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없는, 읽을 수 없는
정말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네요.
1년은 훌쩍 넘은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일에 치이고, 커리어에 집중하다보니
헌책 수집은 고사하고 독서 마저도 손을 놓은지 정말 오래되었네요.
그래도 이렇게 버려두긴 아까운 브런치라서 오랜만에 몇자 적어봅니다.
헌책은 정말로 꽤 쏠쏠한 투자 수단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일에 집중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마진을 남기는 데다가 위험 부답이 적은 투자 수단은 아마 헌책이 유일합니다. 잘하면 누가 버린 책을 주워다가 팔기만 해도 짭짤하니까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성이라는 점은 두번 말하면 입이 아픈 정도입니다.
그래서 한 때 저는 정말 정력적으로 희귀한 책들을 찾는 정말 말 그대로 '헌터'였습니다. 당시에는 대학원의 연구원이었었는데 사무실로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컴퓨터를 열고 하는 일이 희귀한 책들의 매물 정보를 체크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희귀한 헌책은 언젠가는 반드시 매물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제가 아는 지인 분도 희귀한 책들을 모으는 취미를 가졌었는데 아직까지도 구하기 힘든 그 귀한 쥴리언 시몬즈의 <위대한 탐정들>을 근 3, 4년을 잠복하며 버틴 끝에 손에 얻었죠.
여하간 한국의 헌책 시장은 정말 정말 작고, 희귀한 헌책은 매물이 한정되어있는 데다가 대부분 헌책 헌터들은 마진을 남기면 팔아 치우는 리셀러들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책을 얻게 됩니다. 헌책 수집을 멈춘 지금에도 가끔씩 생각이 나 그 때 당시 학수고대했던 책들을 검색하면 대부분 터무니없는 고가라 하더라도 매물을 찾기는 합니다.
하. 지. 만.
아무리 알라딘에 검색을 해봐도,
헌책 공유 사이트에 구매 희망글을 올려도,
신촌, 동묘, 청계천을 돌아다녀도
절대 찾을 수 없는 책이 한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장지연 번역가가 변역하고 아트누리에서 출간한 피란델로 선집 2권입니다.
물론 수년이 지나도 웬만해선 매물이 나오지 않는 책들이 있긴 합니다. 앞서 소개한 쥴리언 시몬즈의 <위대한 탐정들>이라던가, 영화 원작의 소설 <마라톤맨>, <야수는 죽어야 한다>로 유명한 영국의 계관 시인 출신의 니콜라스 블레이크의 <종장>, <타이태닉호를 인양하라> 등이 있죠. 하지만 이러한 서적들은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습니다. 출간일이 오래되었다는 점, 저작권이 꼬여있다는 점, 역자가 불분명하거나, 번역 퀄리티가 좋지 못하다는 점이 있죠. 아무래도 과거 저작권법에 대한 인식이 모호했던 시절인지라 책들의 저작권은 물론이고 퀄리티도 영 좋지 못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앞서 열거한 책들 중에는 70년대 책도 있는지라 책들의 인쇄 상태가 너무 좋지 못해서 아마 요새는 헌책방에서도 취급을 잘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피란델로 선집 2권은 표지 이미지를 보면 아시다시피 굉장히 근기간에 출간된 책입니다. 인쇄 퀄리티도 우수하고, 출판사도 여전히 잘 운영하고 있죠. 게다가 장지연 번역가는 현재도 아직 출강을 활발히 하시는 분입니다. 번역에 문제가 있거나, 저작권 문제로 책을 일찍 폐기해버릴 이유도 없죠. 뭐 물론 가장 합리적인 이유로는 1권의 매출이 예상보다 한참 밑돌았기 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한참 적은 수량으로 인쇄를 했을 겁니다. 그래서 1권보다 헌책으로 나오는 매물이 적을 것이고 자연히 헌책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탓이겠지요.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많은 절판 서적들 중 시리즈로 인쇄된 책은 1권에 비해 2권이나 3권이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간간히 해당 출판사의 피란델로 선집 1권이 중고 매물로 나오는 데에 비해 2권은 2018년도부터 꾸준히 찾기를 노력해도 단 한번도 매물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소장을 하고 있다는 인증글도 본 적이 없죠. 한때는 이 책을 너무도 갖고 싶어 해당 번역가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할 방법까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미 피란델로의 모든 희곡이 지만지 출판사를 통해 번역 출판이 되었고, 해당 책은 내용적으로나 사료적인 희소 가치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보통 이렇게 되면 많은 이들이 소장 가치가 떨어진 것을 알고 대량으로 매물을 헌책 시장에 내다놓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포도원 출판사에서 번역한 <태양 제국의 멸망>도 지만지에서 출간된 이후 엄청난 물량이 헐값에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예외더군요. 피란델로의 모든 희곡이 지만지에서 출간된지 한참이 지나도 여전히 이 책은 오리무중입니다.
좌우간 지금은 헌책을 모으지도 않고 장서를 오히려 정리 중이기에 이 책을 원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수수께끼 같은 책이라 앞으로의 행방이 궁금하긴 합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이 중에 이 책을 소장하신 분이 있거나 행방에 대한 이유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