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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상태가 마음 상태더라

지저분한 책상을 바라보며

by 단새

요즘 우리 집은 뒤죽박죽이다. 거실도 방도 발 디딜 틈 없이 짐들이 널려 있다.

대청소를 하겠다고 가구를 옮기고 수납을 새로 짜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 결심의 결과는 며칠째 온갖 짐이 늘어진 바닥 풍경이다.


책, 옷가지, 전자기기, 트롤리에 쌓인 간식들과 철거한 행거, 요가매트랑 이불까지.

근데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도 책상 위만 깨끗하면 뭔가 할 수 있다.
방이 엉망이어도 주방이 전쟁터 같아도 책상 위가 비어 있으면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뭐든 시작할 수 있다.


반대로 바닥이 아무리 반짝여도 책상 위에 이것저것 쌓여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하겠는 거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뭐부터 치워야 하지 싶고 괜히 다시 누워버리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그냥 책상 위만 치운다.

의외로 물건 몇 개밖에 늘어져있지 않은데도 굉장히 지저분해보일 때가 있다.

그럴때 조금 생각하고, 몇개만 치우면 순식간에 단정한 책상으로 돌아오는 거다.


바닥에 뭐가 늘어져있든, 한쪽 방이 창고가 되다못해 돼지우리같다 싶어도
책상 위를 후다닥 비워내고 의자에 앉으면 머릿속도 같이 개운해질 수 있는것이다.


그렇게 보면 책상은 내 마음 상태랑 많이 닮아 있다.
기분이 좀 괜찮을 때는 별로 안 치워도 정돈돼 있고
지쳤을 땐 커피잔, 알약 포장지, 안 쓰는 펜, 하다 만 노트, 머리끈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침범해 있다.


하나둘 쌓이는 거라 처음엔 잘 모르다가 어느 순간 “여기선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은 수준이 된다.
그러면 나는 책상 위를 비운다. 그러면 마음도 약간은 정리된다.

아마도 책상은 지금의 나를 드러내는 창문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굳이 예쁘게 꾸미지 않아도 딱 보면 안다. 아 지금은 좀 정신없구나
혹은 오 이건 꽤 괜찮은 상태인데? 그런 날은 의자에 앉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온 집안을 다 치우는 건 며칠 걸려도 책상 위만 비우는 건 10분이면 된다.
근데 그 10분이 내가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희한한 힘이 있다.

오늘은... 음 아직은 책상 위가 조금 복잡하다. 글 쓰는 노트북 옆에 잡동사니가 쌓여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 글을 다 쓰면 책상으로 돌아가서 물건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닦아낼 거다.
그러고나면 다시 좀 개운해지겠지.

내일의 할 일을 계획 세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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