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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새 Feb 16. 2024

70명에게 나를 이야기 한다는 것

제 1회 셀프디깅 데이 연사로 선 발표 금쪽이

지난 2월 6일, 70명 가까운 인원 앞에서 발표를 했다.

발표라기보다 이야기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겪어온 진로고민의 과정과 그 안에서 방황했던 그 경험들을 솔직하게, 20분간 늘어놓는 자리였다. '제 1회 셀프디깅데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전하는 특별한 나만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세션에는 이외에도 셀프디깅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던 쏘님, 따스텔님, 두 분의 연사가 함께했다.


하이아웃풋클럽(@highoutputclub) 계정에 올라간 셀프디깅데이 관련 포스팅




셀프디깅데이, 그 시작


나는 단발모리님이 진행하는 셀프디깅의 1회차에 참여한 바 있으며, 이후 하이아웃풋클럽(이하 HOC)에서 쭉 활동중이다. 덕분에 처음 HOC에 들어왔을 때 부터 '아 셀프디깅 하신 분!'으로 소개되곤 했다. 어찌보면 처음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HOC로 전환된 첫 아웃풋이기도 했으니 그 이미지가 강렬했으리라.


아무튼, 그렇게 HOC에 들어온 이후로도 셀프디깅 관련 자리가 있으면 참여도 하며 관련 활동을 야금야금 해오던 차, 아예 본격적으로 내가 연사로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전에 내가 브런치에 쓴 셀프디깅 후기 내용이 너무 좋았다며, 이 이야기를 HOC 외부에 발표해보자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솔직히 발표라니, 심지어 20분짜리라니!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발표 금쪽이었기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말에 심장이 미칠듯이 쫄렸지만 손가락은 이미 '할게요'를 입력하고 있었다. 미칠듯이 두려웠기 때문에, 오히려 해야한다는 생각이었다.


1월 28일 첫 제의를 받았으니 실질적으로는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발표를 준비했다. 총 세 번의 리허설을 했으며 3일 밤을 지새웠다. 대학원 이후로 내 스스로가 멍청해서 운 것도 처음일 만큼 자책도 많이 하고 매 리허설마다 갈아엎는 수준으로 수정하며 열심이었다. 



진짜 울면서 밤을 지샜다.


솔직히 말하자면 발표하기 직전날 새벽까지도 내용에 흐름이 잡히질 않아 마음고생 많이 했다. 사전 리허설 후 새벽 2시까지 단발모리님의 밀착케어를 받으며 진짜 머리를 쥐어뜯었다. 감사하고 그만큼 너무 죄송해서. 


내  발표를 토대로 목차를 쫙 구조화해주셨다. 내 스스로 너무나 부끄러울지경.


나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로, 이 발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연사자가 모두 섭외된 후, 각자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전 모임을 가졌다.

대단히 새로운걸 준비하자는 건 아니었다. 셀프디깅 프로그램에서 느꼈던 점과, 가능하다면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모두의 이야기는 특별하다는 셀프디깅의 기본 취지에 어울리게 나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전모임 중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한 가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 말인 즉 내가 나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 이게 한 번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생각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글을 써도 두 번 세 번 퇴고한다.

그래서일까, 단번에 이 '메시지'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뿐만아니라 스스로 여기기에 셀프디깅 전 갖고 있던 고민과 그게 해결된 셀프디깅 직후 나의 모습, 또 지금의 나는 굉장히 많이 변화하는 중이었던 탓도 있다. 하나하나 적어두고 보니 그 이야기들이 따로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최근 많은 것을 하며 더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기에 더 그랬다.


'요즘 저는 또 방황 중인데...뭔가 '이렇다!'라며 해결책이 있다는 양 말해도 되는걸까요?'

발표 전날 머리를 쥐어뜯으며 단발님께 한 채팅이다.

'그럼 그냥 지금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요! 아잇 참 이걸 지금 이야기하시다니!'

단발님의 명료한 해결책이었다. 


그냥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동떨어져보이는 나의 이야기를 이어붙이기 위해 나는 자꾸만 있어보이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솔직하게 지금도 방황중인 상태를 그대로 말해야지. 그러니 내용이 담백해졌다. 이거였다.



둘째로, 전달을 위한 발표 내용의 구조화가 되질 않았다. (aka 장황하기 그지없다)


내 발표 트라우마의 시작. 지도교수님의 그 발언, '당신은 앵무새처럼 말한다.' 앞으로 대학원 생활을 하며 잘 고쳐보라며 웃으며 하신 말씀이었지만 상당한 충격이었는지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한 문장이다. 알맹이 없이 말만 많이 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문장을 쓸 때에도 맺음 없이 두세줄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에 그걸 다시 짧은 두세개의 문장으로 수정하다보면 '내가 정말 장황하게 말하나봐...'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이번 발표에 드러난 것이다.


나는 말이 많을 때 정말 의식이 흐르는대로 말한다. 특히 발표는 더 그렇다. 스크립트를 생각한 뒤 발표자료를 만들기에 속으로 계속 말을 해보는 편이다. 결국 발표도 내가 내뱉기에  걸리는 부분 없이 자연스러워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의식이 흐르는대로 하는 이 말은 평소에 수다를 떨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발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상대가 받아들이기 쉽도록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큰 흐름이 있다면 중간중간 확실히 맺어준 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야한다. 글을 이해하는 것과 말을 듣는 즉시 받아들이는 건 처리 속도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걸 잘 못했다.


처음에는 나의 옛날 대학생활부터 지금까지 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다 말하려했다. 당연히 나의 기준에선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초면의 청자가 받아들이기엔 냅다 자기 옛날 이야기부터 주절주절 말하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흐름대로 다 말하니 불필요한 개인적인 사족이 많았다. 듣는 입장에서는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들이 시간을 잡아먹고 흐름을 방해했다. 이걸 덜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이 발표에서 내가 하고자하는 말'이 명료해야했다. 이는 내가 전달하려던 메시지가 발표 전날까지도 흔들렸던 것과 연관되어있다. 이 두 개가 맞물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발표가 된 것이다.



발표자료를 계속 갈아엎으면서 이 두 가지 문제점을 인지하고 수정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했다. 단발모리님이 구조화해주신 목차가 아니었다면 발표나 무사히 했을까 싶다. 아찔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 먼저 말하자면 총 130여분이 신청해주셨고, 그중 약 70분이 참석해주셨다. 줌으로 진행한 만큼 직관적인 반응 확인이 어려운 편인데 걱정이 무색하게 채팅도 활발했다. 특히나 감사했던 유의미한 지표는 접속자 수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큰 이탈 없이 거의 꾸준히 65명 이상의 접속자 수를 유지했다. 사실 연사로 발표는 처음 서봐서 잘 몰랐던 부분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이탈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단발모리님과 모모님의 말씀에 나의 이야기가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나봐! 여길 수 있었다. (세 명 중 내가 두번째 발표였다.)


전부 캡쳐한 나의 발표 중 채팅들..의 일부. 채팅을 읽는건 너무 즐겁다.


나에 대한 말들을 읽기를 즐거워하고 칭찬은 더더욱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발표 중 놓쳤던 채팅들을 읽는 게 너무 즐거웠다. 화면공유상태에서도 보기 위해 채팅을 폰으로 따로 켜놨지만서도 긴장되다보니 실시간으로 다 읽지도 반응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발표가 끝난 뒤 한숨돌리며 찬찬히 읽어봤는데, 좋은 말들 가득이라 너무나 감사했다. 재미있게 들어주신 것도 너무너무 보이고.



특히나 사심 가득 담아 하나 슬쩍 가져와보자면 ㅎㅎ 팟캐스트 같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말을 몇 분이 해주셔서 참 신기하고 기뻤다. 개인적으로 목소리가 곱질 않아 콤플렉스인데다 발음이 새기도 새서 어릴때부터 펜 물고 교정해보겠답시고 그랬는데...그저 감사할 따름.



혹시나 나의 발표 내용이 궁금한 분들께


감사하게도, 하이아웃풋클럽에는 훌륭한 기록관이 계신다. 내부에서 있었던 각종 세션들을 정리해 노션에, 블로그에, 인스타에 콘텐츠화 시켜주는 분들이. 제1회 셀프디깅데이 역시 HOC의 블로그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올라갔다. 나의 인생 이야기, 대학원생이 방황 속에서 방향을 찾아나가려 노력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하이아웃풋클럽 블로그를 참고해보시길 권한다.


위에서 징징거린것처럼 발표 준비 과정은 정말 순탄치 않았다. 그냥 내 이야기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아니요...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수월하게 흐름을 잡아가던 분들과 달리 몇 번을 갈아엎으며 밤을 지낸 그 시간들은 성장통의 나날이었으리라. 


셀프디깅데이 이후 우리끼리의 마무리를 하며 단발모리님이 그러셨다. 발표 끝나고 나면 이 뿌듯하고 벅찬 기분에 그간의 고생이 잊혀져서, 이 뽕에 차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정말 맞는 말 같다. 고생의 기억만큼 후련하게 마친 뒤의 즐거운 기억도 크다. 이러나저러나, 두렵다고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일단 도전해 본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대신 다음엔 시간 촉박하면 고민만 좀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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