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에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큰 재래시장이 있다. 일 년 내내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이다. 1980년대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 시절엔 지금처럼 온라인 쇼핑몰도, 대형마트도 없었다. 사람들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생필품을 사고,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시장은 언제나 흥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자주 갔었고, 짐보따리를 어머니와 나누어 들고는 했다. 고사리같이 작은 손으로 들기엔 짐이 무거웠지만, 어머니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즐겁기도 했다.
그 시절 시장을 이용하던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재래시장에서 장보기를 고집한다. 재래시장에 가면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노년의 어르신들이 장을 보신다. 그분들에게 재래시장은 여전히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장바구니를 손에 쥐고 백팩을 메거나 손수레를 끌며 시장을 다니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느새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나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을 자주 이용하는데, 이 역은 경동시장을 찾는 노인들이 많이 다닌다. 역을 이용하면서 손수레를 끌거나 묵직한 가방을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노인들이 곳곳에 보인다. 제기동역은 1974년에 개통된 1호선 역 중 하나로 여전히 개통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경동시장 방면 출입구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폭이 좁아서 혼자만 겨우 탈 수 있을 정도다. 엘리베이터는 시장과 반대편 출입구에 설치되어 있어, 시장을 찾는 노인들에게 큰 불편을 준다.
나는 지하철 역사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 짐을 힘겹게 드는 노인을 만나면 그들의 짐을 들어 드린다.
“제가 들어 드릴게요. 저한테 주세요.”
이 말을 들으면 노인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한다. 짐을 맡기기 미안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길지 않은 계단 몇 개를 오르내리는 일인데도, 그분들은 늘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여러 번 건네신다.
“짐 여기 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아이고, 고마워요. 힘들지 않아요? 너무 고마워요.”
여러 번의 감사 인사를 듣다 보면 괜스레 민망해진다. 짧은 순간,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도 이렇게나 고마워하는 그분들의 모습에 오히려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노인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는 일이지만, 사실은 그분들로부터 따뜻함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 일러스트 출처 : chatGPT
대한민국의 노인 인구가 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초고령화 사회라는 말이 일상화되었다. 그 말은 곧, 많은 노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제기동역 같은 오래된 역이나, 여전히 쇼핑하기에 부족한 재래시장의 환경은 이제 노인이 된 그들에게 장애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재래시장을 찾는다. 젊었던 시절 그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의미가 담긴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들의 짐을 들어주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저 몇 분도 안 되는 순간의 짧은 도움일 뿐이다. 하지만 그 몇 분 동안 서로 나누는 고마움과 미소는 하루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 사소한 도움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쌓이면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