대립 구도를 뚜렷이 보여주며 작품의 문제의식을 배태한다. 살인범의 얼굴을 검은 그림자로 가려버리는 연출은 스릴러 장르 클리셰의 고민 없는 인용처럼 보인다. 작품의 윤리성을 고심하던 중, 영화는 단 몇 개의 쇼트 뒤에 한 남성을 프레임의 정중앙에 노출시킴으로써 의심을 해명한다. '사이드 아지미(메흐디 바제스타니)’, 평온한 가정의 중년 남성이자 성매매 여성 연쇄살인범 ‘거미’의 정체다.
영화는 낮조명 아래 사이드를 자유로이 풀어놓음으로써 경찰의 무능함과 종교지도자의 방만함을 위시한다. 이윽고는 테헤란 출신의 여성 기자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를 이야기 안으로 불러와 거미의 정체를 밝혀낼 해결사로 위임한다. 그러나 이란의 성지이자 거미의 은신처인 마슈하드는 타지의 여성이 지내기에 녹록지 않은 곳이다. 미혼 여성에게 방을 내주지 않는 호텔 직원의 불친절한 태도와 취재 협조를 조건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경찰 간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면서도 그들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행인들까지. 성지에는 차별과 폭력이 응집해 있다. 어떤 신성한 상징물보다도 조악한 호신용 칼이 잘 뽑히는지가 중요한 곳이다.
부조리의 공기 속에서 라히미는 언젠가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또 다른 성매매 여성의 시체를 마주한다. 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순간. 카메라는 <에일리언>의 강인한 여전사 리플리를 연상시키는 라히미의 짧은 머리칼을 거듭 비춘다. 이윽고 그녀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거미를 유인해 낸다. 거미는 이끌리듯 라히미에게 접근하고 그녀를 은신처로 데려간다. 그녀는 품어왔던 작은 칼을 휘두르며 사이드를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한다
보통이라면 소강기에 접어들 이 순간, 영화는 비판의 대상을 극적으로 확장한다. 광신도의 지지 속에서 사이드는 순교자로 둔갑한다. 그의 가족들은 유약했던 아비의 추악함을 순교자의 숭고함으로 기꺼이 승인한다. 아내와 아이들의 닦달에 저항조차 않던 무기력한 사이드는 이제 없다. 영화는 '성지를 정화’했다며 흉악범을 받드는 광기를 스크린 전면에 드러내며 사이드를 품어낸 요람으로서의 사회를 냉소한다. 거미집을 부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스크린 위에 짙게 내리깔린다.
재판을 두고 벌어지는 비이성적인 상황 속에서 라히미는 사이드의 처분을 법에 맡길 수밖에 없음을 무기력하게 읊조린다. 영화는 라히미를 본래의 직업인 저널리스트(관찰자)로 되돌리며 그녀를 이야기의 외곽에 재배치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피해자가 남긴 어린 딸의 우는 뒷모습만을 처연히 바라보는 것이다. 이 부조리극은 관객의 바람에서 벗어나 남은 자들이 살아갈 미래를 비관한다.
감독인 알리 압바시는 사이드를 감옥에서 꺼내려는 유력자들을 이어 보여주며 실제 사건 너머에 있었을 정치 세력을 의심하지만, 눈앞에 닥친 살인마의 처벌로 먼저 눈을 돌린다. 피해자들이 짊어진 히잡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무기가 된 것과 달리, 가해자인 사이드를 처벌할 종교적 수단이란 불행히도 없다. 그는 부가된 물리적 고통(태형)과 사회적 지탄, 개인적 반성에서 면제된 채 죽음을 맞는다. 모두에게 공평해야 할 죽음의 도구인 교수대의 동아줄만이 간신히 그를 단죄할 뿐이다.
감독의 전작이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경계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스러운 거미>는 직설적이고 오해 없이 심리의 여백을 허락하지 않은 채 작금의 이란 사회를 비판, 아니 비난한다(그리고 이 영화는 이란 내에서 상영 금지되었다). 감독이 갈고닦은 직선 도로가 실화에 기반을 둠을 고려할 때, 영화에 대한 여러 의견을 집어삼켜버릴 작품의 주제 의식은 노골적일지언정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영화 속 첫 번째 시퀀스에서 설명하지 않은 장면이 있다. 시체를 유기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드의 모습이다. 어두운 도로 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그를 내려다보던 부감 쇼트는 점차 시선을 이동해 가며 도시의 야경을 비추는 까마득한 롱쇼트로 전환된다. 야경을 이루는 건 사방으로 뻗는 도로를 밝히는 화려한 조명 불빛이었다. 그것은 분명 방사하는 거미줄의 모양이었다. 뉴스를 자주 본다. 이란의 야경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