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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in May 20. 2022

한국 단색화에 대한 단상

국제 갤러리 하종현 개인전을 다녀와서 

한국 단색화의 대표주자, 하종현


지난 2월, 삼청동 국제 갤러리에서 열린 하종현 개인전을 방문했다. 이실직고하자면, 단색화에 대해서 글을 쓰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식견이 짧다. 그러나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박서보의 단색화가 전달한 추상적이고 강렬한 마음의 울림을 기억한다. 그 때의 감정을 기대하고 하종현의 개인전을 만나러 갔다.


하종현은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단색화> (2012), 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 <단색화>(2015), 상하이 파워롱 미술관 <한국의 추상미술 : 김환기와 단색화> 등 다양한 주요 단색화 그룹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최근 소장된 파리 퐁피두 센터를 비롯해 중국 박시즈 미술관 네덜란드 보르린던 현대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리움 미술관 등 주요 미술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3월 13일까지 진행된 국제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뒤로하고 3년만에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 베니스 비영리 기관 주최하에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는 하종현이라는 작가의 60년 화업을 정리하고 회고하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뿐만 아니라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 단색화의 현주소를 세계에서 논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김환기 - 우주 

한국 단색화, 왜 다시 짚어봐야 하나

미술감상 초심자에게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한마디로 정리 될 수 있다. “대단한 거장이군.” 어려운 학술적, 미학적 설명과 단어를 차치하고 왜 사람들이 한국 단색화에 매료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선 나부터도 그랬다. 양가적인 마음이 공존했다. 반복적이고 비슷한 형태에 작품마다 달라지는 것은 색의 변주일 뿐. 이토록 추상적인 작품이 왜 한국 미술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까. 아니, 한국 단색화 라는 장르는 또 대체 언제부터 생긴 것 인가?


한국 미술시장은 대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MZ세대의 아트테크가 주목받은지 2년이 넘었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주말 평일을 논외하고 예약이 꽉 찬다. 사람들의 문화예술 경험이 많이 증가하고 확장했다는 것은 누구나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조를 아는 유식한 관람객이 아니더라도 모두 최근 몇 년간 조금의 관심을 가졌다면 이우환, 김환기, 박서보, 하종현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토록 추상적이고 어려운 그림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된 이유,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장르가 된 이유를 초심자 입장에서 쉽게 살펴보려고 한다.


한국 단색화는 만들어지는 중


한국 내에서도 ‘한국 단색화' 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2000년 제 3회 광주 비엔날레에서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을 기획한 미술평론가 윤진섭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201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 전시 이후 한국어 고유 명칭 ‘단색화'를 사용하게 되었다. 단색 추상화를 뜻하는 서구의 모노크롬 양식과 한국의 모노크롬을 분리하고 고유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1970년대 모노크롬 계통의 작가들은 한국적 정서와 동양적 태도를 공통되게 강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별도로 장르의 용어가 정해진지 얼마 안된 까닭 때문에 ‘단색화'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존재한다. 서구 모노크롬 계에서 한국 단색화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독자적 브랜드를 선전하기 위한 국제적 전략의 일환일 뿐이며 사조나 유파로 불리기에는 얄팍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박서보 

어찌되었든 ‘한국 단색화'는 한국 미술의 고유한 브랜드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확장 속에서 한국 단색화가 서구 모노크롬과 비교하여 가지는 독자성을 ‘한국 모더니즘'으로 봐야할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정신성과 물질성을 강조하는 ‘한국 정체성’으로 확장시켜 사조나 유파로 두껍게 발전시켜야하는 지 다수의 담론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작가의 내면적 정신성의 표현,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횡단, 작가의 몰입과 같은 단색화를 특징짓는 요소들을 서구 모노크롬과의 고유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한국 단색화'의 입지가 더 두터워지기 위해서는 현대 미술시장에서의 독보적인 ‘한국적임'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하는 것이 한국의 단색화 장르가 현재 떠안고 있는 고민인 것이다.


한국 단색화는 무엇이 다른가

국내 비평가들은 정신성과 작가의 몰입에 더해 서구 모노크롬 작가들과 한국의 단색화 거장들이 구분되는 가장 큰 지점은 ‘무념무상'과 ‘무위' 같은 동양적 정신, 한국적 정서에 방점을 두고 있다. 서구의 모노크롬에서 강조되는 정신성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위의 ‘반복'으로 나타난다면, 단색화가들의 ‘무위'는 작업과정이 어떠한 의도 없이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수행에 가깝게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위'는 다른 모노크롬과는 독보적으로 작가와 작품의 거리를 완전히 좁혀 분리시키지 못하게 하는 의도를 전달한다. 물성과 작가의 만남이 관람객에게 적극적으로 전달되면서 화폭에 옮기는 자연의 물성을 조금 더 감동있게 전달하는 서사를 자동적으로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단색화가들의 전통 정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관을 살펴보자면, 박서보는 여러 인터뷰에서 스스로가 ‘선비' 가 되고 싶으며 어려서부터 유교, 불교, 선의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한다. 또한 박서보의 단색화의 대표성인 반복성에는 정신성과 수행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윤형근은 추사 김정희의 서체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아 한지 위에 먹이 스며든 것과 같이 마포로 만든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사용한다. 초반 언급한 하종현은 산업용 마대 자락 뒷면에서 압력을 가해 유화 물감을 밀어넣어 마대 조직을 뚫고 나오는 물감의 물성을 보여주고, 이는 전통 동양화의 배면 채색법을 연상시킨다. 정창섭은 닥종이의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회화 작품에 반영하고, 윤명로는 서로 다른 다층의 흰색 물감이 시간차를 두고 마르는 과정에서 표면에 생기는 균열을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만드는 우리 문화예술

한국 전쟁 후 발전한 거장들의 작품관과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텐트천, 마포 소박한 작품에서 시작하는 한국 단색화의 물성, 그리고 식민지 문화로부터 발전한 한국의 백색 미학을 두고 식민지 -피식민지론, 타자성이라는 어려운 논리들로 서구비평론을 펼치는 담론들도 다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다양한 비판적 담론에도 불구하고 애호가들을 넘어 대중적으로, 세계적으로 확장을 시작하고 있는 한국 단색화를 응원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구심점이 되는 한국적 정서와 고유성이 있는 한국적 정신성이 어떻게 서구 모노크롬과의 유일무이한 차별성을 만들어내는지를 더 고민해본다면, 한국 단색화에 대한 국제 미술 시장에서의 학제적 논의도 더 확장되지 않을까. 한국의 미학은 항상 ‘전통'의 경계에 머물러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현대 미술에서 ‘한국적’인 것은 어딘가 과거의 것을 차용한 것들이 차지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 단색화 시장은 단색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70년대라는 과거 시점에서 오는 또다른 ‘한국적임'과 동양의 정신이 바탕이 되는 새로운 미학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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