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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in Jan 20. 2022

별 거 아닌 것들이 마음을 울리는 이유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Through the Blurry

들어가며 

유독 더 시린 겨울의 서울, 이보다 더 사울 레이터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기에 적합한 날은 없을 것이다. 불타는 열정, 엄청난 유명세, 뜨거운 성공을 외쳐 사람들을 부추기던 사회가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어느 때보다 차가운 겨울 같은 시기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1년 365일 겨울 나라에 사는 것처럼 재빨리 집에 돌아가야 했고, 매서운 눈과 같은 변화를 뚫기 위해 각자의 우산이라는 방어막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겨울은 춥기에 따뜻할 수 있는 계절이다. 춥기에, 따스함이 더욱 필요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계절이기도 하다. 영화 <캐럴>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겨울의 온기를 담고 있다. 





 사울 레이터의 국내 첫 전시가 지금 이 시기에 온 것이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은 그의 신념과 비슷하게 거창하거나, 심혈을 기울여 연출되었거나, 엄청난 열정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전시장 피크닉을 사울 레이터가 살아돌아와 본다면, 이런 방식은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거부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가 담은 1950~60년대의 뉴욕 거리들 구석구석에서 사소하게 빛나는 순간들처럼 2020년대의 서울을 살아가는 또 다른 속도를 배워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히 보내는 법, 가까운 사람을 챙기는 법, 지나가다 보이는 보석 같은 순간들을 더욱 잘 다듬고 기록하는 법들을 터득해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시기에 사울 레이터를 만나야만 한다. 




신비로운 일들은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진다. 

늘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필요는 없다. 

I think that mysterious things happen in familiar place. 

We don’t need always need to run to the other end of the world. 


필자는 사진을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작가의 ‘눈', ‘시선' 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유한하지만 무한해 보이고, 한 사람이 일생을 살며 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그 사이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건져올릴 의무를 가진 예술가가 포착해 담아온 사진은 곧 작가의 눈이 될 것이다. 우리는 60년이 지난 지금, 서울의 한복판에서 사울 레이터의 눈에 담긴 뉴욕을 볼 수 있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사진에 담긴 순간을 본 것은 오직 사울 레이터 작가 본인뿐일 것이다. 


가장 개인의 시선이 가장 큰 시선이 될 수도 있겠다. 그의 작은 눈이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그 시대 뉴욕을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했으니 말이다. 


나에겐 유명한 사람들 사진보다 빗방울 맺힌 유리창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A window covered with raindrops interests me more than a photograph of a famous person. 

세상에서 잊히기를, 별거 아닌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다. 

I was hoping to be forgotten. I aspired to be unimportant. 


예술적 태동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1940년 뉴욕은 그 어느 때보다 수많은 사상과 담론이 격돌하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선택하고 정하는데 바빴다. 그러나 어떤 예술 운동이나 사조에도 동조하지 않았던 고독한 사울 레이터는 그의 사진에 메시지를 두지 않았다. 그는 ‘관조'를 선택했다. 전시의 제목처럼 창문을 넘어 어렴풋이, 풍경에 스며들어 작지만 분명히 빛나는 것들을 포착해냈다. 


모든 예술을 포함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메시지'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창작물은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사울 레이터의 생각을 듣다 보면 ‘메시지'는 필수 요소가 아니라 모든 창작자를 수월하게 해주기 위한 ‘무기'이자 ‘변명'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는 무수하고 복잡하게 엮여있는 다양한 메시지가 있다. 그 중 한가지만 취사 선택하여 잘 정돈하여 풀어내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다룰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에 핑계대기 좋은 요소지 않은가.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만든 다른 사소한 것들을 무시해도 좋다는, 어쩌면 안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덜어낼수록 세상 속 더 다양한 재료를 획득할 수 있다. 메시지라는 목적을 덜어낼수록 시선은 선명해진다. 



모든 이들이 ‘중요’하고 ‘유명'한 것을 찾아 헤맬 때 그는 ‘흔한'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를 실천한다. 1951년 잡지 <LIFE>에 소개된 ‘구두닦이의 신발 Shoes of the Shoeshine Man’ 시리즈는 거리에서 구두를 닦아주는 남자의 구두에 주목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닦을수록 반짝여지는 구두에 집중될 때, 사울 레이터의 시선, 그의 렌즈는 반대편 구두닦이의 해지고 닳은 구두를 포착한다. 이렇듯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교묘하게 반전시키는 그의 시선은 단순한 스냅사진이 아니다. 별거 아닌 사람, 별거 아닌 사진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흔한 것에 주목하는 시선 자체가 유명한 것에만 집중하는 사회에서는 역으로 ‘독특'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무심하고도 가장 개인적인 시선이 오히려 담백하고 가장 사실적인 시대의 기록을 담아냈다. 작가 본인은 대단한 기록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지만, 유명한 것과 중요한 것들 사이에 여과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다큐멘터리가 되어주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것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인간의 모든 것은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대단한 철학은 없다. 카메라가 있을 뿐. 

I don’t have a philosophy. I have a camera. 

사울 레이터는 컬러 사진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이글스턴, 스테판 쇼어보다 훨씬 이전인 1940년대부터 컬러 필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컬러사진이 흔하고 흑백사진이 귀해진 시대이지만 그때 당시 컬러 필름은 색상 재현에 한계가 많아 평론계에서 ‘진실을 왜곡한다.’며 비판받았다고 한다.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 아닌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흑백 사진이 현실을 다 담지 못해 진실을 왜곡하고 지나치게 스타일만 강조한다고 평가받는데 말이다. 사울 레이터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이렇게 뒤바뀐 평가를 어떻게 생각할지, 컬러와 흑백 중 어떤 것을 더 주력으로 선택할지 궁금해지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컬러필름 사진 작품이 시작하는 구간에 짧게 상영되는 다큐멘터리에서 사울 레이터는 오랫동안 쌓아온 컬러 슬라이드들을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누군가 저를 보고 컬러 필름의 선구자라고 하더군요. 선구자요? 저는 선구자이고 싶지 않습니다.’ 사울 레이터의 매력은 여기에서 있다. 항상 창문과 거울 뒤편에 있는 듯한 태도. 무심하고, 담백한 태도이다. 겸손이라기엔 진심이다. 우연의 포착이라 할지라도 동적인 순간과 정적인 순간이 미묘하게 겹친 매력적인 구도, 회화적인 색감, 창문과 거울의 반사가 이뤄내는 일상의 변형적 시선 등은 가히 그를 선구자라고 칭할만하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선구자라고 믿지 않았던 적정의 자조와 무심함, 담백함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면 아찔하다. 대단한 기존의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기에 그는 매순간 일상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상허의 말처럼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볼 뿐 거기에 뭔가를 더 덧붙이지 않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김연수 <일곱해의 마지막>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을 실물로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좋아하는 소설이 떠올랐다. 매 순간에 건조한 마음으로 충실했던 사진가의 마음이 소설 속 시인의 마음과 비슷해 보였다.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정해진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 보이는 대로 렌즈를 갖다 대고, 무언가를 덧붙여 자신을 꾸미지 않는 것.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우리가 그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메시지'에 집착하지는 않았는지, 가장 가까운 일상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우리 삶의 나라는 예술을 놓치지 않았는지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화려한 문장을 사울 레이터가 본다면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맺으며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는 서울역 근방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2022년 3월 27일까지 진행된다. 사울 레이터의 대표적인 컬러 사진과 더불어 흑백 작품 뿐만 아니라 미공개 컬러 슬라이드,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진행한 사울레이터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담긴 패션 화보 등 원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전시 말미 4층에서는 사진과 회화를 결합한 페인티드 누드와 같이 독특한 장르와 함께 그의 예술적 자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정리해놓았다. 


전시 일정과 맞추어 2021년 12월 말미 한국에서 사울레이터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으며 이 또한 전시장에서 사전 예약 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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