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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in Jan 26. 2024

YPC '안팎으로 움직이기: 콜렉티브 작동법'

전시연계 토크 <태어나지 않은 미술을 전시하기> 후기

YPC(옐로우 펜 클럽) 이란

권정현(총총), 이아름(루크), 유지원(김뺘뺘)으로 구성된 ‘옐로우 펜 클럽’은 2015년에 미술비평을 공부하는 소규모 모임으로 시작했으며, 2016년 9월부터 온라인에 글을 게재했습니다. 주로 미술과 그 주변에 대해 글, 전시, 출판 등의 프로젝트를 생산합니다. 옐로우 펜 클럽의 활동은 공동의 대화와 문제의식이 현실적인 조건이 만나는 지점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몇년 전 전시 평론 워크샵으로 알게 되었던 YPC. 워크숍과 출판 모임 정도로 알고 있다가 해외에 나갔다 온 사이 YPC 스페이스를 만들었고 지금은 충무로에서 꽤나 재미있고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는 대안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귀여움 연구모임이나 90년대 미친여자 서사 장애분석학적으로 읽기 등과 같은 배움모임도 여전히 운영 중. 서사연구, 문화연구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아무래도 미술평론에서 시작한 콜렉티브라 그런지 공간은 작지만 모든 기획과 모임의 심지가 단단하게 느껴지는 편. 

미술평론에 대해 배우게 된 저번 학기 부터 느낀 건데 결국 현대미술의 핵심은 '글'인 것 같다. 


리서치 페이지 바로가기 

http://yellowpenclub.com/collective


옐로우 펜 클럽과 같이 자발적 예술연구, 예술 작업 콜렉티브의 존재 방식에 대한 국제적인 리서치를 공간에 시각적으로 펼쳐놓는 전시로 서울문화재단 예술연구활동지원에 선정된 "콜렉티브: 확장하고 연결되는 공동체"의 일환이다. 기관과 제도 안팎에 존재하는 콜렉티브를 조명하며 제도를 벗어나지만 제도를 이야기하고 제도를 만들기도 하는 세계 각국의 콜렉티브와의 만남, 대화, 교환 등을 소개한다. 


콜렉티브 리서치란 

- 지난 7년 간 서울 미술현장에서 연구 및 비평 콜렉티브로 활동한 옐로우 펜 클럽의 문제의식에서 시작. 

- 사실 옐로우 펜 클럽은 세명의 구성원이 유연하고 즉흥적으로 진행했던 소규모 세미나 및 피드백 모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항호편집이라는 글쓰기 방법론과 각자 연구한 것을 나누고 배우는 모델을 만들어옴. 

- 이후 프로그램 겸 공간을 열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전시에 비평가 혹은 참여 작가로 활동하며 방법론을 더욱 확장하여 적용하는 실험을 진행. 



어떻게 하면 활동의 자발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기금을 비롯한 제도적 지원을 기대하고,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받아도 되는가? 

안정적인 활동을 위해 수익구조를 갖추어야 하는가? 

관객과 대상은 누구인가?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개인적인 질문임과 동시에  개인의 성취에 초점을 두는 신자유주의 사회 및 미술현장의 경제에서의 공동활동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제도 비평적인 성찰이다. 

국내외 연구교류 콜렉티브 8곳과의 인터뷰 

서울) 마코, 반짝, 와우산 타이핑 클럽, 땡땡 콜렉티브, AGAINST THE DRAGON LIGHT

일본) 정토복합

영국) 더 화이트 퓨브

네덜란드) 마크 

- 시작이 유사하다는 점. 미술관련 대학 혹은 대학원 재학 중이거나 미술 현장의 초년생들이 서로를 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현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며 콜렉티브를 결성 

- 단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모여들기보다 현장과 현황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 대안적인 활동의 방법론을 시도하고자 한 콜렉티브들은  연차를 더해가며 활동의 지속가능성과 확장, 미술제도와의 상호작용, 개인활동과 협력 활동 사이 긴장을 놓고  다음 챕터를 도모하고 있었다. 

더불어 뉴욕의 웬디스 서브웨이, 도쿄의 정토복합 등과 전시, 교환 프로그램, 현장 탐방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연계 토크) 태어나지 않은 미술을 전시하기 _ 일민미술관 윤율리 큐레이터 

모든 전시 공간이 모든 종류의 미술을 다루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네버 본>의 경험을 바탕으로, 윤율리는 외부의 협력자로서 YPC에서 작동한 큐레토리얼의 효용에 대해 고민하고, 자발적인 생존에 최적화된 전시 공간의 특징과 의미를 검토한다. 소규모 대안공간에서 또 기관에서 경험한 바를 이런 저런 단서로 쓴다. 



일단 토크 기획 자체가 옐로우 펜 클럽 같은 대안 공간만이 할 수 있는 내용이라 흥미로웠다. 일민 미술관이라는 메이저 웨이브에 있는 큐레이터가 자발적으로 아직 정식 데뷔를 하지 않은 신진 작가들을 데리고 소규모 대안 공간에서 한 기획의 소회를 이 공간이 공간의 존재와 역할을 고민하는 전시 연계 토크로 쓸 생각을 하다니. 이 연이 닿아서 다른 전시 연계 토크까지 진행이 되었다는 게 이 공간이 협업자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오는 지도 잘 보여서 영민함이 보였다. 

당연히 네버본 전시를 보지는 못했지만 토크의 인트로에서 어떤 전시인지 한 눈에 파악이 가능했다. 전시를 이야기하는 언어는 전시를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이해하고 쉽게 상상해볼 수 있도록 쓰여야 한다고 배웠는데, 수려한 언어를 쓰면서도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시는 걸 보며 책임 큐레이터는 책임 큐레이터군.. 생각했다. 

대학, 대학원 교육을 마친 신진 작가들이 쏟아진다. 정형적인 루트는 서울문화재단의 다양한 지원 사업에 지원하고, 기금을 받아 전시를 한다. 보통 이 전시 공간들이 서울의 작은 대안공간이 되기도 한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가끔은 미성숙한 기획과 해석을 거치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관심을 받고 오픈콜에 지원을 하고 개인전을 열고 포트폴리오를 쌓아간다... 

일단, 미술관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보수성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작가, 태어나지 않은, 데뷔하지 않은 작가와 작업해 리스크를 안고 싶지 않아한다. 단순히 미술관만 리스크를 얻을까. 작가들에게도 절차 없는 미술관 데뷔는 좋지 않을 수 있다. 한 번 태어나면 다시 태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신진 작가들에게 있어 데뷔, 초반 커리어의 언어와 해석들은 정말 중요하고 조심스럽다. 윤율리 큐레이터는 대학강의, 대안공간 독립 큐레이팅, 큐레토리얼 집필, 그리고 제도권 미술관 전시를 하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태어나지 않은 미술, 이들을 다뤄주고 보여주는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은가? 네버본 전시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된 전시다. 

다양한 대안공간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옐로우펜클럽에서 전시를 진행하며 미술관 전시와 작은 공간에서 전시를 만드는 방법론 자체가 다르고, 대형 중진 작가들을 다루는 방법과 신진 작가들과 협업하는 방식도 그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방법론을 개진하진 않았지만 가장 필요한 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신진 작가들은 작가 스스로가 가진 '언어'가 없는 경우가 많기에. (대학에서도 작업 중심적으로 배우지 평론, 기획 쪽으로 언어를 다룰 일이 많이 없다고 한다. 작가를 지망하는 경우 더욱 더) 이들을 만나는 기획자의 경우에는 이렇게 태나지 않은 신진 미술 작가들에게 '언어'를 처음으로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게 참, 초심의 딱지를 붙이는 기분이라고 한다. 역사가 없는 이들에게 해석된 언어를 부여하려니, 기획자의 '쪼'가 붙어서는 안된다는 점이 가장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이 시스템이 왜 어려울까. 전술한 문제 때문에 왠만한 경력이 있는 기획자나 비평가들도 신진 작가에 대해 논하는 걸 꺼려한다. 은연 중에, 혹은 자신의 무의식 중에 훗날 작가에게 잘못될 해석과 언어를 부여하는 일이 될까봐서이다. 그러니까, 신진미술작가들에게는 성숙한 연구자가 붙어야 하는데, 그게 또 성숙한 연구자에게는 도전과 같은 일이라 서로 매칭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윤율리, 유현진 기획자가 이 전시를 특별한 '기금 없이' 진행하는 도전까지 펼친다. 정말 현실적인 대관비 조성문제부터 전시 지킴이라는 인력문제까지. 아직 태어나지 않아, 주목되기 쉽지 않은 전시가 생존하려면 어떤 생태계가 필요한 걸까?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이건 독립영화를 논할 때도 비슷한 문제다. 태어나지 않은 예술들이 잘 태어날 수 있을 때까지는 가만히 숨어있어서는 안된다. 계속해서 바위에 계란치듯 시도를 해야하고, 기초예술의 차원에서 지원을 계속 해야한다. 그래야 그 중 보석 같은 예술들이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문제는 이 지원사업이 점점 패키지화가 되었다는 점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의 규모와 시스템은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도시의 예술지원사업과 비교해도 견줄 데 없이 훌륭하다. 그 점은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정확히 서포트해주는 작가외의 생태계가 없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꼭하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얹어가며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너무나 '쉽게' 태어나버린다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양은 확보가 되었지만, 이제는 질을 따질 때라는 것. 

이런 고민들을 풀어나가는 전시에서 YPC가 협력으로 전시를 주최해주었고, 이런 비평연구 중심 콜렉티브가 협력하는 전시의 장점에 대해서도 논했다. 애초에 기관, 학계, 제도권 안에서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제도권 안팎을 횡단하며 운영하고 있는 곳이고, 무엇이 '제도적인' 느낌을 부여하고 부여하지 않는지를 고민하고 있기에 협력하는 전시들을 통해 '이슈 파이팅'이 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인 것 같다고 유현진 큐레이터가 언급했다. 이에 윤율리 큐레이터가 꼬집기로 실기 출신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뼈가 있는 것일 거라 말했다. 결국은 전시는 일시적이고 연극적인 공간이다.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다양한 맥락과 아이디어로 구현된 공간은 공기처럼 사라진다. 다시는 완전히 똑같이 재현될 수 없다. 그렇가면 전세에서 가장 많이 남는 것은, 쉬운 것은 사진이지만 중요한 것은 글이다. 글과 비평은 마치 밀키트 같은 존재이다. 이 자료가 잘 남아있으면, 따뜻한 물과 약간의 재료를 더 부으면 언제든 전시와 그 공간을 재생시킬 수 있다. 이 부분은 박혜연 교수님에게도 중요하게 배운 부분이다. 한국 미술계와 대학이 가장 간과하고 있는 것이 글이라며, 그 어떤 사진자료나 영상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비평과 서문이 남겨있으며 어떻게든 후세에 연구되고 재생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렇기에 미술 비평이 그 어느 부분보다 중요하다고. 

결국은 제도의 안팎, 대안공간의 전시, 보수성과 자유성, 신진 작가 데뷔 방법론 등에 대해 여행하는 토크 과정이었지만 신진 작가들의 장을 만들어주고 미술사가 될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옐로우 펜클럽이 근간을 두고 있는 미술비평과 이론, 큐레토리얼 등이 핵심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고. 아직은 눈에 선명히 보이지 않지만 이 쪽을 공부하면 조금 더 먼 미래에는 동시대 미술계를 위해 일조할 부분이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얄팍한 기대를 할 수 있는 강연이었다. 

더해서 콜렉티브 리서치가 너무나도 흥미로웠는데, 카셀 도큐멘타 15에서부터 계속해서 나에게 따라오고 있는 키워드이기도 해서 소중한 자료였다. 제도의 안팎. 계속해서 경계를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 새로운 도전 앞에서 재미있는 키워드를 찾게 해준, 그리고 어떤 이름을 붙여하는지도 모르고 해왔던 일들이 결국 이러한 언어로 설명될 수 있었음을 배울 수 있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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