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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형 Jan 29. 2024

2013년, 처음 한의원을 시작한 마음



나의 브랜드는 무엇일까?     


한의원을 시작하고 10년 동안 늘 고민하던 질문이었습니다.  한의사로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를 돋보이게 만드는 나만의 장점이 무엇일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처음 한의원을 시작했던 마음, 아무것도 모르던 풋내기 한의사가 꿈꾸었던 그 마음에서, 저의 한의원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2013년, 한방소아과전문의가 되다.   


저는 한방소아과전문의입니다. 전문의? 많은 사람들이 한의사에게 전문의 제도가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인터넷 공간에서 사기치지 말라는 댓글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충격이었지만, 그 사람은 화가 났었나봅니다. 댓글에서 분노가 느껴졌거든요. 그 분에게는 아쉽겠지만, 한방소아과전문의는 국가에서 부여한 전문 자격입니다. 경희의료원에서 레지던트 3년 과정을 마치고, 2013년 한방소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저는 소아 진료를 하는 전문의입니다. 


이렇게 전문의 자격을 땄지만,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자격증을 가지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다른 소아한의원 취직 또는 저의 한의원 개업, 두 가지 선택이 있었죠. 저는 개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소아한의원에서 처음 진료를 시작하면, 저만의 진료를 만들기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진료실 밖에서, 한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결재와 예약을 권유하는 방법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처방은 한의사가 환자에게 꼭 필요한만큼만 해야 합니다. 진료실 밖에서 한달 처방이 3개월이 되고 녹용 추가를 저울질해야 한다면? 저는 그런 병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저의 병원에 그런 색깔을 입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병원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환자로서 병원이라는 공간이 참 어색했습니다. 대학 시절 감기에 걸려 학교 앞에 있는 내과에 갔는데, 왜인지 의사 선생님은 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잠깐 질문 몇개를 하고, 약을 처방해주더군요. 저는 그 약을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약은 믿을 수 있겠지만, 의사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질문 몇개로 약을 처방한다면, 굳이 진료실에 의사가 있어야 할까요? 언젠가 AI가 대체할지도 모릅니다. 저의 짧은 경험일 뿐이고, 모든 병원이 그렇진 않습니다. 지금은 저의 얼굴을 바라보고 저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는 내과 선생님과 꾸준히 만나고 있습니다. 설명이 많으셔서 제가 바쁘다고 말한 적도 있었네요. 물론 그 분은 제가 한의사인지 모릅니다. 


이런 경험들에서 제가 바라는 병원의 청사진을 어렴풋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고싶은 진료, 만들고 싶은 병원은 무엇일까? 이제 막 진료를 시작한 풋내기 한의사로서 3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1. 모니터가 아닌 환자를 바라보자. 

2. 괜찮아요, 부모님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3. 한의원에서 감기 치료를 해보자. 


환자의 건강은 모니터 속 숫자가 아닌, 환자의 얼굴과 몸 속에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의사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나와서는 안 됩니다. 병원은 아파서 치료를 하러 가는 곳이지만, 잘 치료하면 괜찮아질거라고, 걱정할만한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는 설명을 듣는 장소여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은 특히, 아이 건강에 대해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지기 마련이거든요.  


저는 한의원에서 꼭 감기 치료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한의학에는 정말 효과가 괜찮은 좋은 치료 방법들이 꽤 많거든요. 더구나 불필요한 항생제와 감기약 복용이 많아지는 경향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항생제를 절반으로만 줄여도 꽤 성공적인 감기 관리입니다.  




이렇게 1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처음 1~2년은 목표를 떠올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진료’와 ‘경영’은 다른 문제였거든요. 아무것도 모른 채 의지만을 가지고 한의원을 시작해서 처음에 광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광고를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이건 또다른 고민입니다) 그 결과 2주 동안 한의원에 환자 없이 멍하니 앉아있었죠. 이상만으로 현실을 헤쳐나갈 수는 없더라구요. 영어에 ‘from scratch’라는 표현이 있죠? 정말 이 표현처럼, 처음부터 오로지 저 혼자 부딪히고 고민하고 결정하며, 한의원 진료실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10년이 지났고, 참 다행히도 한의원 문을 닫진 않았습니다. 그 사이 많은 아이와 부모님들을 만났습니다. 부모님과 아이에게 저보다 더 편한 소파 자리를 만들었고, 저와 부모님 사이를 가로막는 책상을 없앴습니다. 가능하면 부모님의 얼굴을 쳐다보고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려 애쓰고, 지금 바로 치료해야 한다는 의견보다, 잘 치료하면 분명 좋아질거라는 이야기를 더 해드립니다. 다른 어떤 한의원보다 저의 한의원 냉장고에는 다양한 종류의 감기 한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꽤 많은 글을 남겼고, EBS, 정관장과 협업하고, 세 권의 책을 쓰면서, 많은 행운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일을 하다 문득 진료실 풍경을 바라보면, 저에게 정말 익숙한, 저만의 한의원 공간이 있습니다. 10년 전 풋내기 한의사로 시작했지만, 그동안 저만의 색깔이 꽤나 입혀진 것 같습니다. 이게 아마도 저만의 브랜드겠죠. 지난 10년을 바탕으로, 이제 새로운 10년을 시작합니다. 이런저런 재밌는 일들을 잔뜩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글에서 하나하나 글로 풀어볼게요.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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