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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Jul 03. 2024

금요일의 당구

[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내가 당구를 배운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시절은 모든 것이 낯설지만 새롭고, 설레는 마음이 가득한 시기였다. 새로운 학교, 교수님, 동기들, 선배들, 이 모든 것이 새로움이었다. 그 속에는 당구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같은 과 동기들과의 서먹함을 지워주는데 당구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강의가 끝남과 동시에 당구장으로 또 한 번의 등교를 했다. 동기들 역시 나처럼 당구를 배워가는 하수였고, 나도 그 하수들 틈에서 당구를 익혀갔다.


처음 학교 앞 당구장 문을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묵직한 당구 큐대를 처음으로 손에 쥐고 흰 공을 빨간 공 두 개에 연속해서 맞추었을 때의 쾌감은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처럼 흥분과 떨림으로 다가왔다. 동기들과 함께 어설픈 실력으로 큐질을 하며 웃고 떠들던 그 순간들이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모두 하수 중의 하수였다. 때로는 서로의 미숙한 실력을 비웃기도 하고, 때로는 실력 이상의 솜씨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저 하수들의 보잘것없는 몸부림이었다. 남들 시선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만 재미있으면 그만이었다. 그 시절 당구는 우리에게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시간은 덧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대학 생활이 끝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우리는 사회인이 되었다. 하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함께 당구를 치는 약속은 변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당구 모임은 계속되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금요일의 당구 시간만큼은 항상 우리를 대학교 1학년 시절로 되돌려 주었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당구를 쳤지만, 우리는 아직도 하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물론, 실력이 다소 늘긴 했지만, 여전히 당구 좀 친다는 말을 꺼내기엔 모자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에게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 당구를 치며 즐기는 그 시간이다. 여전히 실수를 하고, 어이없는 큐질에 서로를 비웃으며 웃고 떠들지만 우리에게는 그 순간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그 시절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이다.


지금도 매주 금요일이 찾아오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동기들이 기다리는 당구장으로 향한다. 일상에 찌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금요일의 당구로 모두 사라진다.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며, 일주일마다 한 번씩 삼십 년 전 대학교 1학년 새내기로 돌아가는 유일한 시간이다. 변함없이 이어져 온 이 약속이 나에게는 일상의 위안이 된다.


비록, 우리는 삼십 년 동안 한 손으로는 큐걸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분노의 큐질을 일삼는 어설픈 하수이지만, 우리에게 당구만큼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이며,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고리이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많은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금요일의 당구 시간만큼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롯이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 것이 진정한 일상의 행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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